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저성장 시대의 대입 N수

권기석 2023. 12. 21. 04:1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불수능' 성적표가 나오자 정시를 치르기도 전에 재수하겠다는 고3 학생이 많다고 한다.

내년엔 정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의대 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N수를 택하는 수험생도 많을 것이다.

경기도 교육연구원이 2021년 펴낸 '대입 N수생의 삶과 문화' 보고서를 보면 수험생들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위해 재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수능 자체의 특성과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 등 N수를 부추기는 현 대입 제도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기석 경제부장


‘불수능’ 성적표가 나오자 정시를 치르기도 전에 재수하겠다는 고3 학생이 많다고 한다. 내년엔 정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의대 진학을 위해 전략적으로 N수를 택하는 수험생도 많을 것이다. 시험을 치를수록 유리해지는 수능의 특성 탓에 강남에서는 ‘고교 4년’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한다. 대입 재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N수는 개인에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긴 인생을 생각하면 1, 2년 늦더라도 더 높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 경기도 교육연구원이 2021년 펴낸 ‘대입 N수생의 삶과 문화’ 보고서를 보면 수험생들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위해 재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7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갈 수 있다면 그 시간을 감당하겠다는 게 요즘 정서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도 N수는 합리적인 선택일까. 현재 우리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1.4%고 내년 전망치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 초반대다. 내년 이후로도 연 8~9%씩 성장하던 고도성장의 시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도 2%대면 그렇게 나쁜 성장률이 아니라고 한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는 2030년대부터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고 2040년대부터는 마이너스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구조 개혁’ ‘구조조정’ ‘생산성 증대’ 등이다. 표현이 다소 다를 뿐 지향하는 지점은 비슷하다. 비효율적, 비합리적인 곳곳의 관행을 효율적, 합리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자는 것이다. 인적 자원이든, 물적 자원이든 쓸데없이 낭비되는 일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성장률을 ‘영끌’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노동 개혁 어젠다에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인적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생산성을 끌어올리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사회현상으로서 대입 N수는 합리성, 효율성과 거리가 먼 행태다. N수는 일단 비용이 많이 든다. 자녀가 재수하면 부모는 ‘징역 1년에 벌금 3000만원형(또는 5000만원형)’이라는 말이 있다. 재수종합학원 비용이 그만큼 비싸다. 2024학년도 N수생 규모 16만명에 3000만원을 곱하면 4조8000억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N수로 발생하는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이 수조원대라는 얘기다. 부모들이 학원에 내는 돈은 통계상 사교육업의 ‘생산’으로 잡힐 수 있지만, 그 교습 활동이 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교습의 목표가 학습 능력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학벌의 취득에 있기 때문이다. N수는 정해진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제로섬 게임이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 게임은 효율이 필요한 시대에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하게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N수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것도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N수 과정에서 늘어난 사교육비 부담은 궁극적으로 저출산과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학생들이 N수를 선택하는 배경에는 취업난과 임금 격차,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있다. 여기에 수능 자체의 특성과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 등 N수를 부추기는 현 대입 제도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더 큰 사회 문제가 되기 전에 N수가 보편화되는 원인을 정확히 찾고 이에 대처할 방법이 제시돼야 한다. 난제가 많은 다른 개혁보다 N수를 줄이는 게 성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진국 가운데 대입에 이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