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5학년들에게 '자퇴' 영상 보여줬더니... 의외의 반응
[이준수 기자]
시골의 작은 학교는 폐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에 위치한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얼마 전에 개최된 2학기 마지막 학교 운영위원회는 기존의 학부모를 붙잡고 예비 신입생을 모집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건이 없어 참석하지 않았지만, 참석한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장선생님께서 엄청난 포부를 밝히셨다고 했다.
"밴드에, 애니메이션 수업, 전시회까지 내년도 프로그램이 아주 화려했어요. 학부모님 눈이 다들 휘둥그레지더라니까."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교장 선생님 성격을 미루어 보아 그럴 법도 했다. 2박 3일 수학여행에, 서울 뮤지컬 공연 관람, 1학기 최소 세 차례 이상의 현장체험학습. 도시 대규모 학교에서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사업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나는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참 축복받았어. 초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풍성하게 보내니 말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작은 학교에 다녀서 확실히 즐겁다고 했다. 우리 반 학생은 모두 다섯이다. 학교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아이는 둘 뿐이고, 나머지 셋은 버스나 자동차로 다닌다. 한 친구는 양양 시내에 집이 있어 차로 쌩쌩 달려도 십 오분이 걸린다.
초등학교 졸업까지는 모두 한마음 한뜻이지만 중학교 진학에서는 차이가 날 예정이다. 두 명은 인근 중학교를, 세 명은 시내에 있는 큰 학교에 가기를 희망한다.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했다. 신나고 다채로운 학교 생활은 사실상 초등학교까지라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았다.
인원수가 적은 인근 농어촌 학교의 사정도 비슷하다. 일정 비율은 반드시 시내 중학교 혹은 강릉이나 속초처럼 규모가 조금 더 큰 지역의 학교로 가버린다. 시내 학교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보다는 학습 여건이 낫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이다.
▲ 내 손으로 목공하여 평상 만들기. 시골 초등학교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많다. |
ⓒ 이준수 |
나는 아이들 의견이 궁금했다. 도대체 왜 학생들은 도시로, 시내로 몰리는 걸까. 어른들의 얘기 말고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한참을 떠든 우리는 아주 신기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좋은 대학은 왜 가고 싶어 하는 거야?"
"그래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돈도 잘 벌고."
꽤 흥미로운 흐름이었다. 왜냐하면 학원가가 아예 없는 서핑 성지의 5학년들도 수능과 대학,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우려스러웠다. 이제 제법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거나 탄탄한 경제생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의학계열로 진학하기 위해 소위 SKY 대학생들이 한 해에 2천 명 넘게 학교를 그만두는 시대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중간에 이야기를 잠깐 정리했다.
"맞아. 사람들은 괜찮은 직업과 괜찮은 사회적 평판을 얻길 바라. 대학도 그 과정 중 하나고. 시내의 큰 중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것도 공부할 때 조금 낫다고 판단해서겠지?"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지극히 5학년다운 대답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나 역시 제자들이 높은 직업적 성취와 소득 그리고 사회적 평판을 얻기를 바란다. 대학이 삶의 목표에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공부의 최종 목적이 대학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아이들이 정서적,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는 것이 교육 아닌가.
나는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어서 '자퇴'를 선택한 중학생 관련 EBS영상과 뉴스를 보여주었다. 영상에는 학교를 박차고 나온 다양한 동기를 가진 청소년이 등장했다. 학교 다니는 게 의미 없어서, 다른 곳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려고,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서 자퇴를 결심한 아이들이었다. 대입 준비 학원을 다니며 한 해라도 빨리 수능을 준비하는 케이스도 나왔다.
"이건 어떻게 생각해? 아예 학교 밖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사는 거지."
"자유로울 것 같긴 한데, 부모님이 다 일 나가시면 뭘 해야 할지 모를 것 같기도 해요."
"멋진데요? 용기도 있고.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 평범한 학교에서는 배우기가 좀 힘들 것 같아요."
요즘 애들은 유튜브로 정보도 많이 보고 들어서 그런지 인식이 상당히 어른스러웠다. 그저 학교 급식 맛있게 먹고, 적당히 졸업하고, 시험 칠 생각만 했던 과거의 나보다는 훨씬 성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성적 상위 20% 애들한테나 통용되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안정된 직장 얻어 30평대 아파트 구매하는 중산층 양성 교육의 시대는 끝을 고한 것이 아닌가 하고. 특히나 지방의 비학군지에서는 말이다.
▲ 최근 중고등학교를 자퇴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고 있다. |
ⓒ ebs유튜브화면 갈무리 |
시내 중학교 진학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침내 '나중에 어떻게 하면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로 끝났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대학에 간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직장을 얻는다고 해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심지어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하며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무려 백세 시대이지 않은가.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생이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은 기초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 좋은 습관을 실천하며 건강하게 살면 인생이 차곡차곡 다져진다. 우리는 '멋진 삶은 멋진 하루들의 모임'이라는 결론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퇴근한 날, 나는 습관적으로 찜해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무료함을 때우는 용도로 하루 20분씩 하는 스마트폰 게임도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대신 분리수거하고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왔다. 테이블 구석에 쌓여있는 2개월 치 환경연합 월간 소식지도 읽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가을에 텃밭에서 뽑아다가 방치 중인 땅콩 껍데기를 깠다. 책장에 꽂힌 애들 책이 삼사 년 전에 구입한 유아용 도서라는 점도 발견했다. 얼른 스무 권 남짓을 들어내 노끈으로 묶었다.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야겠다고 결심하니 저녁과 밤이 길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다면 분명 열두 시까지 눈 벌게지도록 화면 앞을 지켰을 것이다. 초등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삶의 대원칙은 똑같다. 인생은 영원히 재생되는 라이브 방송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계속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는 매일을 잘 살 수밖에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이 시골 중학교에 가든, 시내 중학교에 가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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