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철근 누락, 오시공이면 문제없는 건가 [현장기자]
대우건설은 지난 19일 아파트 철근 누락 사실이 드러났지만 해명에 급급할 뿐 공식적으로는 사과 한마디 내놓지 않았다. 이들은 언론에 A4용지 한 장 반 정도 되는 해명을 내놓으면서 (철근이 빠졌어도) 구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설명하는 데 열변의 60%를 할애했다. 지하주차장 여러 기둥의 보강용 철근 절반을 빠뜨렸다는 사실은 “설계와 다르게 시공됐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스스로는 ‘누락’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다.
대우건설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140여 가구 규모 민간임대주택의 지하 1층 기둥을 세우면서 15㎝ 간격으로 시공해야 할 띠철근을 30㎝ 간격으로 넣었다. 절반만 시공한 것이다. 띠철근은 수직으로 심은 주철근들이 위층 무게에 눌려 휘지 않도록 중간중간 묶어서 강도를 높여주는 보조 철근이다. 불광동 그 아파트는 띠철근이 기둥에 따라 12개, 14개 하는 식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실제로는 6개, 7개만 묶었다는 얘기다. 이런 기둥이 모두 7개였다.
띠철근이 덜 들어가면 지진 같은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뼈대인 주철근이 휘면서 건물에 균열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만 대우건설이 빠뜨린 띠철근이 정말 40~50개 수준이라면 그들 주장처럼 구조 안전성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대우건설이 10년 전 인천 청라 푸르지오를 지으면서 벨트월(외부벽) 층이라는 내진 구조물에 1t가량의 철근을 덜 넣었을 때도 법원은 구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건물이 안전하다는 평가는 ‘설계와 다른 시공’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설계대로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면 도면에는 왜 철근 하나하나의 시공 위치를 세세하게 기록한단 말인가. 그대로 지어야 건물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우건설은 건물이 안전하다는 점검 결과를 앞세워 철근 누락이 큰 잘못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99.5%인 1436곳은 제대로 시공했다는 점을 들어 철근 누락을 작업자 착오에 의한 ‘오시공’이라고 강조했다. 고의로 빼먹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일부러 빼먹었든 실수로 빠뜨렸든 부실시공이기는 마찬가지다. 빠뜨린 철근이 다행히 적었을 뿐이다.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지 목소리를 높일 일은 아니다. 40~50개를 실수로 빠뜨릴 수 있었다면 400~500개를 누락할 수도 있었다. 띠철근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감리나 현장 담당자가 시공 오류를 확인하기 가장 쉬운 자재라는데 이걸 놓쳤다는 건 관리감독 체계가 매우 허술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
대우건설 해명의 다른 30%는 시공 품질을 문제 삼는 시행사의 불온한 저의를 부각하며 무리한 요구에 굴복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90자 정도만 회사 입장이었는데 여기에도 입주 예정자들을 향한 사과는커녕 유감의 기색조차 없었다. “시공사는 안전과 품질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입주 예정자들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입주할 수 있도록 준공일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이었다.
철근 누락 사실이 보도된 날 대우건설은 ‘대한민국 착한 기부자 상’을 수상했다는 홍보 자료만 배포했다. 다음 날인 20일에도 한 재건축 아파트를 ‘월드클래스’로 설계하기 위해 세계적 디자인 회사와 손잡았다는 자료만 냈다.
제대로 된 건설사라면 경위를 떠나 잘못한 시공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내부 고민이 있었으리고 본다.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끝내 침묵하기로 한 데는 ‘이게 사과까지 할 일인가’하는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푸르지오’를 믿을 만한 브랜드라고 생각해온 소비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안전과 품질에 대해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철근 하나를 빠뜨렸어도 통렬히 자책했을 것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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