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오타니, 내 마음을 던졌다 때렸다…차도 바꿨어 똑같은 걸로"
日 야구 슈퍼스타 오타니 덕질 예찬 책으로 엮어
팬클럽 회원 300여명, 채팅하며 경기 즐겨
주식 팔아 카드 4000장 수집
차도 오타니가 광고한 포르쉐
"덕질은 괴로움 버티는 힘"
이재익은 SBS 라디오 PD, 소설가, 칼럼니스트, DJ 등으로 다양하게 수식된다. 재미없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인지라, 흥미를 따라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갔다. 1997년 월간 ‘문학사상’에서 한국장편소설상을 받아 등단한 뒤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다양한 주제로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10여년간 웹소설을 연재했다. SBS라디오 피디로 ‘컬투쇼’ ‘씨네타운’ 등을 연출했고, ‘시사특공대’는 직접 진행을 맡기도 했다. 영화 ‘질주(1999)’ ‘목포는 항구다(2004)’ ‘원더풀 라디오(2012)’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덕질에 빠졌다. 대상은 LA다저스 소속 오타니 쇼헤이.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손을 대면 그럴듯한 성과를 내는 그의 수많은 취미생활 중 하나로 여길 수 있지만, 오타니 덕질은 좀 특별하다. 다재다능하게만 보이는 그에게도 삶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짊어진 삶의 무게 안에서 덕질은 고통을 견딜 힘이었고, 나와 주변인에게 한정됐던 시야를 세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덕질에 몰두하며 현실 망각 이상의 기쁨을 경험했다는 '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도도서가)'의 저자 이재익 작가에게 덕질의 효능에 관해 물었다.
-덕질 예찬을 담은 책이다. 오타니의 국내 유일 팬클럽 회장이라고.
▲책은 제가 오타니 선수를 알게 되어, 그를 좋아하게 된 과정을 담은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애초 오타니는 거부감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야구 대표팀을 농락했던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였다. 다만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비웃던 제 마음이 호감과 경외로 바뀌었다. 그 과정을 책에 담았다. 또 야구가 주목받지 않는 나라에서도 오타니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기 나라를 위해 몸 바쳐 뛰는 선수 오타니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기도 하다.
-오타니 팬클럽 회원이 200여명에 달한다고 들었다.
▲책을 내고 그사이 빠르게 늘어 현재 300명이 됐다. 오타니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분들도 계시고 경기를 챙겨보시는 분들도 있다. 메이저리그 시즌 중에는 채팅하면서 경기를 함께 즐긴다. 재미있는 점은 여자 회원 비중이 80%를 넘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오타니가 아이돌화 되어 있다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사회학적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오타니로 인해 야구에 관해서도 다들 전문가 수준이다. 조만간 첫 오프라인 모임도 할 것 같긴 한데, 남자분들이 좀 더 생기길 기다리고 있다(웃음).
-40대 후반이면 보통 낚시나 여행을 많이 즐기던데. 본래 덕질을 즐기는 편이었나.
▲어릴 적 락스타를 좋아한 적은 있지만 덕질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락 자체를 좋아했던 것이지 특정 밴드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부동산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건 재테크 성격이 강했고, 자동차는 그냥 바꿔탄다는 느낌을 좋아했던 것이지 덕질은 아니었다. 근데 오타니는 달랐다. 2018년부터 관심을 갖게 되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덕질에 빠졌다. 하루에 3시간은 오타니에게 쓰는 것 같다(웃음).
-오타니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국제대회에서 만난 타국 선수에게 호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오타니도 우리나라 팀을 너무 깔아뭉개는 바람에 처음엔 반감이 컸다. 다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투수와 타자를 같이 한다고 하니 흥미가 생기더라. 또 힘든 시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꿋꿋함에 감탄과 존경심이 생겼다. 공통의 규격을 지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위대함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면서 좋아하고, 존경하고, 대리만족하는 감정이 생겼다. 그의 화려함보다는 고난을 견뎌낸 세월을 곱씹게 되더라. 지금도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를 못 하게 됐는데, 고난을 견뎌내는 태도를 유심히 지켜보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자."
-카드는 물론 자동차까지도 모으고 있다고. 어떤 것들을 수집하고 있나.
▲흔히 수집이라고 하면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들 하는데, 진정한 수집가들에게 중요한 건 ‘의미’다. 제 경우 최초나 전환하는 순간에 주목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입단할 당시 짧은 영어 스피치를 하는 장면이 담긴 카드, 친필 사인이 있는 첫 홈런 기록 카드 등을 모았다. 400장 정도 된다. 오타니가 고2 때 처음 표지모델을 했던 잡지는 일본 분에게 요청해서 얻었는데, 마음을 담은 편지까지 써서 보내주셨다. 오타니가 실제로 던진 공을 낙찰받은 것도 있다. 공 표면에 핏자국 같은 게 있는데, 물집이 자주 생기는 오타니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오타니가 첫 자동차 광고 모델로 포르쉐를 선택한 뒤로는 자동차도 오타니가 타는 차로 바꿨다.
-수집품 규모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제일 비싼 건 얼마인지.
▲차를 제외하고도 억 단위는 될 거다. 천만원 상당의 카드도 있다. 누군가는 제가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가진 주식 처분해가면서 마련했고, 매도한 주식이 오르는 걸 볼 때면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웃음).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가수 김호중의 열혈팬인 장모님을 제외하고 제 편은 없었다. 아내는 펄쩍펄쩍 뛰었다. 카드를 몇십만원을 주고 사는 게 말이 되냐고 하더라.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올해 열 배가량 뛴 거래가격을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더라. 강하게 집착하면서 자기도 40%의 지분이 있다고 하더라(웃음). 다만 전 이걸로 돈을 벌 마음이 없다. 재테크를 할 거였으면 컬렉터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다른 것들을 모았을 거다. 전 선수 인생과 경력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덕질이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
▲행복한 짝사랑과 같다. 현실 연예에서 나만 관심 있고 상대가 관심이 없으면 힘들지만, 덕질은 짝사랑의 부정적 감정이 원천적으로 방지되어 있다. 상대는 제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막연하게 언젠가는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 거다.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내년 3월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그때 오타니가 한국에 올 가능성이 높다. 일본 방송과 인터뷰할 기회가 꽤 있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팬클럽이 있다는 걸 어필하고 있다.
-덕질이 개인적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나.
▲몇 해 전 타의로 라디오 DJ를 그만두게 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다른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으셨고, 10년간 해오던 웹소설 연재도 끊겼다. 아들도 대학에 들어가면서 멀어지니 힘듦과 공허함이 같이 찾아왔다. 그때 덕질이 큰 힘이 됐다. 고통 안에서 괴로움을 버티는 힘이 되더라. 돌아보니 아들을 포함해 평생 주변 사람을 응원하면서 살아왔는데 나랑 상관없는 멋진 존재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점에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누군가는 몇 달간 순례의 길을 걸으며 깨닫는다는데 저는 오타니에 빠진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견딜 만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큼 좋아하는 덕질 대상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덕질을 희망하는 독자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보면 누구나 편견이나 교육 등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끊어냈던 게 있었을 거다. 건강을 해치거나 법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더 좋아해도 될까’하는 대상에 빠져들길 권한다. 사회에 위해되는 일만 아니라면 자신을 말리지 말고 빠져들어 보시라. 자신을 응원하는 일이 왜 가치 있는지는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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