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류삼영의 허리띠
지난 18일 류삼영 전 총경의 더불어민주당 영입식에서 눈에 띈 건 그의 허리띠였다. 이재명 대표가 손수 입혀준 파란색 민주당 점퍼 사이로 류 전 총경의 허리띠가 살짝 드러났는데, 버클에는 경찰을 상징하는 참수리 문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난 14일 류 전 총경이 사실상의 정계 입문 선언(출판기념회)을 할 때 내놓은 책 제목도 『나는 대한민국 경찰입니다』였다. 경찰 조직에서 만든 경력을 십분 활용해 정계 입문의 지렛대로 삼은 그의 행보를 압축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류 전 총경은 정년을 2년 앞둔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계획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라 이름 붙은 행사에 경찰서장급 간부(총경) 626명 중 54명이 참석했다. 경찰 수뇌부가 초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면서 회의장 안팎엔 비장미가 넘쳤다. 그럼에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며 총경회의를 강행한 류 전 총경은 야권 지지층 사이에 민주투사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국 설치 1년 반이 지난 지금, 경찰 내부에선 당시의 소동은 허무개그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경찰국 문제를 공식·비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이를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워서다. 오히려 경찰 간부들 사이에선 “무늬만 있었던 행안부 장관의 총경 이상 간부 임용제청권이 실질화됐다. 민정수석실에서 간부 인사를 100% 좌지우지할 때보다는 협의 경로가 양성화됐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경찰국 설치 이후 경찰이 이전보다 특별히 더 정치화됐다고 볼 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극적으로 달라진 건 당시 총경회의 참석자들의 신상이다. 류 전 총경을 제외한 참석 인사들은 대다수가 한직으로 좌천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것을 후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면에 류 전 총경은 정년을 1년 앞둔 지난 7월 사표를 냈고, 퇴직한 뒤 5개월 만에 민주당의 3호 영입 인사가 됐다.
류 전 총경은 지난해까지도 “경찰국 반대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정치 입문 가능성을 일축해왔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대가로 야당 공천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청 직원들이 이용하는 비공개 게시판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회의를 주도하고 이슈화한 것” “의도를 숨기고 동료들을 선동한 것”이라는 비난 댓글이 달렸다. “허리띠부터 바꾸라”는 반응도 여럿이었다. 류 전 총경이 제대로 정치를 하고 싶다면 화난 동료들과의 대화부터 시작하는 게 순리인 것 같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윤석, 촬영중 20㎏ 갑옷에 응급실…처절했던 마지막 이순신 | 중앙일보
- 상속세는 엄마가 다 내세요…불효자식 아닌 ‘똑똑한 절세’ | 중앙일보
- 누명 벗은 지드래곤 뜻밖의 투샷…두 남자의 '무혐의' 미소 | 중앙일보
- 간 이식 수술방서 자던 의사…세계적 칼잡이, 이승규였다 | 중앙일보
- 장윤정, 음원발매 사고…남편 도경완 "내가 유통해야겠다" 뭔일 | 중앙일보
- 선생님, 이 음식 먹어도 되나요? 말기 암환자가 가장 찾는 것 [김범석의 살아내다] | 중앙일보
- [단독] 이동국 부부, '사기미수' 피소…"다분히 의도적, 억울하다" | 중앙일보
- [단독] "한국간호사 저임금, 독하게 美시험 준비" 8350명 응시 | 중앙일보
- '여의도 사투리 안쓴다' 못박은 한동훈…"속시원" vs "거칠다" | 중앙일보
- '우연히' 꿈이 이뤄졌다…레고랜드 알바생서 '더크라운' 주역된 그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