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구태 재연…나라살림, ‘건전 재정’만 겨우 지켰다 [예산안 통과]
원안보다 3000억원 축소…2년 연속 순감
R&D 6000억원·새만금 3000억원 늘어
기재부 “구체적 감액 내역 공개 어려워”
내년도 예산안이 여야의 긴 대치 끝에 법정 처리 기한 19일을 넘긴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늑장·졸속 심사 등의 구태를 올해도 재연했다.
국회는 21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656조6000억원(총지출 기준) 규모 2024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건전재정 기조 속에 애초 정부안(656조9000억원)보다 3000억원 줄었다. 증액은 3조9000억원, 감액은 4조2000억원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총지출 규모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순감으로 전환했다.
여야 예산안 합의…3년 연속 ‘늑장 처리’ 반복
여야는 전날 정부안 대비 4조2000억원을 감액하되, 국가채무와 국채 발행 규모는 정부안보다 늘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정부와 여당은 중점적으로 여긴 총지출 증가율(전년 대비) ‘2.8%’를 지킨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늘렸던 예산을 이젠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해마다 반복한 예산안 늑장 처리는 올해도 되풀이했다. 여야는 지난 20일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타결하고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법정시한(12월 2일)을 19일 초과해 3년 연속 늑장 처리 오명을 쓰게 됐다.
예산안 늑장 처리 악습을 부른 심사 기간 부족도 여전했다. 통상적으로 정부 예산안은 9월 정기국회 시작 전 국회에 제출한다. 실제 심사는 국정감사 등에 밀려 보통 11월께 시작한다.
정책 질의 등 절차를 거치면 법정시한까지 2주 남짓이다. 6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심사하기엔 부족하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두 차례만 빼고 법정 기한을 넘겼다.
법적 근거가 없는 이른바 ‘소(小)소위’를 꾸려 밀실 심사 관행도 이어갔다. 비공식협의체에 의해 나라살림이 좌우되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제때 집행이 어려울 경우 경제 운용에 차질이 생긴다”며 “밀린 숙제하듯 벼락치기 하는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총선 앞 포퓰리즘 여전…고질병 개선 시급
나라 예산을 정치적으로 흥정하는 고질병도 여전했다. 증액 예산은 모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줄곧 주장했다. 지난 8월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계기로 사업 타당성 논란이 일었던 새만금 관련 예산을 30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안은 부처 요구 대비 78% 삭감된 1479억원이었으나 67.5%(4479억원) 수준으로 높였다. 새만금은 공항·항만 등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적정성 검증 의문 때문에 정부가 대폭 삭감한 예산이다.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을 3000억원 추가 반영하기로 한 것은 여야가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재부는 지방재정 여건을 감안해 한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지역화폐 전국화 부작용이 입증되면서 정부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민주당 주도로 상임위에서 7053억원이 순증됐다.
연구개발(R&D) 예산은 현장 연구자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 최신·고성능 연구 장비 지원 등을 위해 6000억원을 순증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 척결을 거론한 뒤 정부는 2018년부터 매년 10%가량 늘려온 R&D 예산을 올해(31조1000억원)보다 5조원 이상 삭감하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자 과학계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반발했다. 이에 여야 모두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산 증액 설명은 ‘친절’ 감액은 “알아서 찾아라”
한편, 기재부는 예산안 국회 통과 직후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발표했다. 기재부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 예산에 대한 ‘감액 내 증액’ 조정 원칙에 따라 건전재정 기조가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예산 감액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감액 사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삭감 사업 관련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감액 부분 공개 여부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며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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