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제발 믿어요" 19억 뜯은 로맨스스캠, 이런 사람 노렸다
30대 여성 A씨는 지난 3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만난 외국인 남성에게 선뜻 50만원을 빌려줬다.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A씨에게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등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남성이 제주도에서 의류매장을 공사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본 A씨는 그를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돈을 빌려가는 액수가 커지며 A씨의 믿음은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두바이에서 짐을 잃어버렸다”며 2000만원을 빌려간 그는 총 64회에 걸쳐 3억1500만원을 A씨로부터 송금 받았다.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락까지 끊기자 사기임을 직감한 A씨는 경찰에 그를 고소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계는 A씨 등 30명으로부터 19억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로 국제 사기단 13명을 검거했지만, A씨에게 SNS 메신저를 보낸 이가 누군지는 아직 특정하지 못했다. 아프리카계 불법체류자로 이뤄진 국제 사기단이 SNS 대화내역을 삭제하고,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영상 속 등장인물도 사기단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나이지리아인 8명, 앙골라인 2명, 기니‧남아프리카공화국‧라이베리아인 1명으로 이뤄진 사기단은 A씨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SNS를 통해 미군, 의사, 기업가, 엔지니어 등 직업을 사칭해 접근했고, 사회적 관계를 갈망했던 피해자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장기간에 걸쳐 친분을 쌓아갔다.
유대 관계를 형성한 이후에는 출장 중 사고처리 비용, 임금 문제해결, 통관비용 등 명목으로 금품을 빌리고 이를 갚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보 우리가 1800만원 때문에 거의 50억원을 잃기를 바라나요? 제발 나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등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경찰은 여성 피해자가 60~70%에 달하며, 젊은 층이 다수라고 밝혔다.
로맨스스캠 일당은 국내 총책 3명, 인출책 10명으로 구성된 점조직으로,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이 일정한 직업 없이 범죄수익금으로 생활했다고 보고 있다. 피해금 인출 후에는 관련 SNS 대화내역 삭제하고 현금 인출 시 입었던 옷을 폐기하는 등 단속에도 철저히 대비했다. 로맨스스캠에 사용한 대포통장은 비자 만료 등으로 본국으로 귀국하는 외국인에게 개당 600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로맨스스캠 조직원이 더 있다고 보고 검거활동을 전개 중이다. 아직 잡지 못한 해외총책을 맡은 나이지리아인 1명에 대해서 7월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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