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김윤석, 기도처럼 분한 이순신 "몸이 덜덜 떨렸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이순신役
집요한 전투 속 최후…새 시작 위한 옳은 맺음
배우 김윤석(56)은 임진왜란 마지막 해,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됐다.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 마지막 바통을 받았다. 용장(勇將) 최민식, 지장(智將) 박해일에 이어 현장(賢將)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사자같이 맹렬한 기운을 지닌 배우의 얼굴 위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조선 최고 장군이 겹친다. 신중하고도 대담한 카리스마, 시대가 원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리더의 면모가 배우와 만나 꼭 맞는 신발처럼 빛난다. 그는 영화의 중심에서 고요하고도 맹렬한 기세로 관객을 이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50대인 나와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나이가 비슷하다. 이순신은 400년 전 7년 동안 전장에서 살다 가셨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칭찬 한 번 못 받고 가족도 잃고 결국 전장에서 목숨도 잃었다. 한 인간으로 너무나 불행했다"고 바라봤다.
그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 승리한 전쟁이지만, 우리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을 준다"며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고 영화는 말한다"고 했다.
전장 한복판…심장 울리는 이순신의 북소리
전날 개봉한 '노량'(감독 김한민)은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영화다. '명량'(2014)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2022) 박해일에 이어 김윤석이 3부작 마지막 이순신 장군으로 분한다.
김윤석은 3부작 중 '노량'의 이순신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 이순신 영화를 단체로 관람했다. 이순신이 수레 감옥에 묶여서 서울로 압송되던 장면과 돌아가시면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시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30년 넘게 연기를 했는데, 당시 이순신과 현재 제 나이도 비슷하고, 많은 것이 담길 '노량'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의 승리보다 그 의미를 말한다. 또 전쟁의 마지막을 담아내는 밀도 있는 연기가 요구됐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아들을 더 큰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아산을 떠나 아들의 임지인 전남 여수 전라좌수영 근처로 홀로 거처를 옮긴다. 백의종군 중이던 아들을 만나기 위해 여수에서 출발해 아산까지 오는 여정에서 83세 고령이던 모친은 배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고문을 두바퀴 돌면 죽는다던데, 이순신 장군은 한 바퀴를 돌았어요. 절반은 죽은 거죠. 어머니께서 배를 타고 아들한테 가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뱃길이 얼마나 험했겠어요. 이순신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며 달려가셨죠. 삼년상도 못 하고 싸우러 나간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이후에 아들도 그렇게 되고. 명량과 노량 사이 가장 외롭고 힘드셨겠죠.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외롭고, 불행한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이순신은 필사의 전략으로 끝까지 집요하게 싸운다. 김윤석은 "전쟁은 반드시 일어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이순신은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해야 한다며 북을 치며 독려한다. 이는 조선의 기세이자 이순신의 심장 소리처럼 다가온다. 또 장군의 유언을 읊을 때는 마치 기도를 하는 듯하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김윤석은 "극장에서 장면을 보고 심장이 쿵쿵 울렸다. '노량'팀끼리 기술시사회 끝나고 극장 앞에 북을 놓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칠 수 있도록. 촬영할 때도 배우들이 북을 한 번씩 쳐보곤 했다. 모두가 그 북을 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영화 '노량'으로 10년 여정 속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한 김한민 감독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7년 동안 일어난 전쟁은 임진왜란밖에 없어요. 이순신 장군은 '얘들 또 온다, 반드시 온다'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괜찮다, 이 한 몸 바쳐 진정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올바른 끝맺음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임하신 거죠. 감독님도 거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준비 기간까지 거의 20년이 걸렸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김한민만큼 이순신을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죠. 또 뭐 어마어마하게 질리는 부분도 있고요.(웃음)"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참고했냐는 물음에는 "남의 일기를 보는 게 좋은 거냐"고 답해 웃음을 줬다. 이순신에게 한껏 몰입해 답변을 이어갔다. "누가 내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본다면 기분이 좋을까요?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난중일기는 본인 외에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죠. 장군을 만난 사람은 말수도 웃음도 적고 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하셨어요. 7년 전쟁을 기록한 것도 철두철미한 책임감 아니셨을까. 제 생각일 뿐입니다."
감독에 의지하는 시대 저물어…"우수한 韓 제작진, 협업 중요"
영화 '모가디슈'(2021)로 1991년 소말리아 내전 한복판에 놓였던 김윤석은 '노량'으로 또다시 전쟁과 마주했다. 노량해전을 실감 나게 완성한 시각특수효과(VFX)도 돋보인다. 그는 "우리나라 기술력이 정말 대단하다. 친한 감독님들과 사석에서 한잔하면서 '이제 영화는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고 했다.
"감독 한명이 뛰어나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시대는 이제 지났어요. 물론 '미성년'(2019)이라는 좋은 영화도 있지만.(웃음) 우리 영화계에는 좋은 스태프들이 있고, 그들이 다 전문가이자 예술가예요. 협업을 이뤄 만들죠. 글로벌 시장에 콘텐츠를 선보였을 때 규모와 질적인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없죠."
김윤석은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연기를 시작해 35년째 배우로 살고 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연극이라는 전염병에 걸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배우로 살다가 어느새 이순신 장군 역을 하고 있다. 이게 인생"이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이순신은 아주 고독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을 7년 동안 치렀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7년 동안 배신한 사람, 헤어진 사람들이 그 시간 속에 다 있다."
가장 힘든 장면으로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장면을 꼽았다. 김윤석은 "몸이 덜덜 떨렸다"고 했다. 그는 "내 자식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정말 덜덜 떨리더라. 얼굴까지 떨려서 대사도 잘 안 나올 정도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김윤석은 2019년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에게 이 시대 '좋은 영화'란 무엇이냐고 묻자 주저 없이 '사람'을 꼽았다.
그는 "영화에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보여야 한다. 그것이 허황한 삶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 사람이 보여야 한다. SF(공상과학)영화라 하더라도 작품을 통해 '우리'가 보인다면 훌륭한 작품이다. '노량'도 마찬가지다. 400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교훈과 의미를 지닌 영화"라고 말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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