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48년 만에 몰락한 도시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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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낸드 등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명성
반도체 시장의 변화 읽지 못하고 결국 팔려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도시바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어제 상장 폐지됐다. 1949년 상장이니 74년 만이다. 도시바는 한때 일본 기술력의 상징이고 자존심이었다. 일본 최초의 컬러TV(1960년), 세계 최초 플래시메모리 개발(80년), 세계 최초 노트북(85년) 출시 등 1875년 회사 설립 후 혁신 기술에 기반한 제품으로 일본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왔다. 양자컴퓨터 필수 기술인 양자암호 관련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만큼 여전히 앞선 기술력을 자랑했다. 영광의 시간은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지난 9월 사모펀드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 컨소시엄이 경영난에 빠진 도시바를 2조 엔(약 18조원)에 인수했다. 도시바는 이제 인력 및 사업 구조조정, 자산 매각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부활의 길을 찾아야 할 형편이 됐다.
도시바 상장 폐지의 서막은 2015년 회계부정 문제와 2017년 미국 원자력발전소 자회사의 거액 손실 등으로 시작했다. 점유율 세계 1위를 다투던 플래시메모리는 2017년 지분의 절반을 SK하이닉스 등이 포함된 글로벌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에 넘기며(키오시아로 이름 바뀜) 흔적조차 사라졌다. 사업성 없는 사업은 유지하고 수익성 있는 사업은 매각하는 등 시장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결과였다. 미래 신산업을 이끌 새로운 기술 또한 낳지 못했다.
도시바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들의 몰락이 우리 대기업과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점은 작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또한 이끌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아이오닉5와 EV9을 필두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과거 일본 대기업들이 받았던 찬사를 우리 대기업들이 이어 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들 역시 중국을 비롯한 또 다른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받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으로 세계 공급망 시장이 격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도 ‘도시바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젠 우리 기업과 대학·정부·정치권이 도시바의 길 앞에서 자문(自問)해야 할 시간이다. 세계 기술패권 변화의 흐름을 적시에 포착하고 따라가고 있는가, 세계시장을 선도할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가, 그 기술이 성장해 새로운 삼성과 현대로 성장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를 갖춰 가고 있는가. 기술 혁신의 변화는 갈수록 빨라지고,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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