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45년이나 걸렸네요
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김슬옹 기자]
올해 한글날 무렵(10.6) 방영된 EBS의 '정관용의 명사 초대석'에서 필자를 '한글운동가 김슬옹'이라고 소개하다 보니, 어느 지인으로부터 박사학위가 세 개나 있는 사람을 '한글학자'라고 소개해야지 왜 한글운동가라고 소개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 1978년(고 2) 외솔 최현배 묘소를 참배하고 나서 고교 한글나무(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 회원들(윗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아랫줄 왼쪽 두 번째부터(박덕영 현 연세대 법대 교수, 오동춘 지도교사, 탤런트 서갑숙) @김슬옹 |
ⓒ 고교 한글나무 |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45년 동안 세 개의 박사학위와 140여 편의 학술 논문, 천여 편의 대중 칼럼을 써야 했다. 아니 이렇게 했기에 <한글학>을 저술할 수 있었다. 한글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이론적 기반으로서 한글학을 연구해야 했고 학자로서 올곧은 학문적 실천을 위해 끊임없이 한글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이정표로 나의 등대가 되어주신 세종대왕 이도(李裪, 1397-1450), 헐버트(Homer Hulbert, 1893-1949), 주시경(1876-1914), 최현배(1894-1970) 네 분의 삶이 그러했다. 이분들은 대중 운동과 학문의 경계가 없었다. 아니 경계 자체가 없었다. 네 분 모두 운동과 학문이 철저히 융합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운동'이 아니라, 한 나라 임금으로서 '정책'을 편 것이지만, 한자와 한문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세종 임금도 소수자(마이너리티)였기에 감히 '운동'이란 말을 붙일 만하다.
한글운동과의 첫 만남
필자가 처음 한글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77년 철도고등학교 1학년 후반기였다. 평소 국한문혼용 신문에 분노(?)를 느끼던 중 <학생중앙>이란 잡지에 5월호(확실한 기억은 아님)에 '한글운동, 국어운동을 함께할 사람들 찾는다'라는 광고를 보고 한글학회 부설 전국국어운동고등학생연합회(국운회, 한글나무)에 가입하면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 연세대 법대 박덕영 교수가 학생중앙 학생기자로 광고를 낸 것이었다. 나는 이 모임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을 읽고 외솔과 같은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한자식 이름(용성) 대신 토박이말 이름(슬옹)을 지었고 2년간의 사회생활을 거쳐 1982년에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글학>은 45년간 한글운동을 해오면서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체계화하고 이론으로 정리해 한글 운동과 한글 연구의 바탕을 세운 것이다. 한글운동가들에게는 한글운동의 이론 근거를, 한글학자들에게는 실용적 당위성을 제시해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갖는 의의와 가치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이 책은 학문 분야에서는 그동안 축적해온 한글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담론을 학문 체계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이 될 수 있다. 한글은 58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주류 문자로서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해온 역사는 짧다. 따라서 한글에 관한 각종 연구와 학문적 탐구에 본 저서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실용 분야에서 이 책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한글은 현재 한류 열풍을 타고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어와 더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의 예술적·융합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글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학문적, 실제적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 정신적, 문화적 측면에서 이 책이 한글과 한글학의 보편적 가치와 내용을 더욱 확산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한글에 담겨 있는 보편적 과학, 철학 가치뿐만 아니라 인문적 가치는 한국의 자존감을 넘어 인류애의 보편적 가치의 자존감이 될 수 있다.
한글학은 단순한 개별 문자학을 넘어 일종의 융합학문으로서 독자적 학문 체계로 구성되어야 하고 다양한 학문 담론으로 풍성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맥락 분석 방법론으로 한글학의 구성원리를 세우고 그에 따른 한글학의 특성과 내용을 규명하였다.
한글학의 특성과 내용을 문자학과 융합 측면에서 한글 창제 주체론, 한글 철학론, 한글 문화론, 한글 교육론, 한글 맵시론, 한글 산업화론, 한글 역사론, 한글 정책론, 한글운동론 등으로 나눠 그 특성과 내용을 분석했다.
사실 이 책은 학술서로 집필한 것이지만, 학문과 운동의 경계가 없듯 쉬운 문체를 사용했다. 이 책의 독자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굳이 대상 독자를 밝힌다면 한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필자가 45년간의 한글운동과 연구를 바탕으로 쓴 ≪한글학≫ 표지 필자가 45년간의 한글운동과 연구를 바탕으로 쓴 ≪한글학≫ 표지 @김슬옹 |
ⓒ 김슬옹 |
한글에 관한 모든 내용을 15장으로 구성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한글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과 특성, 내용 구성원리 등을 분석하였다. 1장에서는 '한글' 특성 자체에 한글학의 필요성이 내재하여 있고 이를 통해 한글학의 개념과 '한글학' 연구사를 규명하였다. 2장에서는 한글학의 역사적 배경과 특성을 규명하고 맥락 중심 분석론에 따라 한글학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3장에서는 한글학의 가장 기본인 한글 명칭과 한글 관련 용어들의 정확한 개념과 유래, 구별 등을 논하였다.
4장과 5장, 6장에서는 한글의 기원인 훈민정음 창제 주체와 창제자의 문자에 담긴 철학과 한글 교육론을 분석하였다. 곧 4장에서는 세종 단독 창제를 부정하는 비친제설의 맥락을 분석하고 단독 창제 논의를 더욱 분명하게 논증하였다. 5장에서는 한글 철학론에서는 동양의 보편 철학이기도 한 음양오행론이 훈민정음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맥락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훈민정음 담긴 음양오행 철학은 사람 중심의 철학이었음을 밝혔다. 6장에서는 한글에 담긴 융합적 내용과 가치를 가르치는 한글 융합 교육론을 교수법 중심으로 밝혔다.
7장, 8장, 9장은 주로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한글학 특성과 내용을 밝혔다. 7장의 한글 맵시(typography)은 한글 글꼴론과 한글 디자인론, 한글 서체론 등의 맥락과 주요 특성을 '꼴, 소리, 뜻, 실체'의 사분법을 통해 밝혔다. 8장에서는 한글문화의 개념, 가치와 더불어 확산 전략을 분석했다. 9장 한글 산업화론에서는 한글 산업화의 기반인 한글의 예술성과 서사성을 바탕으로 한글 산업의 효용성과 한글의 브랜드 가치 높이기, 디지털 중심의 한글 산업화 전략과 방안을 알아보았다.
10장 한글 역사론에서는 언문일치 중심의 국어사 시대 구분을 통해 실질적인 한글 역사를 규명했다. 근대 한글 역사를 새롭게 규명했다. 11장 한글 세계화론에서 저술 과정에서 새롭게 개발한 외국인용 한글 음절표 중심의 한글 교육을 통한 한글 세계화 전략을 살펴보고, 15세기 훈민정음을 철저히 적용하고 확장하는 전략으로서의 세계화 방안을 세워 보았다.
마지막으로 12장, 13장에서는 정부 중심의 정책론과 민간 중심의 운동론을 살펴 실천과 실행 중심의 한글학 구성 내용을 따져 보았다. 12장 한글정책론에서는 국어기본법의 역사적 맥락을 훈민정음 정신과 조선어학회 정신으로 보고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국어기본법을 강화하는 전략을 알아보았다. 13장 한글 운동론에서는 한글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언어학적 타당성을 밝히고 한글 운동사를 통해 한글 운동이 한글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를 밝혔다.
14장에서는 헐버트가 왜 한글의 중시조인지를 처음으로 밝혔다. 헐버트의 한글, 한국어 연구가 국어사나 국어학사에서 매우 중차대함을 논증했다. 15장 결론에서는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한글학이 융합학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고 실용적 영향력이 있는지를 갈무리했다.
한글학은 이제 단순한 개별 문자학을 넘어 일종의 융합학문으로서 독자적 학문 체계로 구성되고 우리는 한글학을 세움으로써 한글의 제대로 된 가치를 규명할 수 있다.
이 책을 제 학문과 한글운동의 뿌리이자 거울이신 세종대왕 이도, 호머 헐버트, 주시경, 최현배 네 분께 바치고 싶다. 특히 이 책의 직접적인 바탕이 된 <한글갈>(1942)을 지으신 외솔 최현배 선생께 이 책을 헌정한다.
'한글학'이라는 학문을 세우기 위해 먼 길을, 오랜 시간을 달려왔다. 그러나 그 길은 홀로 이룩한 길이 아니었다. 한글(훈민정음, 언문)을 창제하고 반포한 이가 터 잡아 놓은 튼튼한 바탕길이 있었고, 최석정, 신경준, 유희 등, 헐버트, 주시경 등 선구자들이 만든 길이 있었다. 가장 어두운 일제 강점기에 나온 최현배의 ≪한글갈≫은 든든한 이정표가 되었고, 한글에 대한 수많은 담론을 만들어 온 각종 저술들, 실제 한글을 사용해온 이들의 소중한 역사는 튼실한 학문 탐구의 거름이 되었다._15장
한글은 점과 원과 선만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기하학적인 문자이면서도 발음기관을 관찰하고 분석한 과학을 반영한 과학의 문자이다.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서의 과학, 자연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과학, 자연 현상 그 자체의 법칙을 탐구하는 수학ㆍ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지구 과학 따위, 이런 과학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실용 과학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런 다양한 과학의 속성과 실체가 실제 한글에 반영되어 있다. _1장
한글 산업화의 기반은 역시 한글이라는 문자 특성에서 비롯된다. 곧 한글의 기하학적인 확장성과 그에 따른 미적 가치, 문자 미학, 문자 조형의 아름다움 그리고 문자를 통한 상상과 이야기의 생산성, 문자와 다른 요소와의 융합의 무한성, 사람 중심의 인문학적인 포용성 등이다. 실제 한글 산업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한글의 예술성과 서사성이다. _9장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반도체 최대 위기... 대통령이 바뀌든지, 대통령을 바꾸든지
- "씻지도 못하는 서울시 쪽방? 차라리 길거리가 낫다"
- 채상병 실종 보고에 임성근, '왜 들어갔냐' 아닌 "왜 빠졌냐" 물어
- 초등 5학년들에게 '자퇴' 영상 보여줬더니... 의외의 반응
- '201석 야당 연합' 달성, 결국 이 방법뿐이다
- 동학 교주 최시형의 항일투쟁은 왜 인정받지 못 하나
- "아파트 청소하러 갔다가 사고... 엄마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어요"
- 김정은 "적 핵도발에 주저없이 핵공격 불사"... ICBM 발사부대 격려
- 부산엑스포 실패, 끝내 문책은 없었다
- 삼척 사는 중학생인데요, 등굣길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