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죽음 아닌 50대 군인 인간적 모습 그렸다”

나원정 2023. 12.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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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윤석(사진)은 “3부작 중 ‘노량’을 가장 하고싶었다. 이순신의 7년 전쟁이 다 담겨있다”고 했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임진왜란 7년이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영화 찍으며 알았죠. 조선 인구 거의 절반에 달하는 400만명이 총·칼에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어마어마한 전염병이 돌아 군사도 잃었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 전쟁을 어떤 의미로 종결시킬 것인가, 이순신 장군의 고민을 절감했습니다.”

배우 김윤석(56)에게 ‘노량: 죽음의 바다’는 코피 터질 만큼 고뇌한 영화였다. ‘노량’은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 등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개봉 당일(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역대 흥행 1위란 대기록(‘명량’)이나 최민식(‘명량’)·박해일(‘한산’) 등 앞선 주연 배우들의 존재감보다 “조선의 성웅 이순신이란 배역 자체의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성웅 이순신’ (1971)을 초등학교 때 단체 관람하다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압송돼 감옥에 갇히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을 당시 장군의 나이가 되어 다시 마주하게 됐다. 이후 김한민 감독이 전수한 ‘이순신 특강’은 묵직했다. 무엇보다 ‘인간 이순신’에 새삼 눈 떴다고 김윤석은 돌이켰다. “위대한 영웅으로만 생각했던 이순신 장군이 7년간 겪은 일이 가슴 아팠다”는 그는 “왜가 조선을 배제하고 명과 협상하는 과정, 명나라 황제가 ‘그만해라’ 하면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국제정세에서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그게 잘 드러난 게 노량”이라고 했다.

그는 “장군님이 죽을 걸 알고 노량해전에 간 건 절대 아니라고 김 감독과 저는 판단 내렸다. 다만, 이 원수를 아낌없이 갚을 수 있다면 이 한 몸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은 가졌다”면서 “한 영웅의 죽음이 아니라, 400여년 전 태어나 직업이 군인이었던 50대의 한 사람이 죽는다는, 인간적인 모습이 관객에게 진실되게 다가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막내아들 면(여진구)이 왜적 칼에 살해되는 걸 아비로서 보는 장면이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감정적으로 힘들었다”면, 육신을 괴롭힌 불청객은 멀미였다. 영화에서 100분에 육박하는 해전 장면을 강릉 빙상경기장 선박세트에서 찍을 때다. 배를 움직이는 장치 ‘짐벌’ 위에 배를 올려 찍다 보면 어김없이 멀미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점철된 작품은 카메라 위치, 방향, 조명 각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안 된다. 머리 깨질 만큼 힘들게 영화를 찍고 있는 김 감독을 전폭 지원해야 했다”고 돌이켰다.

왜군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 역을 맡은 배우 백윤식.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 역을 맡은 백윤식과의 연기 대결도 강렬하다. 김윤석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군을 박살 낸 게 시마즈가 이끈 살마군이다. 그 시마즈와의 일전이 가장 강력할 텐데 네 작품(‘범죄의 재구성’ ‘타짜’ ‘천하장사 마돈나’ ‘전우치’)을 함께한 선생님이 맡으신다니 정말 기뻤다”고 했다. 그는 “촬영 중 만날 수 없었지만 잠깐 찍어놓은 것만 봐도 대단하셨다”고 말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세 사람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20㎏ 철갑옷에 촬영 내내 짓눌리다 코피가 안 멈춰 응급실에 갔던 적도 있다고 한다. 백윤식이 입은 갑옷은 일본 큐슈 지방 시마즈 가문의 장인이 만들어 30㎏이 넘었다.

어떤 질문에도 답변은 매번 이순신 장군에 대한 감탄으로 되돌아왔다. “의금부 옥에 갇히고, 옥에 갇힌 자식 얼굴 보러 오던 어머니는 배에서 돌아가셨다. 삼년상도 못 치르고 선조가 나가 싸우라고 한 게 명량해전이었다. 승리를 거두고 나니 아들 면이 살해된다. 이런 걸 경험하는 생애가 어떤 걸까”라고 김윤석은 연기 당시 감흥을 밝혔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는 널리 알려진 최후의 말을, 영화에선 눈을 뜬 채 영면하는 것으로 그렸다. 김윤석은 “‘결코 이 전쟁을 이렇게 끝맺지 말라’는 말을 못 끝내고 돌아가시는 걸로 연기했다”면서 “참된 삶을 위한 의로운 죽음을 기억해달라”고 힘줘 말했다.

“조선은 400만 명이 죽었는데 그 한을 또 판소리로 풀어야 하나, 굿하고 살풀이만 하는 민족이 돼야 하냐는 거죠. 멈추지 않아야 할 때는 멈춰선 안 된다, 올바른 끝맺음을 해야 한다. 노량이 전하고픈 이야기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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