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지방은행]③지역에선 '왕'...상호견제 부실한 지방은행
290조원.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전국 6개 지방은행(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이 보유한 총자산이다. 개별 은행의 자산은 다른 은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6개 은행을 합산하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IBK기업은행(약 450조원) 다음 가는 막대한 규모다.
이렇게 성장한 지방은행이 대형 금융사고로 흔들리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조직문화’를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특유의 ‘연고주의’, ‘형-동생’ 문화가 지역 밀착형 은행으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지만, 한편으론 여러 금융사고와 관련해 온정주의적인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뗄 수 없는 ‘연고주의’...온정주의 불렀나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각 은행이 공시한 바에 따르면 전국 6개 지방은행의 주 영업구역 점포(지점·출장소) 수는 673개소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점포 수의 84.2%에 달한다. 주 영업구역은 부산은행의 경우 부산, 대구은행은 대구·경북, 경남은행은 경남·울산, 광주은행은 광주·전남, 전북은행은 전북, 제주은행은 제주를 의미한다.
그런 만큼 각 지방은행은 연고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지방은행 중 가장 규모가 큰 부산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산 지역 전체 수신의 34.5%, 전체 여신의 27.7%를 차지하고 있다. 광주은행도 광주·전남 지역에서 각각 27.4%, 18.6%를 나타낸다. 대략 지역 전체 여·수신의 20~30%를 하나의 은행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은행의 경우 각종 시·도 및 시·군·구 금고를 독식하고 있고, 지역주민들의 연고정서가 강하게 발휘돼 수신측면에서 (시중은행 등에 비해) 유리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정책자금의 우선 대상이 되는 만큼 여신 경쟁력도 시중은행 못지않다”며 “각 지역에서는 아직 5대 은행의 지역 점유율은 합산을 해야 뒤쫓아 가는 정도”라고 했다.
지역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기껏해야 본부장급에서 거래처를 만나는데, 지방은행은 본점이 여기(지방)에 있으니 행장, 부행장이 직접 영업을 뛴다”면서 “효과가 매우 큰 영업전략이고 실제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각선 ‘형·동생’으로 대표되는 지역은행 특유의 ‘연고주의’가 임직원 간 내부견제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관계형·지역밀착형 금융이란 측면, 조직 내 인화·단결이라는 측면에서 연고주의의 장점도 있겠으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단 것이다.
일례로 여신 사업과 관련해 기업의 각종 재무지표보다 조직 내의 관계, 혹은 기업인과의 관계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이외 최근 일어난 불법계좌개설 사고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모(某) 지역에서 근무하는 금융권 관계자는 “(중앙과 비교해 보면) 지방은행엔 끈끈한 형·동생 문화가 남아있다. 예컨대 본점 승인을 받을 사안이 있으면 (담당자의) 후배가 ‘형님 도와주십시오’라고 읍소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단 의미”라며 “이 때문에 지표상으론 (차주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도 (지방은행이) 거래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여신담당자들과 (거래처가) 형·동생처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지방은행이 소재한 연고지를 중심으로 영업망이 구축돼 있고 인재를 채용하다 보니 임직원 간 견제에선 아쉬운 측면이 많단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방은행 CEO들의 면면을 보면 아직까지는 연고주의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외부가 아닌 내부출신일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짙다. 일례로 부산은행을 보면 역대 내부출신 행장 5명 중 주요 학맥(부산대, 동아대, 부산상고, 경남상고)을 거치지 않은 은행장은 1명에 그친다. 경남은행도 내부출신 행장 4명 중 3명은 마산상고, 경남대 등을 거쳤다. 대구은행의 경우도 최근까지 경북고-대구상고로 대표되는 학맥 간 갈등이 치열했다.
이 관계자는 “대구은행에서 일어난 불법계좌개설 사건만 해도 시중은행에서는 10여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라며 “시중은행의 경우 최근 들어온 신입 은행원들은 지점장이 하라고 해도 교육받은 내용이나 규정과 다르면 ‘규정과 다르다’고 거부하는데, 지방은행의 경우 조직 내에 정실 문화가 아직 있다 보니 ‘설마 나를 어찌하겠나’, 혹은 ‘누군가 해결해 줄 것’ 등의 심리가 발동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 들어선 지역 상업고등학교로 대표되는 학맥의 영향이 축소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역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역 내에서 지방은행의 위상이 더욱 커지고 있는 데다, 전반적으로 대학진학률도 높아져 여러 대학 출신들이 들어오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진 연고정서와 온정주의적 마인드가 역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감독당국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도 내부통제가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임직원 간 상호 감시·견제하는 문화가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옆자리 행원이 갑자기 고급차나 고급주택를 구매한다든가 하면 의심하고 제보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지방은행의 경우 임직원끼리 가까운 지연, 학연 등으로 얽혀있다 보니 내부통제 강화라는 측면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지역에선 王…타산지석 삼을 상대가 없다
‘1도 1은행’을 모토로 설립되다 보니 연고지 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유력한 상대가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중앙에선 ‘영원한 1등 은행’이 없는 만큼 5대 은행을 비롯한 여러 은행이 서로 경쟁하면서 때로는 타사에서 일어난 금융사고를 타산지석 삼기도 하지만, 지역에선 연고 지방은행 외엔 타사의 지점망 정도만 설치된 상황이어서 유의미한 교류를 이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밀집해 있는 중앙의 경우, 어떤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은행들도 빠르게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사건을 복기한다. 리스크·컨플라이언스 부서끼리도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유·무형의 교류가 이어진다”면서 “지방은행의 경우는 가깝다고 해도 광주-전주, 부산-창원 등으로 물리적인 차이가 있다 보니 은행 간 교류도 많지 않은 점이 있다”고 밝혔다.
지역은행 간의 뚜렷한 지역색이 영향을 미치고 있단 주장도 제기된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경우 같은 BNK금융지주 산하이지만 양사는 ‘투 뱅크’ 체제로 독립경영을 유지 중이다. 혹시나 합병으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에 반발이 이어지면서 경남은행은 그룹에 편입된 지 약 10년이 흘렀음에도 부산은행과 전산망조차 합치지 못한 상태다. 지주 차원의 통제력이 유명무실해지며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상호 간 인사교류도 없는 수준이다. 이 역시 대규모 횡령사건과 뒤늦은 적발의 또 다른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지방 소재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기 전엔 BNK금융이 다른 은행에 비해 PF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우리가 볼 땐 리스크가 있는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던 편”이라면서 “투 뱅크 체제가 유지되면서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간 경쟁이 붙은 부분도 있고, (PF와 관련한) 위험관리도 느슨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했다.
지역 금융권 관계자는 “두 은행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데 따른 비효율은 둘째치더라도, 통합과 관련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경남은행에 대한) 지주회사의 통제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낙후된 전산망도 그대로고, 지주회사의 통제력이 닿지도 않고 있는 만큼 내부통제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부산=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대구=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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