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고등어와 임연수, 그리고 김구 선생님
김두용 2023. 12. 21. 07:00
“남영동에 고갈비집이 유명했잖아요.”
무슨 음식인가를 먹다가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이 문득 이 말을 꺼냈습니다. 전우용 선생은 저와 같은 연배입니다. 남영동 고갈비집이 어떤 식당을 지칭하는 것인지 저는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때 우리 친구들은 남영동 고갈비집을 ‘숙대앞 밀주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전우용 선생과 제가 청춘이었던 1980년대의 일입니다.
남영역에서 내려 숙명대학교로 올라가다가 왼쪽에 좁게 난 골목으로 십여 미터 들어가면 나타나는 막걸리집이었습니다. 폐가를 가게로 쓰고 있었습니다. 벽면에는 온갖 낙서가 있었고 조명은 어두워서 음침했습니다.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주었는데 시중의 막걸리보다 독해서 밀주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우리는 밀주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안주는 고갈비였습니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라고 하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당시에 제일 맛있고 비싼 음식이 강남의 ‘가든’에서 파는 소갈비였습니다. (꽃등심의 신화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합니다.) 소갈비 아래가 돼지갈비였고, 돼지갈비 아래가 닭갈비였습니다. 닭갈비도 못 먹는 처지에 있는 자들은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라고 이름을 붙여서 막걸리와 함께 먹었습니다.
기억이 흐릿한데, 장소는 남영동 밀주집이 맞을 것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다가 고갈비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건 고등어가 아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제가 주장했는지 친구가 주장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고갈비가 고등어가 아니다는 주장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술값 내기를 했고, 주인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응. 그거 임연수.” 역시 기억이 흐릿한데, 시장 상황에 따라 고등어도 내고 임연수도 내고 한다는 말을 들은 듯도 합니다.
고갈비라는 단어는 부산에서 탄생했습니다. 부산은 고등어 집산지입니다. 고등어는 값싼 생선이었고 고갈비는 서민의 안주로 번창했습니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고등어보다 값싼 생선이 있었으니, 임연수입니다. 임연수구이를 고갈비라고 부르는 막걸리집이 생겼습니다. 부산 고갈비의 유명세에 서울 임연수가 올라탄 것인데, 고등어든 임연수든 기름에 튀기듯 구우면 막걸리와 잘 어울려주어 이를 문제 삼는 주당은 없었습니다.
남영동 밀주집 같은 가게가 인사동에도 있었습니다. 종로 큰길에서 인사동으로 올라가다가 왼 쪽으로 난 골목 안에 있던 막걸리집이었습니다. 허름하기로는 남영동 밀주집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이 막걸리집에서도 임연수를 구워서 내었는데 손님들이 임연수구이를 자꾸 고갈비라고 하니까 이갈비라고 불러달라고, 주인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임연수를 이면수라고도 불렀고, 그래서 이갈비입니다. 임갈비라고 해도 될 것이었는데, 주인이 혹시 이씨인가 하고 상상을 해봅니다.)
남영동 밀주집과 인사동 막걸리집은 이제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라졌겠지요. 남영동 밀주집은 대학을 졸업하고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인사동 막걸리집은 2014년에 마지막으로 갔었습니다. 그때에 찍은 사진이 있으므로 이 기억은 분명합니다. 인사동 막걸리집 벽면의 차림표를 보시면 제일 위에 ‘갈비(생선)’라고 적혀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예전에 저만 가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습니다. 생선구이를 갈비라고 부르며 가난을 위로했습니다.
한때에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을 추억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다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이 선진국 맞습니까?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남영동 밀주집이었는지 인사동 막걸리집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동네 어느 선술집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나 벽면의 낙서 중에 간혹 발견되는 김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그래, 우리나라가 이래야지” 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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