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시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누가 돼야 하나
박근혜 정부 4년 차인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은 궁지에 몰렸다. 안철수가 세운 국민의당이 민주당 표를 무섭게 잠식하는 가운데 당내에서도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비노계의 공세가 매서웠다. 100석도 못 건질 것이란 공포가 당을 뒤덮었다. 그 순간 문재인은 목숨 건 승부수를 띄웠다.
박근혜의 책사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온 것이다. 사흘 밤낮을 구기동 김종인 집을 찾아가 애걸한 끝에 인선에 성공했지만 당내에서 “불구대천 원수 박근혜의 남자를 어쩌자고 데려왔나”는 반발에 부딪혔다. 문재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권을 김종인에 맡겼다. 칼을 쥔 김종인은 민주당 본좌 이해찬과 파이터 정청래 등 친노 핵심들을 낙천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소련이 핵이 없어서 망했냐”며 북한을 비판하고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등 민주당의 ‘친북 본색’도 가차 없이 지워버렸다. 그러자 민주당에 등 돌렸던 중도층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박과 비박이 공천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인 여당 새누리당의 꼴불견도 민주당에 호재가 돼줬다. 총선 다음날, 민주당은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에 1석 앞선 원내 1당에 올랐다. 박근혜의 남자를 데려와 박근혜 당에 맞선 문재인의 광폭 우클릭이 대박을 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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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 죽 쑤는 근본 이유는 양극화
약자 배려 등 ‘혁신’해야 돌파구
중도 확장 가능 상징적 인물이 답
」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은 딱 8년 전 총선 직전 민주당과 같은 형국이다. 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고착된 가운데 100석도 건지기 어려운 형국에 몰렸다. 후보 개인의 캐릭터로 승부가 나는 대선은 보름 전에도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지만 전국 253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총선은 막판 뒤집기가 극히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힘에겐 시간이 없다. ‘바뀌었다’는 인식을 유권자에 확실하게 각인시킬 비대위원장을 인선해 혁신에 나서지 못하면 총선은 승산이 없다.
국민의힘은 두 달 전인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 17%P 차로 대패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후보가 2.6%P 차로 승리했었다. 1년 4개월 만에 약 20%P의 표가 날아간 거다. 다시 말해 수도권 전반의 지지율이 20%P 빠졌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20%P 이상 격차로 국민의힘이 이긴 곳은 서울의 경우 강남·서초 정도다. 25개 구청 중 16개 곳을 석권했다지만 대부분 5~10%P 수준으로 민주당 후보를 이겼을 뿐이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서울 49개 지역구 중 여당이 우세한 곳은 강남·서초 6곳뿐이라는 국민의힘 내부 분석이 절대 허언이 아니다.
지금 민주당은 직전 대표가 돈봉투 돌린 혐의로 구속되고 현직 대표도 대장동 게이트 등 대형 범죄 혐의로 기소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고있다. 그런데도 여당이 수도권에서 죽을 쑤는 이유는 뭔가. 본질은 양극화다. 대내외적 경제환경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빈부 격차가 커지고, ‘강남’으로 상징되는 부유층에 대해 대다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늘어났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노력했음에도 많은 국민의 눈엔 ‘친기업’ 행보가 두드러져 보였고 민주당은 이 틈을 타 포퓰리즘 입법에 열을 올렸다. 또 정부는 이태원 참사 등 국가적 재난의 책임자 문책에 소홀했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등 권력 주변 의혹을 명확히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다.
“1년 반 전 대통령을 뽑을 때 기대했던 공정과 상식 등 가치들이 여태 실현되지 못한 걸 주민들이 엄중히 보고 있더라”는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 김재섭의 지적은 ‘더불어범죄당’이란 비아냥을 받을 만큼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야당을 두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집권당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었다.
그런 만큼 국민의힘은 8년 전 문재인의 용단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절실하다. 좌측으로 쏠려 득표력을 잃었던 민주당은 우측에 속한 전략가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에 앉혀 중도 표를 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은 반대 방향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념 등 우측으로 쏠렸던 노선을 중도로 돌리고 민생을 최우선으로 해 약자 보듬기에 나서야 한다. 그런 변화를 단기간에 유권자가 체감하게 하려면 민주당이 박근혜의 남자를 데려왔듯이 존재 그 자체로 변화가 입증되는 인물이 비대위원장이 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멘토인 신평 변호사는 “우리 국민은 보수·중도·진보 비율이 3:4:3다. 지지층이 3(보수)에 머무르는 사람 대신 중도 확장력이 있는 인물이 비대위원장이 돼야 여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했다. 필자도 동의한다. 승리엔 희생이 따른다. 문재인은 김종인에게 전권을 넘긴 탓에 자신의 측근들이 낙천되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러나 그 희생을 감수했기에 그의 당은 원내 1당, 그는 대통령이 됐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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