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군침…‘액침냉각’이 뭐길래 [BUSINESS]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12.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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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이 가져온 새 블루오션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이 커지면서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액침냉각’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액침냉각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뜨거워졌다.

액침냉각 시장이 기업들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SK엔무브 액침냉각용 ‘지크’에 데이터센터 서버를 담근 모습. (SK엔무브 제공)
액침냉각 개념 들여다보니

비전도성 액체로 서버 열 식혀

액침냉각 개념부터 살펴보자.

데이터센터 서버나 전자제품, 배터리 등을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액체에 침전시켜 열을 식히는 차세대 열관리 기술이 액침냉각이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액체를 사용해 직접적으로 열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만큼 누전이나 기계 고장 걱정이 없다. 팬이나 펌프 등 기존 냉각 방식에 필요한 장비가 불필요해 액침냉각이 신개념 냉각 방식이다.

액침냉각은 단순히 온도를 낮춰주는 것을 넘어 각종 전자 장치 시스템 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용도로도 활용된다. 데이터센터 서버의 경우 온도가 상승하면 발열을 제어해야 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전력 소비량도 높아진다.

이때 액침냉각이 긴요하게 쓰인다. 액침냉각은 열기가 액체로 바로 전달되는 만큼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공랭식’, 물을 사용해 간접적으로 열을 식히는 ‘수랭식’ 대비 냉각 효율이 우수하다는 평가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액침냉각을 활용하면 공랭식 대비 총 전력 효율을 약 30% 이상 개선할 수 있다. 서버 하드웨어의 발열, 먼지, 수분을 제거해 고장 가능성을 줄이고, 사용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데이터센터는 일반 건축물보다 40~100배 많은 전력량을 소비하는데, 서버 냉각용 에너지가 전체 사용 전력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전기차 배터리도 열관리(Thermal Management)가 중요하다. 배터리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면 전기차 전력 소비량뿐 아니라 화재 위험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액침냉각 기술이 데이터센터 서버,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AI 챗봇 열풍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한 데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커지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액침냉각 수요가 급증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매력 덕분에 국내 기업들은 아직 초기 단계인 액침냉각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SK그룹이 가장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최근 액침냉각 기술 검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인천 남동구 사옥에 미국 액침냉각 전문회사 GRC의 설비와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부문 자회사 SK엔무브의 특수 냉각유로 액침냉각 시스템을 구축한 뒤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장비를 시험 운용했다. 이를 통해 기존 공랭식 대비 냉방전력의 약 93%, 소비 전력의 10% 이상을 줄여 전체 전력 사용량의 37%를 절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SK텔레콤은 데이터센터 모니터링 솔루션을 윤활유 전문 업체 SK엔무브의 열관리 사업과 결합해 B2B(기업 간 거래) 액침냉각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SK엔무브는 이미 데이터센터 등을 액침냉각해 전력 효율을 높이는 ‘열관리 시장’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미국 GRC에 2500만달러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파트너 프로그램에 참여해 공동으로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올 8월에는 미국 PC 제조·IT 솔루션 기업 델테크놀로지스와도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전기 사용량이 늘고 장비 밀집도가 높아짐에 따라 발열을 제어하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열관리는 점차 중요해질 전망이다.

여세를 몰아 ESS나 전기차 배터리 열관리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종합 열관리 솔루션 제공 업체’로 성장한다는 포부다. SK엔무브는 업계 최초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손잡고 선박용 ESS 액침냉각 기술 개발에 나섰다. 플루이드(Fluids·액체와 기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흐르는 성질을 갖춘 물질)에 선박용 ESS를 직접 침전시켜 냉각하는 차세대 열관리 기술이다. 선박용 ESS 액침냉각 기술 개발, 국내외 선급 인증 확보를 통해 선박용 ESS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SK엔무브는 고품질 윤활기유를 활용한 액침냉각 시스템 전용 플루이드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리튬전지체계 기술을 바탕으로 선박용 ESS 시스템을 맡아 기술 개발에 나선다.

SK엔무브 경영을 이끌어온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전기에너지 사용 영역에서 열관리 솔루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번 협업을 통해 액침냉각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전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GS칼텍스는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액침냉각유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Kixx Immersion Fluid) S’를 선보였다. 미국 보건재단(NSF) 식품등급 인증을 받은 생분해성 합성 원료를 사용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것이 GS칼텍스 측 설명이다. 또한 협력 업체들과 실증 평가를 완료해 데이터센터 서버의 안정적 구동, 열관리 기능 관련 성능을 검증했다.

여세를 몰아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유 외에도 전기차, 배터리 기업과 협력해 전기차 배터리, ESS용 배터리에 쓰이는 액침냉각유도 개발할 예정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향후 에너지 효율화가 필요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 맞는 액침냉각 제품을 개발해 열관리 시장 솔루션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들도 액침냉각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지난해 5월 액침냉각유 기술 개발에 총 7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미국 GRC와 함께 액침냉각 기반의 고성능 컴퓨팅(HPC)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 일본 석유화학 기업 에네오스 등도 이미 GRC 파트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침냉각 시장 급성장

2030년 2조3000억원 규모로

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만큼 글로벌 액침냉각 시장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전 세계 액침냉각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4400만달러(약 3300억원)에서 2030년 17억1000만달러(약 2조3000억원) 규모로 성장한다. 연평균 증가율만 24.2%에 달한다.

특히 생성형 AI 열풍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도입이 늘어나면서 서버 냉방 문제가 대두된 만큼 액침냉각 시장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밝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추정치는 240~340TWh로, 국내 연간 전력 소비량의 42∼60% 수준을 차지할 만큼 막대한 양이다. 글로벌 데이터센터도 2021년 1851개에서 2025년 2300여개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 서버 냉각용 에너지가 전체 사용 전력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액침냉각을 활용한 서버 냉각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물론 걸림돌도 적잖다. 데이터센터 서버 등을 냉각유에 넣기 위해 대형 수조 같은 설비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점은 적잖은 부담이다. 전기 장비를 액체에 넣을 경우 장비 품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심리적 장벽도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액침냉각 기술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만큼 글로벌 기업들이 액침냉각 시장을 점유하면 국내 기업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갈 수 있다. 그동안 주로 글로벌 기업과 손잡고 기술 제휴를 해왔는데, 전력 절감 효과를 높이기 위한 차별화된 기술 확보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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