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먹을 수 있는 전시가 등장했다?
박지우 2023. 12. 21. 18:34
지금부터 작품을 부수고 먹어 치워 주세요.
갤러리 신라에서는 국내 최초 식용 건축물 전시가 한창입니다. 널브러진 고대 그리스 신전의 폐허 조각들은 대리석이 아닌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들어졌죠. 약 18만 원 상당의 초콜릿 채굴 상자를 구입하면 도구로 직접 작품을 부순 뒤, 작품 일부를 상자에 담아갈 수 있는데요.
작가 안드레아 페레로의 고향인 멕시코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입니다. 15세기경 유럽 궁정에서는 풍요로운 음식과 향락적인 연회가 끊이지 않았어요. 멕시코에 대한 스페인의 혹독한 통치가 이어진 16세기에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서양식 건물이 하나둘씩 들어서며,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전통과 상징은 자연스레 지워졌죠. 탐욕과 착취로 잔뜩 얼룩진 역사는 오늘날 카카오와 설탕을 둘러싼 세계 무역 분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제 관객은 이처럼 파괴적인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수고 삼킵니다. 서양 문화의 견고한 권위를 상징하는 신전의 웅장한 기둥은 깨진 초콜릿 조각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죠. '나는 평생 권력을 두려워했다'라는 의미를 지닌 전시가 마침내 예술적인 승화를 이루는 순간입니다. 조각을 삼킨 관객은 소화와 배설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식민주의에 담긴 뼈 아픈 메커니즘을 온몸으로 재고하게 되죠. 자국의 무거운 역사를 실로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셈인데요. 전시는 초콜릿의 유통기한인 27일에 맞춰 막을 내립니다.
「 All MY LIFE I’VE AFRAID OF POWER 」
기간 2023.11.30~2023.12.27
장소 갤러리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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