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나이 들수록 상처가 안 낫는 이유
나이 들수록 상처 치유가 느려진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나이든 군인은 상처 회복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기록된 사실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노인의 피부는 더 얇고 탄력을 잃으며 손상되기 쉽다. 나이 들면서 상처 치유에 필요한 케라틴을 생산하는 피부 세포도 힘이 떨어진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도 상처 치유를 방해한다.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힘들어지고 상처 복구도 더뎌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단백질과 같은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도 문제가 생긴다. 비타민 C, 비타민 D,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결핍도 상처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다. 나이 들수록 사용하는 약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약 복용도 손상 부위 회복을 늦출 수 있다. 상처 치유의 첫 단계는 염증이다. 염증 단계는 상처가 생긴 직후부터 3~4일간 지속한다. 스테로이드·소염진통제와 같이 염증 억제 약을 먹으면 상처 회복이 더뎌질 수 있는 이유이다. 흔히 혈액을 묽게 하는 약으로 불리는 항응고제도 상처 치유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에 상처가 잘 안 낫는 걸 의심하여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면역 체계가 전보다 늦게 작동하는 것도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이다. 상처 부위가 새로운 피부층으로 덮이려면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주해야 한다. 이렇게 피부 세포가 이동하려면 근처 면역 세포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록펠러대 연구에 따르면 노화로 인해 피부 세포와 면역 세포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생후 2개월 된 생쥐(사람으로 치면 20세)와 24개월 된 생쥐(사람 나이 70세)를 비교한 결과, 케라틴 세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시간이 나이든 생쥐의 경우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케라틴 세포가 이주하려면 주변 면역 세포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나이든 생쥐의 케라틴 세포는 그런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피부 세포이든 나이 들수록 소통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상처가 빨리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비누와 수돗물로 가볍게 상처 부위를 씻어내 주는 게 좋다. 소독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정상세포도 손상시킬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습윤드레싱을 사용해주면 된다. 과거에는 습기가 상처를 감염시킬까 우려하여 딱지가 생길 때까지 건조하게 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는 촉촉한 환경이 낫다.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동하여 해당 부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가벼운 상처에 국한된 설명이다. 상처 부위가 크고 깊거나 잘 낫지 않을 때는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해야 한다. 그럴 땐 의사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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