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연말 즐기고 싶다"…'제야의 종' 행사에 뿔난 공무원들

김민욱 2023. 12. 2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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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8년 1월 1일 제야의종 행사 모습. 뉴스1

공무원 동원·차출 논란이 연말 공직사회를 달구고 있다. 자치단체는 “지자체 ‘주최·주관’ 축제인 만큼 다중 인파관리를 위해 동원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일부 젊은 공무원들은 “공무원도 연말을 즐길 권리가 있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야의 종' 타종행사 두고 논란 불거져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 문화본부는 2주 전쯤 직원들에게 단체 이 메일을 통해 (오는) 31일 출근해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제야(除夜)의 종’ 타종행사 지원업무에 나서줄 것을 공지했다.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서다.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리는 타종행사는 올해 처음으로 의식 아닌 축제처럼 진행할 예정이다. 15일부터 38일 일정으로 서울 대표 매력 포인트 7곳을 잇는 ‘서울윈타’(서울윈터페스타)가 진행 중이다.

타종행사는 보신각 외 광화문광장,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동시에 생중계한다. 보신각 주변과 세종대로에만 작년 대비 2배 많은 10만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안전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타종행사 지원업무에 나선 직원들에게 대체휴무와 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편하게 돌아갈 수 있게 택시도 잡아준다.

'2023 세종 빛 축제'가 막을 올린 지난 2일 밤 이응다리(금강보행교)에서 빛의 향연이 펼치고 있다. 이 축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연합뉴스

반드시 필참 강요한 건 아닌데...


다만 서울시는 “의무적으로 참석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서울시는 개인 사정이 있는 직원 등은 업무지원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이메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공지 이후 “직원은 사생활도 없습니까”라며 “연말엔 제발 쉬게 좀 두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블라인드 사용에 익숙한 비교적 젊은 MZ세대 공무원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축제라 안전조치 지원인력이 필요했고 경찰과 소방, 종로구청, 민간용역사 투입 인력을 고려해 서울시도 인력을 짠 것”이라며 “‘동원’이라고 하는데 한 달 전부터 공지하기 시작했고, 지원업무 참여를 강제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시 이응다리와 그 일대에서 '2023 세종 빛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에서는 '차출' 논란


세종시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빚어졌다. 세종시는 지난 2일부터 이달 말까지 이응다리와 금강수변 일대에서 ‘세종 빛 축제’를 열고 있다. 이와 관련, 세종시가 행사장 안전도우미 등으로 나와 달라고 하자 일부 직원은 반발하고 있다. 한 직원은 지난 15일 내부 행정게시판에 “가족과 연말을 조용히 보내고자 직원을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썼다.

직원들은 해당 게시물에 “조용한 연말 보냅시다” “시간 외 근무수당이라는 보상 하나로 연말 차출을 대기하게 되니 납득하기 어려운 거 같다” “한겨울 강바람 맞으며 주차안내 요원 한번 해보면 내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진다)” 등 댓글을 달았다.

지자체 축제나 행사를 두고 동원 논란은 잊을 만하면 터진다. 지난 4월 국내 대표 봄꽃축제인 ‘진해군항제’ 땐 올해 대민업무에 동원된 창원시 공무원과 이들 근무를 점검하는 공무원이 갈등했다. 지방의 한 기초지자체는 행사가 임박한 무렵에 지역축제 동원령을 내렸다가 직원들이 반발하자 부단체장이 결국 사과까지 했다.

2023년 '검은토끼 해'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이한 2023년 1월 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타종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공직관 차이 등으로 논란 일어나


전문가들은 공직사회 내 20·30대 젊은 공무원(MZ세대) 중심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커진 데 따른 현상으로 진단한다. 여기에 ‘공직관’ 차이도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선배 공무원들은 제설작업, 수해복구처럼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상황을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이지만, 후배 공무원들은 공직을 직업으로만 여기는 정서가 상대적으로 짙다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이 아니면 나서는데 주저하는 이유다.

다만 공직사회도 변화가 분명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영우 중앙경제HR교육원장은 “‘공무원이니까’로 통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지자체장이나 부서장이 젊은 공무원들과 대화·소통하려 노력하듯 세대 변화와 갈등을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기초지자체 노조위원장은 “지역축제 때 민간 용역인력을 점차 늘리고 공무원 동원은 줄이는 방법으로 갈등을 줄인 경험이 있다”며 “예산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세대갈등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하면 그리 많지 않은 예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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