취임 2주만 '법원장 추천제' 폐지…조희대의 ‘脫김명수’ 첫걸음

김정연 2023. 12. 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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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 전 대법원장은 9월 25일 임기를 마쳤다. 연합뉴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2019년 “민주사법의 기틀”이라며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가 2024년 1월 정기인사에선 사라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8일 임기를 시작한지 2주 만에 전임 김명수 코트의 유산에 대한 개혁에 나선 것이다.


고법부장은 지법원장 못해… 새 법원장, 2주 먼저 출근 예정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21일 ‘2024년 법관정기인사에 관하여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번 정기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논의했던 여러 대안 중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방법원 법원장 후보로 나갈 수 있게 하자’는 안은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김 처장은 “지방법원, 가정‧행정‧회생법원의 법원장은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보임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법원장은 일반 법관보다 먼저 새 부임지로 출근하게 할 계획이다. 내년 1월 말 법원장, 고등법원 인사 발표가 나면 통상 발령은 2월 19일자인데, 법원장은 그보다 2주 빠른 2월 5일 각 법원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소속 법원의 현황과 과제 등을 미리 파악하고, 사무분담 등 법원장의 업무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김상환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이 내년 2월 법관 정기인사와 관련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명수 코트의 상징인 제도를 일단 중단시킨 것이다. 뉴스1


다만 법원장 추천제를 하지 않는 건 일단 이번 정기인사에 한정된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김 처장은 “지난 5년간 시행된 추천제에 대해서는 법원 안팎으로 여러 의견이 있고, 법원장 인사의 바람직한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며 “이번 법관 정기인사에서 당장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 원활하게 시행하기에는 남은 일정이 너무 촉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 이후 인사 계획에 대해선 법원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희대 코트’ 첫 행보… ‘김명수 코트’ 상징 무력화


지난 8일 임기를 시작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취임식을 가졌다. 뉴스1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민주적‧수평적 법원’을 표방하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대표적 정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강력한 사법행정권‧인사권 행사에 반발했던 법원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제도였다. 법관들의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이 법원장을 발탁하는 게 아니라 일선 법원 판사들이 ‘민주적 투표’로 동료 법관 가운데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를 수용해 임명하는 방식이다.

도입 초기엔 엘리트·보수 성향 법관 위주이던 법원장 자리가 진보 성향을 포함한 다양한 법관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실제로 일선 법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인 곳도 있었다. 다만 해를 거듭하면서 투표를 통해 자리에 오른 법원장들이 실질적으로 법원을 제대로 장악하고 지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늘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다른 요인과 겹쳐 재판 지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면서 법원장 추천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후보 추천과 투표도 당초 취지처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사실상 수석부장을 원장으로 올려보내는 구도가 됐다. ‘수석부장 인사가 곧 다음 법원장 인사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견제하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친(親) 김명수 법관들이 수석부장→법원장 루트를 밟으면서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의 장악력을 오히려 더 강화한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자 청문회에서 ‘재판 지연 해소’를 최대 과제로 내세웠고, 취임사 등에서도 줄기차게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취임 일주일 만에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의견을 모아 2주 만에 ‘올해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취지는 좋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문제가 점점 드러났는데, 이걸 수선해서 쓰긴 어려운 제도”라며 “일단 이번 추천제 미실시를 시작으로 원점에서부터 인사제도를 검토하되, 예전에 비판받던 부분을 보완해 최적의 제도를 찾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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