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초고령 사회 일본, 왜 법으로 정년을 연장하지 않았나

김기찬 2023. 12. 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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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하면서 정년 연장을 최우선 논의 과제로 제시했다. 정년을 5년마다 한 살씩 늘려 2033년까지 65세로 올리자고 한다. 물론 법으로 강제하는 정년이다.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대기업과 공기업만 혜택을 본다”면서다. 경영계도 과도한 인건비 부담과 청년 취업난 등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노사정 모두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고령자를 고용하는 방식을 놓고 해법이 제각각이어서 논의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 고령자 고용해법, 노사정 이견
노동계는 법정 정년연장 희망
청년들 취업난 더 깊어질 수도
일본식 재고용제 검토해볼만

정년 연장이 이슈가 되자 일본 사례가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호봉제라는 임금체계를 가진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65세까지로 정년 연장을 연착륙시켰다’ ‘최근엔 70세까지 정년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보도가 쏟아지는 이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실제 일본의 실태를 파악할 수 없는 헷갈리는 보도다.

일본, 60세 정년 유지한 채 자율 보장

일본은 1994년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처럼 법정 정년을 60세로 연장(고연령자 등의 고용안정 등에 관한 법률)했다. 이후 두 차례 더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는 조치를 했다. 2006년 65세 ‘고용확보조치 의무화’를 시행했다. 정년을 연장하든지, 계속고용(재고용) 또는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운용하도록 했다. 2021년에는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를 하도록 권했다. 고령자가 원할 경우 70세까지 위탁업무(프리랜서) 계약을 하거나 사회공헌사업(자원봉사) 같은 형태로 배려하라는 것이다.

김경진 기자

주목할 점은 법정 정년은 건드리지 않고 60세로 유지하고 있다. 대신 기업에 선택지를 줘서 자율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고령자의 고용을 독려한다. 일본은 왜 이런 식의 고령자 고용촉진책을 쓴 것일까. 이마노 고이치로(今野浩一郞) 가쿠슈인대학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복지고용’이라는 용어로 풀어냈다. ‘복지고용’은 기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책 때문에 고령 인력 고용을 떠맡게 돼 발생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정부와 정책의 과도한 노동시장 개입을 경계하는 용어인 셈이다.

정년 연장, ‘복지고용’으로 변질 우려

정년 연장은 임금 등 근로조건 조정의 여지가 적다. 기존의 고용계약이 지속하기 때문이다. 반면 재고용은 60세 정년 시점에 기존 고용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근로조건을 능력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년 폐지는 연령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고용계약은 자율영역이다.

이 조치가 시행된 뒤 일본에선 2022년 6월 기준으로 대기업은 83%가 재고용을 선택한 반면, 중소기업에선 30%가 정년 연장이나 폐지를 도입했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대학장은 “중소기업은 임금 연공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데다 인력 수급 여건이 열악한 것이 정년제 확대를 택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한국 기업에 세 가지 선택지를 주면 어떻게 될까. 경총이 올해 4~6월 30인 이상 기업 1047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7.9%가 재고용제도를 선택했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재고용을 선호했다. 정년연장과 정년폐지는 100인 미만에서 각각 10.7%, 28.9%라는 높은 선택을 받았다. 일본과 유사한 패턴이다.

재고용 때 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일본의 예를 보면, 임금은 정년 시점 대비 평균 70% 정도였다. 대기업에선 50% 정도의 대폭적인 임금조정이 이뤄졌다. 다만, 다른 지원책이나 소득원을 통해 재고용 근로자의 실수령액은 정년 시점 대비 80~90%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재고용 관행, 정년 연장 뒤 퇴화

한국에도 촉탁직으로 지칭되는 재고용 관행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재고용제가 산업현장의 혼란을 덜 수 있는 부담감이 없는 해법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60세로 법정 정년이 연장된 이후 이런 관행이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다. 대신 임금피크제가 급증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계가 개편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정년을 연장하도록 하면서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덜려는 기업으로선 유일한 대응 방식이었다”고 해석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탈연공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 역할급이나 직무급으로 바꿔왔다. 호봉제는 극히 일부에서만 운용된다. 한국도 여러 차례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에 좌초했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할 때도 임금체계는 바꾸지 않고 임시적 임금조정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이 때문에 현재도 호봉제가 대세다. 이런 상황에선 법정 정년 연장이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임금 체계 개편이 없는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문제를 심각하게 할 수 있다. ‘1명이 퇴직해야 1명을 고용하는(박철성, 2020)’ 한국 고용시스템의 특성상 법정 정년 연장은 ‘복지고용’으로 전락해 청년 고용과 직접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악화시킬 위험도 크다. 정년제 운용 현황을 보면 그 위험성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현재 한국 기업 중 정년 제도가 있는 기업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이 94.3%이고, 30인 미만은 19.5%뿐이다. 정년 연장이 대기업 근로자용 복지 제도로 변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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