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종말은 없다…테크놀로지가 더 풍요롭게 할 것”

이은주 2023. 12. 21.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단독 인터뷰
데이비드 호크니는 새로운 기법으로 장르의 장벽을 깬 뒤 회화를 재창조하는 것에 능하다. 몰입형 모형 전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호크니. [사진 Justin Sutcliffe]

사방과 바닥까지 스크린으로 변신한 전시장에 전 세계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데이비드 호크니(86·영국)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림이야말로 저의 천직이라 생각하면서 60년 동안 계속 그렸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호크니의 그림 속 초록 나무들이 영화처럼 펼쳐지는가 하면, 어느 순간 흑백의 연필 드로잉으로 바뀐다. 관람객은 그의 스케치북과 캔버스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 클로저’가 서울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런던의 첫 전시 때부터 호크니가 직접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서울 전시 공간도 런던과 똑같은 가로 18.5m, 세로 26m, 높이 12m 규모다. 프로젝터 27대와 스피커 1500여 개, 사방과 바닥을 둘러싼 스크린을 통해 움직이는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는 ‘몰입형(이머시브) 전시’다. 기존 몰입형 전시처럼 작품만으로 채우지는 않았다. 기록 사진과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더해 50분간 호크니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입체 영상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젊은 시절 호크니

‘살아 있는 거장’ 호크니는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됐을까. 아이패드 드로잉에 이은 새로운 실험일까. 시각적 자극이 홍수 같은 시대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호크니를 단독 인터뷰했다. 서면으로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가 보내온 글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열려 있는, 탐구심 가득한 호크니 그 자체였다.

서울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 전시장 모습. 이 전시는 (주)에트나컴퍼니가 라이트룸 런던과 국내 독점 콘텐츠 IP 계약을 체결하고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Q : 4년 전 몰입형 전시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A : “기술을 융합한 아이디어로 내 작업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100년 동안 영화는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냈지만, 이제 사람들은 소파에 앉아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다. 그런데 내 작품과 작업은 소파에서 볼 수 없고, 현장에 가야 한다. 몰입형 전시가 연극, 영화, 미술 등 모두에 해당한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Q : 반 고흐, 클림트 등의 작품으로 만든 앞선 몰입형 전시랑은 좀 다른데.
A : “그들은 지금 없고 나는 살아 있다. 나는 각 장의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중간 애니메이션 부분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직접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음악도 골랐다. 반 고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서울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 전시장 모습. 이 전시는 (주)에트나컴퍼니가 라이트룸 런던과 국내 독점 콘텐츠 IP 계약을 체결하고 선보이고 있다. [라이트룸 서울]

전시는 ‘원근법 수업’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 ‘도로와 보도’ ‘카메라로 그린 드로잉’ ‘수영장’ ‘가까이서 바라보기’ 등 6개 주제로 나눠 그의 작업 세계를 소개한다. 특히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에선 그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면모도 보여준다. ‘무대 디자이너’ 호크니다. 그는 1978년 ‘마술피리’, 1987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많은 오페라 무대 디자인 작업을 했다.

Q : 오페라 무대 작업을 소개하는 데 애니메이션까지 동원했다.
A : “무대 미술은 내게 주어진 더 넓은 무대이자 큰 캔버스였다. 늘 오페라를 좋아하고 무대 디자인하는 걸 사랑했지만, 무대 세트를 전시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번이 그걸 보여줄 완벽한 기회다.”

Q : 2010년부터 아이패드 드로잉도 하는데.
A : “나는 늘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있었다. 아이패드는 내가 써오던 붓이나 연필 같은 도구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기술은 삶을 더 풍요롭고 크고 대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준다. 관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열어 놓은 가능성과 이 세상의 아름다움,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Q : ‘그림이야말로 제 천직’이라고 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없나.
A : “앞으로도 회화의 자리는 변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회화의 종말을 얘기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흥미로운 많은 아티스트가 화가다. 사람들은 여전히 회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색채,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는 것을 사랑하고, 회화는 그것을 포착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서울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 전시장 모습. 이 전시는 (주)에트나컴퍼니가 라이트룸 런던과 국내 독점 콘텐츠 IP 계약을 체결하고 선보이고 있다. [라이트룸 서울]

Q : 당신은 그림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표현해 왔다. 자연은 언제부터 당신에게 중요한 주제였나.
A : “영국 요크셔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늘 자연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자연은 절대로 지루할 틈이 없고, 끝없이 매혹적이다. 나는 다양한 풍경을 사랑해 왔다. 내가 자란 요크셔의 풍경도, 지금 살고 있는 노르망디의 풍경도 사랑한다.”

Q : 요즘도 계속 작업하나.
A :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동안 다른 작업에 빠져 있다가 돌아오니 너무 좋다. 새로운 시도를 즐기지만, 항상 그림으로 돌아온다.”

Q : 화가이면서 멋쟁이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그림을 그릴 때도 정장을 입는다’는 기사를 봤다. 패션에 신경 쓰는 이유는.
A : “우리 모두 예쁘고 멋진 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오늘날 패션은 너무 지루해졌다. 운동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스타일이 특히 부족해졌다. 내게 패션은 그림이나 포토 콜라주처럼 시각적 세계를 탐험하는 또 다른 팔레트다.”

Q : e메일에 ‘삶을 사랑하라(Love Life)’고 적는 걸로 유명하다.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A : “나는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자연, 그리고 당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묻자 그는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며 “이번 전시 역시 내게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답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