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변제 대상 늘어나는데 줄 돈이 없다…꼬여가는 강제징용 해법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정부 주도의 해법으로 평가된 ‘제3자 변제안’이 본격적 시험대에 올랐다. 법원이 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판결금 공탁에 제동을 건 데 이어 3자 변제의 재원 자체가 고갈될 위기에 놓이면서다. 당장 21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에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 11명이 3자 변제에 동의한다 해도 이들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어나는 3자변제 대상, 재원은 제자리
정부는 지난 3월 3자 변제안을 발표할 당시 “계류중인 강제징용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박진 외교부 장관)이라고 밝혔다. 향후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징용 피해자·유족 전원의 배상금을 책임지겠다는 의미였다. 실제 정부는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징용 피해자·유족 15명 중 11명에게 배상금을 대신 지급했고, 3자 변제안을 거부한 4명에 대해선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3자 변제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유족은 총 26명으로 늘었다. 향후 규모는 커질 전망이다.
현재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 7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심(6건)과 1심(52건)에 계류 중인 소송도 대법 판례에 따라 피해자들이 승소한다면 정부의 3자변제 대상은 100여명 더 늘어난다. 당장 오는 28일에도 2건의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다.
41억 중 잔금 5억, 재원 고갈 '코앞'
하지만 정작 3자변제의 재원으로 사용될 한·일 기업 등의 자발적 기부는 지지부진하다. 3자변제안 발표 이후 강제동원지원재단에 모인 기부금은 약 41억 1400만원인데, 이 중 40억원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수혜기업인 포스코가 과거 약속했던 기부금을 뒤늦게 납입하며 채워졌다. 실질적으론 지난 10개월간 모인 기부금이 1억여원에 불과한 셈이다.
재단은 3자 변제안을 수용한 징용 피해자 11명에게 지급할 배상금·지연이자로 41억원 중 25억원을 사용했고, 3자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 4명에 대한 공탁금으로 약 10억원을 써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재단이 가진 재원은 5억원에 불과한데 대법원 판결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3자 변제를 지속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한·일 기업 등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재원이 모여야 하는데,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간접적 의사를 전달해 온 기업들은 있지만, 실제 기부금 납입으로는 이어지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뜸해진 '민간 기부'…3자 변제 족쇄 되나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원 마련 수단을 '기부'로 한정한 게 오히려 3자 변제의 족쇄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기부금이 모이지 않을 경우 피해자들이 원해도 3자 변제를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강제징용지원재단과 주일한국대사관 등은 수면 아래에서 한·일 기업을 접촉해 3자 변제의 의미를 설명하고 기부 동참 등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선 기업을 상대로 기부 동참을 호소하는 것 자체가 ‘민간의 자발적 기여’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단 이유로 이를 제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기업 접촉 금지령'…日 "한국 정부가 대응"
외교 소식통은 “3자 변제안을 발표한 이후에도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그 결과 일본 기업 역시 기부 동참 등 ‘성의 있는 호응’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 외무성 나마즈 히로유키(鯰博行)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날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하는 등 한국 사법부 판결에 항의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다른 소송이 원고 승소로 판결될 경우 한국의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는 취지를 이미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맞춰 한국 정부가 대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법부의 문제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선을 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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