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김성호 기자]
반나절 만에 읽은 것이 미안했다. 반평생의 공력이 든 소설이란 게 활자를 넘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소설 한 권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사람을 밀어 움직이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봐도 좋겠다. 나는 움직였고, 책을 읽은 적잖은 이들 또한 그러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표지 |
ⓒ 창비 |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설의 첫 문장은 놀랍도록 건조하다. '비가 그쳤다'거나 '물건이 떨어졌다'처럼 아무런 감정의 덧붙임도 없는, 사실 그대로의 표현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 당혹스러울 만큼 어처구니없는 사인,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제 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화자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고아리의 아버지, 언제나 진지했고 가난했으며 오지랖이 넓었던 고상욱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장례식장에 누웠다.
외동딸 고아리는 상주가 되어 장례를 주관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간 빈객을 맞는 과정이며, 그로부터 제가 몰랐던 아버지를 알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과정이다. 또 딸과 아버지가 각각 마땅한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비틀린 세상과 삶 가운데 매여 있던 아버지가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과정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제목처럼 시대에 매인 신세로 살아가야 했던 아버지가 그 모든 압제로부터 벗어나 훨훨 날아가기 직전 마지막 며칠의 기록이다.
장례식이 대개 그러하듯,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하나뿐인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딸의 감정이 추슬러지기도 전에 아버지의 손님들이 빈소에 도착한다. 많은 자녀들이 그러하듯 고아리 또한 아버지의 손님을 맞이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아버지의 사람들
다행인 건 주변에서 뻗어오는 손길이다. 구례에 얼마 되지 않는 민노당원으로 아버지의 정치적 동료라는 박동식씨와, 그가 소개한 절친한 동생 황사장이 그런 인물들이다. 어제 처음 만난 박동식씨는 제가 아버지를 삼촌으로 모셨으니 고아리는 제 동생이 되는 것이라며 친근하게 군다. 그가 소개한 장례식장 공동대표 황사장도 형님의 동생이면 제게도 동생이라 정을 베푸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황사장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 옛적 빨치산 일원으로 활동하다 총을 맞아 세상을 떴다는 사연이 있다. 고인인 고상욱씨 또한 빨치산의 일원이었고, 황사장은 과거 고상욱씨로부터 제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역시 젊은 시절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고아리의 엄마는 황사장의 사연을 듣자마자 그의 손을 꼭 잡고는 그를 위로한다. 황사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제 상처를 위로받는다. 고아리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때의 빨치산과 그 아내와 그 자식과 동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한국에서 빨치산이라 하면 독립 이후 한국전쟁 직후까지 남한 산악지대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좌익무장조직을 일컫는다. 공산당 중에서도 남로당 계열인 이들은 사회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무장투쟁을 벌였으나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완전 토벌돼 궤멸하기에 이른다.
비극은 끝나지 않아 생존한 빨치산이 반공이념이 지배한 한국의 지난 반세기 동안 폭력과 차별, 무력감을 감내해야 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공직 진출은 물론 기업입사에도 차별이 가해지는 연좌제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그로부터 가족 중 빨치산이 하나라도 있으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겠다.
일생 형을 증오한 작은아버지의 사연
소설이 그리는 풍경 또한 이와 같다. 전기고문으로 사팔뜨기가 된 아버지의 시선이 어디에 가 닿는지를 딸은 평생 알지 못했다. 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상욱의 하나 남은 동생은 일생에 걸쳐 제 형을 증오했다.
소설은 차츰 그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동생이 너무했다 싶었다가, 나중엔 형이 안긴 고난이 또한 무거웠겠다 싶어진다. 그러다 마침내는 그들이 산 시대와 지금 이 세상이 형과 동생과 딸과 조카와 그들 주변의 모두에게 참으로 너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생 형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작은아버지를 바라보며 고아리는 그가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삐가 길고 짧다 뿐이지 묶여 사는 것이 어디 그 하나뿐일까. 아버지는 빨치산이란 고삐에 묶여 평생을 살았고, 고아리 또한 빨치산의 딸이란 고삐에 묶여 얼마 멀리가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닌가.
빨치산과 연좌제, 위장자수와 비전향장기수, 좌파와 우파, 독재와 개발, 교도소에서 만난 무등산타잔의 이야기까지 소설 안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상처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그 질곡 사이를 삶이 돌아 흐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최선으로 떠밀리듯 나아가는 것이다.
알지 못했고 알려하지 않았던 고아리의 차가운 시선은 어느 순간 조금씩 더워지더니 마침내는 뜨거운 눈물을 흥건하게 쏟고야 만다. 아버지의 옥살이로부터 서울에서의 교수 생활까지 떠밀리듯이 성큼성큼 멀어진 부녀의 거리는 아버지 생의 끝자락까지 좁혀지지 못하다가 뒤늦게 뒤엉켜 화해에 이른다.
해방되기까지는 누구도 해방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빈소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우리들이 그러하듯 그들 또한 시대 안에서 저의 인생을 부여잡고 헤엄치는 민중이며 멀어 보여도 마침내는 나고 죽는 똑같은 인간이다. 좌와 우로 갈라지고 친구와 동지와 크고 작은 인연으로 엇갈린 그들은 시대에 매인 신세였던 아버지가 불굴의 오지랖으로 어떻게든 이룩한 관계이기도 하다.
죽는 그날까지 유물론자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사람들을 정으로 꿰어서 뭉쳐내는 사람이기도 했고, 은근하고 끈질기게 민중을 보듬어 구하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때로는 불완전한 것이 모여 완전함을 이루는 법, 실패한 혁명가인 아버지는 나름대로 완전한 인생을 이루었던 것이다.
한국의 지난 세기가 오늘의 세상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동족상잔의 비극, 오랜 독재와 이념갈등, 한국사회의 지난 세기를 정리하는 단어들이 이제는 낡아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옛 일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또한 사람들이 사는 무대였으며 오늘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야기임을 일깨운다. 한 시절의 고통도 기쁨도 작은 웃음과 울음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흘러 관계와 삶과 내일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아버지가 제 삶으로써 보여준 인생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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