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최대 위기... 대통령이 바뀌든지, 대통령을 바꾸든지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입력 2023. 12. 21. 07:06 수정 2024. 1. 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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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세계적 반도체 장비업체들, 탄소 중립 실천... 한국은 정부가 걸림돌

[이봉렬 기자]

 방진복을 입은 윤석열 대통령(왼쪽 부터)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을 방문,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사업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23.12.13
ⓒ 연합뉴스
 
지난 특강에서 대통령님께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회사 ASML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복습 한 번 하겠습니다. ASML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회사인데 미국, 독일, 대만 등에 있는 생산시설에서 장비 모듈을 제작한 뒤 네덜란드로 보내고 본사에서 조립과 테스트를 마친 후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에 판매를 합니다. 한국에도 R&D센터와 생산시설을 만들 의향은 있지만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ASML의 입장에선 재생에너지 확보가 어려운 한국에 선뜻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반도체 장비회사들은 어떨까요? ASML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고 유럽이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진작에 탄소배출을 규제하는데 앞장선 곳이라서, ASML이 거기에 발맞추느라 조금 더 앞서 나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회사들의 경우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5대 반도체 장비회사를 꼽으라면 네덜란드의 ASML,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트리얼스(AMAT)와 램리서치(LAM), KLA,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이 있습니다.

세계 톱5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탄소 중립 달성 계획
 
 AMAT의 탄소중립 목표와 지속가능한 설계의 결과물인 새로운 장비 플랫폼 "비스타라(Vistara)"
ⓒ AMAT
 
먼저 AMAT부터 보겠습니다. 2022년 AMAT의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까지 AMAT의 전 세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사가 있는 미국의 경우 이미 100% 목표를 달성했고, 전 세계 사업장을 모두 포함하면 69%를 달성한 상황입니다. 이와 함께 2030년까지 AMAT 자사의 운영을 위한 탄소 배출(범위 1과2)은 물론 공급사와 고객사에서의 장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범위 3)까지 배출량을 50% 이상 줄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AMAT의 탄소 중립을 향한 실천에는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난 6월 AMAT의 최고경영자는 세미콘웨스트 행사에서 "넷 제로를 향한 협력적 경로"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는데 거기서 새로운 장비 플랫폼인 비스타라(Vistara)를 소개합니다. 특정 공정을 수행하는 여러 장비를 하나로 결합한 이 새로운 플랫폼은 기존 플랫폼에 비해 설치 공간은 30%, 에너지 소비는 최대 35%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2030년까지 에너지, 화학물질, 클린룸 면적 등 세 가지를 30% 줄이겠다는 AMAT의 "3x30 계획(지속가능한 설계)"에 따라 나온 첫 작품입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회사들이 핵심으로 두고 있는 화두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LAM 역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을 위한 실천 항목별로 진행사항을 표시해 놨습니다.
ⓒ LAM
 
LAM은 어떨까요? LAM역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계획대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2025년까지 온실가스를 25% 줄이고,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한 계획은 아직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며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 중립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대한 진행 상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자체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측정 장비를 주로 만드는 KLA가 발행한 연례보고서를 보겠습니다. KLA 역시 2030년까지 모든 전기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2030년까지 범위 1과 2에 해당하는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KLA는 2023년 부터는 자사에 부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도 탄소 절감과 관련한 목표와 지표를 참조하겠다고 합니다.
ⓒ KLA
 
KLA의 보고서에서 눈여겨볼 것은 2023년부터는 자사에 부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도 탄소 절감과 관련한 목표와 지표를 참조하겠다는 부분입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탄소 배출이 높은 업체와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모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목표로 하고 있고, 탄소 중립과 관련해서는 각 사가 처한 형편에 따라 별도의 목표를 정한 후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TEL은 탄소 중립을 기존 목표보다 10년이 더 빠른 2040년에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TEL
 
이번에는 일본의 반도체 장비업체를 살펴보겠습니다. TEL은 애초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초, "기후변화 대응은 지구촌 전체가 매우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탄소 중립을 기존 목표보다 10년이 더 빠른 2040년에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탄소 중립을 위한 여러 항목 중 재생에너지 사용 100%는 2031년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 톱 5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모두 향후 10년 이내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고 있고, 2050년까지는 모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습니다. 
 
온실가스 프로토콜 (GHG : Greenhouse Gas)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 Greenhouse Gas)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을 위한 국제적인 기준을 마련했는데 크게 세 개의 범위(Scope)를 설정했다.

범위 1 (SCOPE 1): 기업의 소유 혹은 통제 범위 안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범위 2 (SCOPE 2): 기업이 구매한 전력 사용으로 인한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범위 3 (SCOPE 3): 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 가운데 1과 2를 제외한 기타 모든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

이중 범위 3은 부품이나 서비스를 납품하는 협력사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에서의 탄소 발생까지 측정하기 때문에 달성이 어렵고 기업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탄소 중립 관련, 구체적인 계획 세우지 못한 한국 반도체 장비업체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메스, 원익IPS, PSK, 케이씨텍, 주성엔지니어링 같은 회사들은 한국 기업이지만 전 세계 반도체 제조회사에 장비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우리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탄소 중립 준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각 사의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세계 톱5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각 사 홈페이지에 탄소 중립을 위한 목표를 공개하고 또 그와 관련된 연례보고서를 꼼꼼하게 작성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경우에는 탄소 중립과 관련된 장기 목표나 보고서를 밝힌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업체의 환경경영 게시물. 시계순으로 세메스, PSK, 케이씨텍, 원익IPS
ⓒ 각사 홈페이지
 
세메스 : 녹색환경 사업장 구축을 위해 화학물질, 에너지, 수자원 사용을 저감하고, 폐수 재이용 및 폐기물 재활용을 활성화하며, 오염물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익IPS : 원익IPS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예방 정비와 미사용 시설 사용 차단 등 유틸리티 설비의 가동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기계장치의 처리시설 개선을 통하여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끊임없는 활동으로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PSK : PSK그룹은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위기에 있어 환경경영이 기업의 필수 책임과 의무임을 인식하며, 환경경영시스템 (ISO14001) 인증을 취득하여 국제표준 따르고 사업장 내에서 실천 가능한 친환경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케이씨텍 : 케이씨텍은 ISO14001 [환경경영시스템]을 획득하여, 환경개선 및 모니터링 관리와 환경법규 준수를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환경개선 및 투자를 통해 환경보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을 통해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관리 및 저감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각 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환경 관련 문구입니다. 나아가 한 기업은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환경 정책 및 목표 설정' 항목에 "용지 및 잉크·토너 사용 절감", "청소용품 구매 절감", "식수예약시스템을 통한 조리양 조절로 음식폐기물 감소"등을 활동계획으로 적어 놓는 정도였습니다.
 
 태양광 장비를 함께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RE100 가입 계획을 세워 두는 등 다른 업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 주성엔지니어링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장비와 함께 태양광 장비를 함께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이 "탄소중립 및 환경이슈 관련 중장기 목표 및 전략"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RE100 가입 계획 및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밝힌 게 눈에 띕니다.

외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소 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RE100에 가입하고 재생에너지 달성 목표를 설정한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장비업체에도 같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탄소 중립 달성 여부가 반도체 장비 판매를 위한 필수 선결 조건이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걸 달성하기 위해 해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플랫폼 설계부터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왜 이렇게 탄소 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에 소극적인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한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탄소 중립을 방해하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총 발전량의 7.15%입니다.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28.1%에 비하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습니다. 2022년 국내 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은 약 43테라와트시(TWh)로 포스코와 삼성전자, 이 두 회사가 일년에 사용하는 전력량 보다도 적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오히려 낮춰 버렸습니다.

그러니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어디서 재생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으며 어떻게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지난 3월 대통령께서 야심 차게 발표했던 '용인 300조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기억하시나요? 300조 원을 투자해서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5개 짓고, 소재·부품·장비 기업 150곳을 유치한다고 했습니다.

그 클러스터를 운영하려면 10기가와트(GW)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측입니다. 이는 현재 수도권 전력수요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산업부와 한국전력은 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그 클러스터 안에 LNG발전소 6기를 신설한다는 계획입니다. LNG발전은 재생에너지가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함께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LNG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가지고 삼성반도체 팹 5개를 운영하면서 RE100을 달성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RE100을 포기하든 반도체 팹 5개를 포기하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겁니다. 삼성전자의 고객사인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에 납품하는 모든 협력업체에 RE100 조기 달성을 요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통령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구하지 못하게 된 삼성전자가 용인 대신 미국의 텍사스에 신규 팹을 짓는 건 기업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삼성전자 미국지사의 경우는 진작에 RE100을 달성한 상태입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유치하겠다는 소부장업체 150곳도 클러스터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삼성전자조차 구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를 반도체 소부장업체들이라고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도체 소부장업체들 역시 생산 거점을 재생에너지 수급이 가능한 곳으로 옮기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최대 고객사가 있는 한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싶어도 재생에너지를 구하지 못해 들어오길 꺼리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우리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옮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RE100이 뭔지 몰라 답하지 못했던 것은 그냥 민망하고 말 일입니다. 하지만 그 후로 RE100과 재생에너지를 적대시하고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가로막는 정책을 펴는 건 국익에 해가 되는 일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 산업에 대한 투자와 발전에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대통령님입니다. 지금이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통령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바뀌지 않으면 저부터도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대통령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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