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세계 1위 가계부채... '외환위기'만큼 위험한 게 온다

강경훈 2023. 12. 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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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소비·생산성·출산율 저하 우려...재정·통화·금융정책 최적 조합 찾아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강경훈]

 2022년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8.1%를 기록했다는 IMF 자료가 발표된 10월 3일 서울 시내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현수막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 유럽 등 주요국들과 달리 부채축소(디레버리징 deleveraging)를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 현재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및 가계부채 부실화에 따른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패닉이 없는 조용한 금융위기도 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금융위기가 없더라도 이러한 고부채, 고부동산 가격이 유지되는 경우 소비 위축, 생산성 및 출산율 저하 등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을 확고히 추진하는 가운데 재정⋅통화⋅금융정책의 바람직한 조합을 찾아야 한다. 소득불평등 완화 정책들도 필요하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오랫동안 빠른 증가세를 지속하여 현재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2년 말 기준 104.5%로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 높은 수준이다. 이 비율은 2023년 1/4분기 말에 101.5%로 크게 하락했는데 이는 보험사들이 2023년부터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을 적용하면서 보험약관대출을 가계대출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즉 부채 축소가 아니라 회계기준 변경의 효과이다. 한편 해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전세보증금도 가계부채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는데, 그럴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말 기준 156.8%로 높아져 스위스(131.6%)를 제치고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이렇듯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은 무엇보다 증가세가 가팔랐기 때문이다. 2005년 이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면 전 세계 평균은 60%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인 반면, 한국은 65% 수준에서 100%를 넘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특히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유럽 등에서는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거의 흐트러짐 없이 지속되었다.

부채가 누적된 상태에서 최근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양경숙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절반이 소득 절반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국민은 295만 명, 소득 전체를 다 써도 부채를 갚지 못하는 국민이 171만 명, 추가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다중채무자는 438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국내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가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고평가와 과도한 부채 누증이 동반되는 현상을 '금융불균형'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부동산 구입 및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은 가구 비중은 2012년 55%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22년 67%까지 높아졌다. 또한 국내 가계의 자산 구성을 보면 실물자산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금융자산 보유가 낮아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했을 때 매우 취약하다. 최근 가파른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거나, 전세가격 하락 충격으로 임대보증금 상환이 힘든 가구들이 모두 이러한 취약성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가계부채 급증... 금융위기 가능성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장관회의에 참석해 고용 지표 등 경제 동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얼마 전 미국 시카고대 아미르 수피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출 붐이 끝날 경우 경제성장을 크게 저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 지난 10월 열린 당⋅정⋅대 회의에서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뇌관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부동산PF 또는 가계부채 부실화에 따른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특히 부동산PF나 가계부채가 정보에 민감하지 않은 채무증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든지 위기 발생의 소지가 있다. 원래 증권의 가치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하여 정보를 생산하는 일은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채무증권의 경우 담보나 보증을 끼워서 정보에 민감하지 않은(information insensitive) 증권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대규모의 채무증권 거래가 쉽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와 같은 채무증권의 장점이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평소에 그 채무증권에 대해 관심 없어 정보를 만들거나 모으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터졌을 때에는 허둥지둥 패닉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금융위기는 늘 채무증권 시장의 위기와 함께 발생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부채 누증, 주택금융 부실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의 강력한 대처로 레고랜드 사태, 헝다 사태, 비구이위안 사태 등이 전면적인 금융위기로 번지지 않은 경험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이례적으로 빠른 부채 증가세를 지적한 수피 교수도 두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터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 가계부채나 부동산PF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조용한 금융위기(quiet crises) 또는 패닉 없는 금융위기(banking crises without panics)도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 코넬대 매튜 배론 교수 등에 따르면 금융시장의 패닉이 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은행 부실화도 경제성장 및 경제활동에 심대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부채가 부실해지면 손실을 메우느라 은행 자본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신용 공급을 위축시켜 소비와 투자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조용한 위기' 동안에는 정부의 개입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채권자들이 은행 부문의 건전성을 오인함에 따라 부실화가 더 심층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패닉 없는 은행 부실사태는 여러 나라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고부채 지속되면 장기 침체로 연결될 수도
 
 중소상인·금융소비자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가계부채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채무자들의 빚 탕감을 위해 정치권, 정부, 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 '조용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리할 수는 없을까?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도록 정부가 주도면밀하게 관리해서 은행 부실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는 금융 부문을 동원하여 부동산 가격을 올리거나 떠받치는 정책을 거듭해 왔다. 부동산PF나 가계부채 발 위기를 원천 봉쇄하려면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아야 한다. 이는 다시 재정이나 금융으로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 재정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가계부채가 늘어나거나 최소한 유지되어야 한다.

디레버리징 없이 고부채 상황이 지속되면 부동산 가격의 급락은 막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높은 수준의 부채와 부동산 가격이 장기간 지속되면 소비 위축, 생산성 및 출산율 저하의 고착화로 연결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 금융위기를 피할 수는 있으나 이런 대응책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경제에 구조적인 병폐가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고부채로 인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결국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며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GDP 대비 80% 이상의 가계부채는 경제성장의 둔화요인으로 작용한다. 정화영 연구위원은 국내 가계를 소득분위 및 레버리지 수준에 따라 그룹화한 후, 각 그룹별 가구 평균 소비성향의 중간값을 계산했다. 그 결과 동일한 소득분위 내에서 고레버리지 그룹의 평균 소비성향이 다른 그룹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도한 레버리지가 가계소비를 제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고부채는 소득 불평등과 맞물려 한국경제를 부채 함정(debt trap)에 빠뜨릴 우려도 있다. 부자들의 저축이 늘어 이자율이 낮아지면 저소득층 등 다른 경제 주체들이 더 많이 빌리게 된다. 이에 따라 부자들의 소득이 더 늘어나고 저축도 증가하게 되어 사이클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원래 부채 함정에 대한 이론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의 디레버리징이 이뤄졌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또한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서 미 연준은 가장 가파른 속도로 금리 인상을 주도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 디레버리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일찍 멈춘 바 있다. 한국의 소득분배가 나빠진 것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한국이 부채 함정의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주택·부동산 부문으로 자원이 집중됨에 따라 경제 전반의 생산성 저하 가능성도 제기된다. IMF의 유 쉬 박사에 따르면 중국의 부동산 붐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이 없었다면 제조업 부문의 총요소생산성이 매년 0.5%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높은 주택가격 상승률, 전월세 등 주거비용의 증가는 혼인율과 출산율을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혼인 이후 출산 시기 및 자녀 수 등의 가족계획에 있어서도 주거비용은 중요한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매우 많은 실증연구들이 한국의 주택가격이 출산율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질서 있는 디레버리징이 핵심 정책  

물론 금융위기나 장기침체는 모두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을 확고히 추진하는 가운데 재정정책, 통화정책, 금융정책의 바람직한 조합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23년 9월)에서처럼 "중장기 안정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금융불균형이 일정 수준 이하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특히 가계부채의 질서 있는 디레버리징은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도 이미 디레버리징 정책을 시작했다. 중국은 2017년 이래 부동산 시장에 대해 '방주불초(房住不炒,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 대상이 아님)' 기조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버블과 과잉 부채 억제를 위한 디레버리징 정책을 펴는 '경제구조의 리밸런싱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3년 중 기준금리 인상을 조기 종료하고 대출금리 하락을 유도함에 따라 가계부채가 다시 빠르게 늘어나기도 했으나 최근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재선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 1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80%까지는 떨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디레버리징은 상당 기간 후유증을 낳을 수 있으며 경제 주체들이 빚을 갚느라 소비와 투자를 줄이면 거시경제 위축이 우려되므로 정부의 재정 활용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의 공급능력과 산업정책, 연구개발과 기술경쟁력, 경제주체들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재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감세정책은 디레버리징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디레버리징 후유증에 대비하는 재정정책 여력을 축소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소득 불평등이 부채 함정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므로 이를 완화하는 정책들도 긴요하다. 조세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 및 세금에 기반한 재정정책은 경제활동 회복에 큰 효과를 줄 수 있다. 거시건전성 정책은 부채를 억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긍정적 정책효과를 가져오지만 단기적으로는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채무 탕감(debt jubilee) 등 부채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 생산을 촉진할 수 있으나 불평등 축소, 재분배 등에 변화가 없다면 장기적인 효과는 크지 않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정책과 병행할 필요가 있다.
 
 강경훈 /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강경훈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로 정보(information)와 데이터 관점에서 다양한 금융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국은행 조사부, 기획부 및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근무했으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등을 역임했습니다. 학계에서는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공동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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