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우의 미래의학] 의료 자원의 부족을 메우는 미래 의료
조만간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선택이 이뤄질 전망이다.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 부족에 대한 해법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 더 많은 의사를 우리 사회가 수용하려 하고 있다. 제도 변화의 장단점을 고민하기에 앞서 필수의료에 대한 국민의 걱정이 그만큼 컸구나 어림짐작할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의사가 남아서 큰일이라는 소리는 귓바퀴에조차 맴돈 적 없다. 필자가 의대에 다니던 1980년대에도,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의사가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을 따름이다. 그 사이 의대가 몇 곳 더 늘었고, 덩달아 활동하는 의사 수도 많아진 덕에 도로변 건물마다 병·의원 간판이 즐비한 데도 그렇다. 그만큼 의사를 찾는 수요가 증가했고, 의사가 해야 할 일들도 이전보다 다양해지고 고도화된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부터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확대 효과를 보려면 장장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긴 간극을 메울 해법은 미래 의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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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부족은 이미 세계적 현상
고령화 사회 진입, 수요 증가
외국 의사 활동 규정 바꾸기도
AI 등 미래 기술 활용 크게 늘 듯
」
의사 부족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었고, 유사한 해법이 도출되고 있다. 최근 대한병원협회가 마련한 국제 학술대회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알리라 헬스’의 제이미 어스카인 수석 컨설턴트는 ‘초연결 사회에서의 병원경영의 미래’를 주제로 한 기조발표에서 유럽도 고령화에 직면하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벅찬 상황이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1963년 설립된 미국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협회(HIMSS)가 최근 주목받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HIMSS는 매년 국제 행사를 개최하여 미래 의료를 집약해 제시하는 기관이다. 결론은 유럽과 미국 모두 부족한 의료 자원을 IT 기반의 디지털 헬스 분야의 기술 발전으로 메우려 하고 있다. 아마도 의료 자원의 양성에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려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최소 3년 동안 추가로 수련해야 했는데, 최근 테네시주에서 외국에서 이미 수련을 마친 사람에게 일정 기간 주 정부 감독하에 진료 권한을 주고, 문제가 없으면 외국에서의 수련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의사가 부족하니 외국 의사가 미국에서 활동하기에 좀 더 수월하도록 환경을 바꾼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원칙은 다른 주로 퍼질 전망이다. 부족한 의사 인력을 외국에서 수혈받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도 작년과 올해, 우수한 교수진이 미국과 캐나다 의대 교수로 스카우트되어 떠났다. 간호사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매년 많은 간호사가 근무 여건과 임금에서 유리한 미국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의료 인력 증원 고려에 앞서 이미 양성된 국내 우수 의료 인력을 지킬 방안도 마련해야 할 터이다.
디지털 헬스 분야 기술 중에서 AI 솔루션 응용이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진찰 분야의 경우 올해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HIMSS 2023’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뉘앙스(NUANCE)는 화제가 됐던 GPT-4를 적용한 인공지능 기술(DAX Express)이 의사와 환자의 진료실 대화를 실시간으로 정리해 의무기록 형태로 변환해 화면에 띄워주는 솔루션이다.
그동안 기록을 정리하느라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의사들이 야속했을 환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면 환자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다. 환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의료가 감정 없는 AI에서 잉태되는 것이다.
진단 분야의 예로는 지난 9월 ‘랜싯 디지털 헬스’란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소개된 내용을 들 수 있다.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유방 촬영술 AI 영상분석 솔루션을 이용한 검진 결과였다. 스웨덴은 유방암 진단 때 의사 2명의 판단이 필요한데,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모자라 어려움이 컸기에 해당 연구는 의사 부족을 해결할 방안으로 AI가 유용한지를 따져보는 것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유방암 검진 과정에서 의사 1명이 AI와 함께 진단한 경우 기존처럼 의사 2명이 진단 내렸을 때보다 발견율이 조금 더 높았다고 한다. AI가 의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의사 부족을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를 근거로 스웨덴의 한 병원은 의사를 1명만 두고 AI의 보조를 받아 진단하는 방식으로 유방암 검진 시스템을 고쳤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내 한 업체가 개발한 AI 뇌졸중 솔루션에 수가가 매겨졌다. 아직은 비급여로 사용하지만, AI 기술의 상용화를 인정하는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가 뛰어들면 그만큼 국민 편익을 높일 혁신적인 기술도 등장할 것이다. 의사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의료 현장의 여러 어려움을 AI의 도움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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