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역사를 뒤집어놓은 무명 여성화가 이야기

김상목 2023. 12. 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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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김상목 기자]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포스터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작만화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키튼의 꿈은 고대문명 조사다. 연구비 마련을 위해 보험조사원 노릇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고학자가 그의 본령임은 작품 속에서 잊을 만하면 강조된다. 그런 키튼이 생사를 건 모험을 거듭하며 연구자금을 모으는 건 자신의 파격적 학설이 공적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인데, 결국 시리즈 마지막에서 그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고대 4대 문명'이라는 기존 정설에 도전하는 '도나우 문명' 유적 탐사에 첫 삽을 뜬다. 비주류 학설을 주장하느라 보수적인 일본 내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강사로 전전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유독 한국과 일본 등에서만 주장되는 '고대 4대 문명'은 이미 낡은 학설이며 (<역사의 연구>로 유명한 아놀드 토인비가 동 시기에 20여 개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연구를 제시한 후로) 서구 역사학에선 '문명의 요람'이라는 중용적 표현으로 해당 시기 주요 권역별로 독자적 문명권이 형성되었다는 게 정설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교과서에는 '4대 문명'이라는 출처도 불분명한 학설이 자리를 차지한 채로다. 교과서를 통째로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새로운 이론 도입에 대한 게으름이 이유다. 이미 기원전 1만 년도 이전에 소도시를 방불케 하는 고대 유적(괴베클리 테페)이 발견되어 한창 연구 중인데도 말이다. 한번 역사에서 위상을 확보하면 마치 부동산 '알박기'처럼 그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속성인 듯하다.

미술사 역시 그런 도전에 노출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누구나 어느 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어있던 거장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발견되기를 꿈꾸지만 요행을 바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확보된 작품의 보존에 대한 기술적 혁신이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놀라운 신작 발견! 소식에는 어김없이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더 이상 발견되기 힘든 고전 대가의 작품 대신 그렇다면 현대 작가 중 그 가치가 아직 온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숨은 거장을 발굴하는 건 어떨까? 20세기 후반 이후 전 세계 현대미술관과 큐레이터들의 숙제이자 로망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대체 어떻게 그 위상을 설정하고 대우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활동했지만 생전에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스웨덴의 여성화가 할마 아프 클린트가 바로 그런 곤혹스런 존재의 전형일 테다.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은 바로 그 베일에 가려진 화가의 '발견'을 다룬 기록영화다.

화가가 처했던 근대 유럽에서도 여전했던 '유리천장'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1862년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할 때까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이름은 스웨덴 내에서도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신비주의 콘셉트를 추구한 경우는 아니었다. 영국이나 유럽 내에선 소규모 전시도 진행했던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는 스웨덴의 유서 깊은 해군장교 집안에서 태어난 귀족이었고 왕립아카데미에서 제대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그럼에도 화가로서 성공했다고 보긴 어려운 경력으로 일생을 보내야 했다.

이는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힐마와 거의 동시기를 살았던 카미유 클로델의 사례가 있지 않은가. 그나마 그 자신도 엄청난 재능을 가졌었지만 현재는 그저 로댕의 연인으로만 기억되는 카미유보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뒤늦게나마 세계에 알리고 있는 힐마가 훨씬 다행인 셈이다(힐마: 1862-1944, 카미유: 1864-1943). 카미유 클로델은 당시 세계 예술의 중심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덕분에 이름은 알렸지만 끝내 위대한 남성 예술가의 주변을 장식하는 비운의 존재로 끝났다면, 유럽의 주변부에서 무명에 가까운 경력으로 평생을 보낸 힐마는 중심에서 빗겨난 덕분에 사후에나마 독자적인 작가로서 평가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는 힐마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 미술사에 쐐기처럼 내리꽂힌 것처럼 폭발한 2018년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와 궤를 맞춰 작업된 것으로 보인다. 힐마의 독창적 작품세계는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말년에 화가가 자신의 사후 20년 동안 본인이 표식을 해놓은 주요 작품 대부분을 공개하지 말 것을 상속자인 조카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작품 수는 1000단위를 헤아렸고, 창작과정과 제작의도를 엿볼 수 있는 서신이나 메모 자료는 2만 5000점에 달했다. 이 방대한 컬렉션이 20세기 후반에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듯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초의 근대 추상회화 선구자, 100년 만에 발견되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점 하나.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무명화가는 잔뜩 쌓여 있다. 그리고 힐마는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했고 비록 비주류 여성작가일지언정 유럽에서 꾸준히 전시도 열었던 작가다. 갈무리해둔 작업량이 '어마무시'하긴 해도 생전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가 왜 사후 반세기도 더 지나서야 갑자기 각광받게 된 걸까? 이 미스터리를 영화는 시작부터 여봐란 듯 밀어붙인다.

우리가 아는 미술교과서는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 중 하나인 '추상주의 회화'의 출발을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여기에 추가로 말레비치까지 포함해 창조주 혹은 선지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업 중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최초의 추상주의 형태 완성작은 1911년에 첫 선을 보였다. 즉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 VS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 동시 발전모델이다. 그러나 마치 4대 문명 뿐 아니라 동 시기 주요 권역마다 독자적으로 발전한 고유 문명이 숱하게 발견되는 것처럼 서로 교류하지도 않았건만, 힐마 아프 클린트의 초기 추상화 작업에서 정식으로 권위가 수여된 거장들의 작업 스타일과 공통점이 발견되는, 게다가 시기는 더 빠른 면모가 숱하게 발견된다. 영화 속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된 이미지 비교는 설득력을 어떤 이론보다 더 강렬하게 발산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1906년에 자신의 추상주의 작업을 선보였다. 작업기록이 세세하게 남아 있기에 이는 조작이나 착오가 아니다. 그리고 힐마의 작업은 생전에 정리해둔 제작의도와 작가의 고유한 이론 때문에 무명작가의 작업 평가에서 최대 문제인 창작의도 해설 부재라는 늪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냥 느닷없이 역사의 숨겨진 연결고리가 불쑥 튀어나온 셈이다. 누군가는 만세를 부르며 경탄하고 누군가는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그렇게 재발견되었던 것이다. 이 '사변'을 영화는 작가의 생애 소개와 함께 풀어내기 시작한다.
 
화가의 시대적 배경과 생애,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된 도발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힐마 아프 클린트는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열강에서 밀려났지만 주변부 취급까지는 받지 않던 스웨덴의 유서 깊은 해군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출발이 나쁘진 않았던 셈이다. 미술에 재능을 보여 왕립아카데미에서 체계적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스웨덴 외의 대부분 동급 기관이 여성의 입학을 불허하던 시절이다. 자연히 아카데미 회원자격이 부여되었지만 당시 200여 명 회원 중 '1명' 분의 대접은 힐마에게 '유리천장'을 제대로 인식시켰을 테다. 그의 작품 1점은 전시회에서 늘 복도 구석 자리였고, 근현대 미술의 작품성이 '시장가격'으로 결정되던 시기로 돌입하면서 남성작가의 '천재성'과 그에 수반되는 엔터테인먼트 스토리(+ 가십)가 핵심 기준이 되던 참에 과묵하게 작업에만 몰두하는 힐마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아 당시 근대 과학기술 발전상에 주목하던 힐마는 주류 남성들이 기술의 파괴적 측면과 거대한 규모에 열광하던 시선과 달리 자연과 기술의 조화나 영적 합일 같은 철학적 주제에 착목하고 있었기에 주류 질서에 속하기 더 어려웠을 법하다. 작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온당히 평가받고 싶었던 욕망이 없진 않았지만 자기 작품세계를 상업주의와 영합하기에는 작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그는 검소하게 근검절약하면서 소수 후원자에 의지해 오직 작업에 전념한다.

그리고 말년에 들어 너무 일찍 만개한 자신의 작품세계가 후대에 온당한 평가를 받길 기대하며 일종의 '타임캡슐'을 꾸리기에 이른다. 일일이 본인 작품에 공들여 공개등급을 정해놓은 것이다. 상속자인 조카로선 유산이 아니라 거대한 컬렉션 창고 관리책임을 떠맡은 격이다. 하지만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조카는 책무를 충직하게 이행했고 컬렉션은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그리고 20세기 말에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이후 여러 미술 전문가들의 평가와 찬사, 힐마의 작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현대미술 교과서를 몽땅 폐기처분해야 할 지경으로 밀어 넣는 격변의 태동이다.

무명 여성화가, 현대미술계 권력에 짱돌을 투척하다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여기에서 조심스럽게 논쟁적인 주제가 발동한다. 근대 미술을 만개시키고 그 과실을 전유하던 유럽 미술계는 스스로 자멸한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현대미술의 왕좌를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넘겨준다. 1929년 발족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근·현대 미술의 성전으로 자리매김한다. '모마'가 재판관이 되어 현대미술 역사를 규정하고 권위를 부여하게된 것이다. '모마'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을 택했고 대량의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이들의 권위를 만신전의 윗자리에 놓았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었다.

현대미술이 '개념예술'화되면서 시민이 미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인식되었고 평가와 해석은 전문가 소수와 문화권력 집단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졌다. 대중에겐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물론 미술의 전위성이나 심미적 가치는 반드시 당대에 올곧게 대중적 평판과 찬사를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근래 그 괴리감이 과도해진 것 역시 사실이다. 게다가 과연 그 소수 전문가와 평단의 권위가 온당한지 의구심 또한 커지는 것 또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미술계 권위 정점에 선 '모마'는 예술가의 사회적 평가를 판검사 마냥 결정하는 정점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곳에 호명되고 전시되어야 '제값'에 팔리는, 결국 가격이 모든 가치판단 위에 서는 세태 가운데 말이다.

그런데 거의 한 세기가 지나 마치 고대 신화에만 존재할 것 같던 트로이가, 크레타가 갑자기 실제 역사로 확인된 것과 같은 일대 사변이 터지고 만 것이다. '모마'와 그 권위 아래 현대미술계는 숨을 죽이고 이 괴이한 사태에 침묵하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전에 힐마가 자신의 영적 작품경향과 어울리는 전시공간으로 상정했던 조건-새하얀 벽과 타원형 지붕의 성전과 같은 공간-에 부합되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결단을 내렸다. 2018년 구겐하임이 주도한 전 세계 순회전시는 경이적인 성공과 미술계의 논의를 촉발시켰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소외되고 은폐 당하던 여성 예술가들의 사후복수 시작되다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스틸 이미지
ⓒ ㈜마노엔터테인먼트
 
역사적 발견이 교과서에 기록되기까지는 한 세대는 걸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사변의 과정과 함께 잊힌 예술가의 삶을 충실히 기록영화로 재구성해놓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힐마 아프 클린트의 컬렉션을 웅장한 백색 신전에서 응시하고 싶어질 테다. 수없이 많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사후복수극은 그렇게 한 화가의 일생을 건 승부수에 의해 기분 좋게 스타트라인을 출발했다.

영화 중반에 화면 가득 아로새겨진 역사에 이름을 남기긴 했으되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를 필두로 한) 여성 화가들의 무수한 이름들, 그리고 (미술관 갤러리 한 구석이라도 차지한 여성 화가는 5%에 불과하지만 누드화 모델의 85%는 여성이 점유한다는 모순을 폭로한) 여성예술가집단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는 제작진이 힐마의 작업과 그런 역사의 이면을 연동시켜 본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그 '모마'가 구겐하임 순회전시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 신소장품 전시관에 대여 전시중이라고 한다. 아직 힐마의 방대한 컬렉션에 미술상 누구도 가격을 매기지 못한 상태다. 추상미술이 정치나 사회 배경과는 유리된 것처럼 선전하면서 동서 냉전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한 순수예술이라 주장했지만 결국 화폐가치로 평가 잣대를 매겼던 시장미술의 맹점이 이 뒤늦게 알려진 북유럽 무명 여성작가에 대해 조소의 대상이 된 셈이다. 참 오랜만에 통쾌한 환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는 찰나다.
 
<작품정보>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Jenseits des Sichtbaren - Hilma af Klint
Beyond the Visible - Hilma af Klint
2019|독일/스웨덴/스위스/영국|미스터리 아트 다큐멘터리
2023.12.20. 개봉|94분|전체관람가
감독 할리나 디르슈카
출연 힐마 아프 클린트, 에른스트 페터 피셔, 율리아 포스 외 다수
수입/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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