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임금 올려라"…내년 춘투가 日금리 방향 정한다
내년 일본의 춘투(春鬪)가 일본은행(BOJ) 통화 정책 변경의 분기점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춘투는 매년 초 일본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벌이는 임금 인상 투쟁을 말한다. BOJ가 통화 정책 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 임금 인상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춘투 결과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BOJ는 18~19일 이틀간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기존의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19일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현재로써 출구 전략을 확실히 제시하기 어렵다”며 “임금과 물가 선순환 확인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가즈오 총재는 지난 7일에도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마이너스 금리 해제와 장·단기 금리 조작 개선(폐지)도 시야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위한 선결 과제로 임금 인상을 반복해 언급한 것이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일본의 실질 임금은 지난 10월까지 19월째 줄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 10월 직원 5인 이상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실질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2.3% 줄었다.
임금 하락은 내수 부진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동반한 경기 침체) 탈피에 안간힘을 쓰는 일본 경제 당국과 BOJ 입장에서 좋은 흐름이 아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임금 상승 촉진을 위해 전년 대비 7% 이상 임금을 인상한 기업에 대해 인상액의 최대 35%를 법인세로부터 공제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을 추진한다.
물가상승률의 경우 BOJ의 목표치인 연 2%를 넘었다. 하지만 BOJ가 원하는 그림인 ‘임금 상승을 동반한 물가 오름세’와는 거리가 있다. 원자재 가격 오름세로 물가도 뛰었다는 게 BOJ의 판단으로 풀이된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지난 10월까지 19개월 연속 일본은행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임금 상승을 수반하는 물가안정 목표 달성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내년 춘투 결과에 따라 지지부진한 임금 상승률이 오름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런 만큼 춘투 결과가 일본 통화정책의 흐름을 좌우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에노 야스야 미즈노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7년 이후) 약 17년 만의 금리 인상을 위해서는 내년 춘투에서 충분한 임금 인상률이 확보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선 내년 춘투에서 3.6% 정도 임금 인상이 이뤄질 경우 BOJ가 통화정책을 변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6%는 올해 춘투 임금 협상 이후 평균 임금 인상률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3%를 넘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BOJ는 임금 인상으로 실질 임금만 개선되면 일본 경제가 좀 더 안정적인 회복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며 “우에다 총재의 발언을 고려하면 BOJ의 정상화는 내년 봄 춘투 임금 협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내년 2~3분기께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봤다.
BOJ의 통화 정책 방향에 따라 엔화 가치의 향방이 좌우된다. 당장 BOJ가 통화 정책을 고수한다는 소식에 최근 꿈틀대던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20일 오후 3시 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04.24원이다. 전일 같은 시간 기준가(910.44원)보다 6.2원 내렸다.
그런 만큼 내년 3월에 나올 춘투 결과를 보고 엔화를 사도 늦지 않다는 견해가 나온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엔화를 선제적으로 매수하기보다 춘투 이후 BOJ가 실제 통화정책 정상화를 단행하는지 확인하고 매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기록적인 엔저 현상에 불붙었던 엔화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99억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3억1000만 달러 증가하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2년 6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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