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페이커 "돈-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준목 기자]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겸손한 자세로 '저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구나'라고 거름없이 들을수 있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물병이 반 정도 차 있다면 반밖에 담지 못하지만, 내가 비어있는 물병이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거니까."
세계가 사랑한 E-스포의 전설 '페이커' 이상혁의 열정과 철학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2월 2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는 페이커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
ⓒ tvN |
페이커 이상혁은 최근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자 타이틀을 가지고 <유퀴즈>에 금의환향했다. 여기에 2023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LCK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겹경사까지 누렸다. 페이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기념 촬영 부탁이 쇄도하기도 했다고.
'리그 오브 레전드' 롤드컵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경기는 중국 징동팀과의 준결승전이었다. 페이커는 "중국 징동 팀은 자국리그를 모두 우승한 굉장한 강팀이었다. 지난번 대결에서 우리 팀도 징동에게 패했다. 그래서 롤드컵에서 징동을 다시 만나기를 기다려왔다"고 고백했다.
페이커는 세계 최강 미드라이너라는 평가답게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팀원인 케리아는 승리의 순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척돔(결승장소) 나와, 뉴진스 나와!"를 부르짖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꿈은 현실이 되어 결승전 오프닝 공연에 진짜로 뉴진스가 등장했다. 페이커는 "제가 아이돌 쪽을 잘 몰랐는데 다들 하도 뉴진스 이야기를 해서 궁금하더라. 엄청 무대를 잘해주셔서 좋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당시 결승전을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은 페이커에게 패배한 상대팀에게 엄지를 내리는 도발적인 포즈를 요구했으나 정작 페이커는 오히려 상대에게 엄지를 치켜주며 존중의 매너를 보여준 후일담도 화제가 됐다. 페이커는 "엄지 내리는 포즈는 스포츠에서는 흔한 세리머니다. 그렇지만 경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포즈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아직 27세에 불과한 페이커지만 어느새 e-스포츠계에서는 최고령 선수가 됐다. 두뇌싸움이 치열한 종목 특성상, 프로게이머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이 전성기로 여겨진다. 페이커는 지금도 "24시간을 게임 연습 목적의 생활을 하고 있다. 먹고 자고 운동도 조금하지만 새벽 3-4시까지 연습을 한다"며 직업 게이머의 고충을 밝혔다.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페이커에게는 끊임없는 새로운 동기부여를 필요로 했다. 그는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을 벌게 된 이후에는 명예를 추구했다. 많이 우승하고 많은 사람에게 '내가 대단한 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리고 다시 커리어가 쌓이고 나서 고민을 하다가,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목표'라면 계속 따라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페이커가 중국에서 245억이라는 거액의 이적제의를 거부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돈이나 명예보다는 더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저희 팀에서도 좋은 대우를 해주니까"라며 덤덤하게 잔류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우승을 밥먹듯이 하던 천하의 페이커도 부상과 슬럼프도 고전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페이커는 "몇달 전부터 게임을 하고 나면 새끼 손가락에 감각이 없더라. 제 부상으로 인해 저희 팀의 개선점을 볼 수 있었다"라며 "아프기 전까지 몰랐는데 아프고 나니까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손목 스트레칭을 주로 한다고 밝혔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
ⓒ tvN |
독서광으로 알려진 페이커는 책이 게임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독서를 시작한 이유도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한 페이커는"게임은 컴퓨터를 통해서 하는 거지만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근거를 책에서 많이 정말 배웠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프로게이머를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된 것도 책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초반에는 소설과 역사책으로 시작하여 과학과 심리학까지 섭렵했다는 페이커는 특히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프로게이머로서 어떤 마인드로 게임로 임해야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페이커는 프로게이머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겸손'을 꼽았다. 비어있는 물병처럼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본인의 철학을 설명했다.
페이커는 2023년을 돌아보며 "많은 분들에게 기억될수 있고 영향을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며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살아갈수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며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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