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하기 좋은 도시, 노동자가 살만한 도시 뜻하지 않는다

화성시민신문 정경희 2023. 12. 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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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화성시에 바란다 ①] 정경희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 상임대표

<화성시민신문>이 100만 화성시를 맞아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화성시 각계 분야오피니언 리더들이 말하는 '100만 화성시에 바란다'입니다. <편집자말>

[화성시민신문 정경희]

 정경희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 상임대표
ⓒ 화성시민신문
100만 화성이 가능한 핵심적 요인은 지난 10년간 94.5% 증가한 제조업 사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유입이다. 그동안 역대 시장마다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위해 지원한 기업의 각종 혜택과 규제 완화가 수도권 인근 도시의 기업이 이전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비약적으로 늘어난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화성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을까? '노동자가 살만한 도시'를 위해 지자체는 무엇을 해왔을까?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민의 67.3%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지원을 위한 화성시의 노력은 아쉽게도 매우 빈약하다.

화성시 '전국 지자체 산재사망 노동자 수 1위'는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3년간 노동자수 만 명당 사망할 확률인 사망만인율도 2020년 0.49, 2021년 0.66, 2022년 0.84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화성시에서 산재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노동자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화성지역 노동환경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노동 기본권 위협받아

2022년 12월 발표한 화성시 노동정책 기본계획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화성시 소재 사업체 중 82.5%를 차지하는 1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31.4%다. 이 중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 비율이 27.1%나 되었다.

4대보험 가입율도 국민연금 82.5%, 건강보험 82.8%, 고용보험 89.7%, 산재보험 94.4%에 불과했으며, 직장내괴롭힘 등 부당한 처우 경험자 비율 22.4% 중 적절한 휴식이 이루어진 경우는 19.95%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3년 이내 질병을 경험한 노동자 16.3% 중 28.2%만이 휴업 중 질병 치료한 것으로 나타나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주노동자는 더욱 심각하다. 등록된 이주노동자 502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4대 보험 가입률이 국민연금 58.4%, 고용보험 72.9%, 건강보험 73.9%, 산재보험 76.1%에 불과했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유로는 가입을 원하지만 적용대상이 아님 37.5%, 비용 부담 26.0%, 가입을 원하고 적용대상이지만 사업주가 원하지 않음 18.3%, 무응답 9.6%였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지탱해 줄 4대보험 가입과 근로기준법 준수에 대해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특히 미등록된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 모색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별·고용형태별 노동조건, 산업별 노동시간 격차 높아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이 차이는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급격해진다. 남성의 경우 30~49세까지는 정규직이 90%를 넘지만, 동일 연령대의 여성 정규직의 비율은 평균 75.4%였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남성보다 정규직 비율 낮으며, 40대 이후 비정규직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도 월평균 임금을 비교해 보면 정규직 남성 423만 원, 여성 267만 원, 비정규직 남성 209만 원, 여성 134만 원으로 고용 형태와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주 52시간 이상 노동자 비율은 12%로 전국 평균 11%보다 높았고, 평균 노동시간도 43시간으로 전국 및 경기도 내 다른 지역에 비해 긴 편이었다. 산업별로는 숙박 및 음식점업은 15시간 미만 초단시간(10.8%)과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25.6%)의 분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수도·하수 및 폐기물 처리, 원료재생업(52시간 이상 18%, 평균노동시간 47.8시간)과 운수 및 창고업(52시간 이상 27.6%, 평균 노동시간 45.4시간)도 장시간 노동자 비율이 많고 평균 노동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화성시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화성시 자체 사업뿐 아니라 경기도비 사업, 환경지도과, 여성다문화과에서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포함하여 열거되어 있다. 어쨌거나 4개년 계획이 후퇴하지 않고 추진되길 바라며, 100만 화성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몇 가지 보완할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노동권과 생명권 보호할 행정조직 필요해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은 노동인권과 노동자 생명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노동정책을 수행할 행정조직이다. 2023년 초 행정개편 시, 기업정책과 노동권익팀은 기업지원과 노사협력팀으로 변경되었다.

노동 권익이라는 말 자체가 화성시 행정조직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것의 영향은 22년에 합의한 바 있는 화성지역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조형물 건립 약속 이행 촉구 활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권에 대한 인식개선의 의미가 있는 추모조형물 건립을 위해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는 시에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던 향남제약단지 입주사 대표들에 대한 협조공문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불가하다며 합의 이행을 해태하였다. 그 후 입주사의 부정적 의견이 모이자 이를 핑계로 화성지역 모든 산단과 공단에 건립은 불가함을 밝혀왔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업주의 눈치만 보는 행정조직이 아니라 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대로 된 노동정책을 펼칠 부서가 그 많은 행정 부서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화성시는 2024년 1월 노동 담당 부서 개편 계획을 세우고 있다. 4개년 노동기본계획을 제대로 수행할 행정조직이 갖추어지길 바란다. 

노동안전보건 자생력 갖추는 시스템 마련

노동안전지킴이 확대, 노동안전보건 우수기업 선정 및 홍보, 위험성평가 우수기업 컨설팅 지원, 소규모 기업환경 개선사업 등 선정된 소수의 기업이 해마다 바뀌는 나열식, 성과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이들 사업이 유기적인 관계망을 갖고 소규모사업장에 대해 몇 년간 지속적으로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컨설팅과 지원으로 자생력을 갖게끔 시스템을 만드는 지자체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화성지역 사업체 특히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이나 위험성이 높은 사업체부터라도 노동환경과 안전보건실태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기본계획 중 보완할 점을 덧붙이자면 산업단지 안전점검 계획에도 적절한 예산이 책정되어야 할 것이고, 사업주에게 지원하는 기숙사 임차비 대신 기후위기에 무방비인 비닐하우스, 판잣집, 컨테이너 등 취약한 곳이나 냉난방 불가, 화장실 분리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주거개선을 직접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1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요구되었던 유급병가 및 대체인력 지원도 고려해 볼 만하다. 초단시간 노동,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근로계약 형태에 대한 지원과 구제 노력은 상시로 진행되어야 하고, 실제 노동자들이 신뢰하는 상담소가 되도록 적극적인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100만 화성특례시가 되고 GDP가 올라가고 그럴싸한 노동정책 기본계획이 서 있어도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여전히 위험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라면 무슨 소용일까.

100만 화성시가 재력과 권력이 있는 소수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그늘을 들여다보고 당사자들과 소통하여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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