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마흔 둘에 급제한 조선시대 선비의 일기
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조선 중기 문신 조성당 김택룡이 남긴 생활일기인 ‘조성당일기’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김택룡은 어린 시절 퇴계 이황의 제자인 월천 조목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평생 퇴계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마흔둘에 급제해 20년간 내외관직을 역임했다. ‘조성당일기’는 조성당 김택룡이 말년에 쓴 생활일기로, 1612년, 1616년, 1617년의 일상을 기록한 세 권이 전해진다. 인간관계, 고을의 각종 사건 등에 관한 사실과 생각을 상세히 기술해 당시 향촌 속 양반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역사학, 한문학, 사회학, 인문정보학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그의 일기를 통해 17세기 영남 사족의 생활상을 다방면으로 살핀다.
위와 같이 길게 서두를 늘어놓은 까닭은 『조성당일기』가 매우 까다롭고 골치 아픈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 일기는 3년 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별 가치 없는 단편斷片인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조선시대 생활일기가 다수 남아 전하지만 그날그날의 사실들을 짧게 적어놓은 일지日誌에 불과한 자료도 적지 않다. 그런 일기들에 비하면 『조성당일기』의 하루하루의 기록은 무척 상세한 편이며, 서술 태도나 문장 또한 매우 진솔하여 저자인 김택룡의 내면을 비교적 솔직히 드러내고 있어서 자료의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수습하여 연구하자니 쉽지 않고 버려두자니 아까운 계륵과 같은 존재다. 저자인 김택룡 또한 다면적 인물이다. 그는 월천 조목의 고제高弟인 유학자이면서 당대 지역을 대표하는 명망가 중 한 명이었으나, 다른 한편 가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행적에도 모난 구석이 없지 않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손수 써서 남긴 『조성당일기』는 조심스럽게 독해되어야 할 (그어떤 텍스트도 마찬가지겠으나) 텍스트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당대 유력 사족이 남긴 상세한 생활일기로서 그 가치에 심대한 손상을 줄 정도는 못 된다. - p.14~15
김택룡이 지은 「제월천선생문祭月川先生文」에는 어린 김택룡에게 월천이 어떤 스승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김택룡은 8세에 31세 조목을 스승으로 섬겼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인도하고 부축하며 자상히 일깨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다고 했다. 김택룡에게 있어서 월천은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월천이 어두운 길에 나침반이 되어서 헤맬 때 방향을 알게 하셨고, 그 은혜가 낳아 준 부모와 같아서 자식처럼 보살펴 주셨다고 했다. 1559년(명종 14)에 조목의 아들 구붕龜朋이 태어났는데, 조목에게 있어서도 김택룡은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김택룡은 월천에 대해 “오지 않으면 근심하시고 보고 나면 기뻐하셨다”라고 회상했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사승 관계를 뛰어넘는 부자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p.104
이 글에서 살펴본 바 기호 사림파의 인물들은 비록 한계가 있는 일부 사례의 관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가정보』 네트워크에 진입한 시기도 매우 오래되었고, 진입한 정도도 깊었으며(즉 부측, 모측의 다수 인물이 포함), 개인별 관직 이력도 상대적으로 더 풍부했다. 영남 사림파의 경우, 『가정보』에 진입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진입했다 하더라도 부조 대부터 문관의 명망가가 되기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영남 사림파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국적인 사족사회 내에서 가급적 더 중앙으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치권력에 접근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었다. 정치권력을 통해, 다양한 자원의 습득을 통해 사족 네트워크 내에서 중심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김택룡 역시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p.222~223
필자는 『조성당일기』의 내용을 반복해서 읽으며 김택룡의 생활을 여러 각도로 검토하는 가운데, 일기에 기록된 유관 장소의 위치를 현대 지도에 비정하기 위한 단서를 하나하나 발췌해 정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겠다고 판단이 되면, 온오프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를 폭넓게 수집·검토·참고하였다. 이후 총 84곳의 고지명에 관한 좌표를 찾아서 그것들을 점點, dots으로 찍고, 점으로 찍은 장소 사이를 선線, lines으로 연결하고, 장소 사이의 위상을 파악하기 위한 면面, faces을 전자 지도에 구현하는 실험적 시도를 진행함으로써, 『조성당일기』에 기록된 김택룡의 생활을 공간적차원에서 해부할 수 있는 기초 자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데이터를 매개로 조선시대 일기를 꼼꼼하게 독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자, 조선시대 연구를 위한 기초 자원을 디지털 포맷으로 가공·공유하고자 하는 디지털인문학적 시도라 할 수 있다. - p.307
조성당일기 | 윤성훈·장준호·신동훈·백광열·최은주 외 1명 지음 | 324쪽 | 은행나무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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