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국민도 누구를 맹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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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회견, No 설명, 떡볶이 병풍…
국민은 지금 뭐가 달라졌다 느낄까
한동훈의 '공정 이미지 시즌2' 주목
」
#1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국제공항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키스'를 보려면 빈으로 오라."
실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는 1908년 발표 이후 단 한 번도 빈의 벨베데레 궁전을 떠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은 빈으로 오라는, 오스트리아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워싱턴, 뉴욕, 도쿄에서도 전시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와는 사뭇 다르다. 이뿐이 아니다. 전 세계 음악 팬으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찬양받는 카라얀은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정작 오스트리아는 그의 잘츠부르크 생가에 국기를 달지 않는다. 나치당에 가입했다는 이유에서다. 다소 고지식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원칙에 충실하다. 근간을 바꾸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중립과 중재의 힘은 이 같은 원칙과 공정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오타니' 하면 떠오르는 건?
#2 LA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약 9143억원)의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을 한 일본인 프로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 그런데 그의 '97% 후불' 계약이 화제다. 한마디로 3%만(그래도 어마어마한 거액이긴 하다) 계약기간에 나눠 받고, 10년 뒤에 97%를 받는 방식이다. 게다가 이런 불리한 계약조건을 오타니가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오타니는 15일 회견에서 '후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이기는 게 나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불로 인해 생긴 여유자금으로 다른 훌륭한 선수를 획득하도록 해 어떻게든 LA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오타니 특유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진짜 오타니답다. 전 세계 야구팬들이 '오타니, 오타니'하는 이유가 있다. 투수와 타자를 겸비한 '이도류(二刀流)', MVP 홈런왕이란 실력은 기본. 하지만 그걸 넘어 오타니 하면 '도전정신' '근본에 충실한 곧은 마음'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일종의 굳은 믿음 때문이다.
#3 국가든, 개인이든 이미지란 게 있다. 쉽게 말해 세일즈 포인트다. 예컨대 이준석은 톡톡 튄다. 미국의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걸 국민들이 원한다. 얌전히 순응하고 예의나 차린다면 그건 이준석이나 트럼프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은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되새겼고,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불공정이나 자본 권력에 맞선 '공정의 뚝심'에 감동했던 사람들이다.
요즘 윤 정부에 실망하는 이가 많다. 공정하다고 믿었던 윤 대통령이 더는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의 불통을 비난하며 "소통을 위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다"고 해놓곤 본인은 1년 넘게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있다. 또 BTS를 병풍 삼는다고 문재인 정부를 욕하더니 본인은 대기업 총수들을 '떡볶이 병풍'으로 세운다. 과연 국민은 뭐가 달라졌다고 느낄까.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핸드백 수수는 낯뜨겁다. 김 여사는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2년 전 약속을 뒤집은 것에 대한 설명도 여태껏 하지 않고 있다. 굳이 그럴 일일까. 가수 이효리조차 11년 만에 상업광고 출연 중단 약속을 뒤집으며 국민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세상이다. 이해를 얻고 못 얻고는 다음 문제다.
'한동훈' 하면 뭘 떠올리게 될까
자, 다음 차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19일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엔 길이 아니었다"며 사실상 정치 참여 결심을 밝혔다.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하지만 이건(김건희 특검법) 악법"이라며 비판적 여론과 윤 대통령의 입장을 동시에 의식한 발언을 내놨다. "누구도 맹종한 적이 없다"는 말은 윤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정제된 정치적 발언이다. 웬만한 베테랑 정치인보다 훨씬 낫다. 다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실수·실언 한 방에 '공정의 이미지 시즌 2'는 단번에 무너질 수 있다. 길에는 야수와 지뢰가 난무한다. 가시밭길이 될지 꽃길이 될지, 외통수길이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순간의 이미지에 맹종하지 않는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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