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대, 영화가 전쟁을 다루는 법

김성호 2023. 12.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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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13] <센츄리온> 과 일본 박스오피스

[김성호 기자]

일본 문화를 가로지르는 설정이 있다. 만화와 소설 등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것이 많은 일본에서도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설정이라 해도 좋겠다. 다름 아닌 '타임슬립'이다.

타임슬립은 주인공이 시간을 건너 과거와 미래로 날아가는 설정의 콘텐츠를 가리킨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서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는 타임슬립물은 유독 일본 문화 전반에서 큰 사랑을 받는다. 단순히 짧은 시간을 오가는 타임슬립부터 수십, 수백 년을 건너 과거의 역사며 미래의 디스토피아와 마주하는 작품들까지 일본 문화 속 타임슬립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근래 일본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는 영화 <그 꽃이 피는 언덕에서, 그대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あの花が咲く丘で、君とまた出会えたら)>도 타임슬립을 내세운다. 일본 틱톡에서 화제가 된 가벼운 소설 원작으로, 영화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대 여고생이 1945년 일본으로 날아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영화 <그 꽃이 피는 언덕에서, 그대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포스터
ⓒ 나라타 요이치
 
일본 박스오피스 휩쓰는 타임슬립 로맨스

그러나 이를 그저 타임슬립으로만 보아선 안 될 일이다. 여고생이 도착한 시대, 또 그 시대에 만나는 남자의 성격 때문이다. 1945년 일본은 패망을 앞둔 전범국이다. 반세기 동안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공해 식민지화하고, 양민학살이며 생체실험 등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국가가 바로 제국주의 일본이다. 전쟁범죄가 정점에 있던 시기가 패망 직전이었던 이 때로, 일본 전역에서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마주하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뿐인가. 여고생이 만나는 이 또한 범상치 않다. 출동을 앞둔 특공대 대원으로, 한국에선 카미카제, 혹은 자살특공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바로 그 부대원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여고생이 시간을 건너가 패망 직전 일본의 자살특공대 대원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영화가 오늘날 일본을 울리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일본이 시간을 건너 마주하는 과거의 모습은 자살특공대 대원이고, 그를 대하는 방식은 풋풋한 사랑이다. 비록 그 사랑은 곧 이어질 전쟁 투입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일본은 전쟁으로 입은 고통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물론 당시 일본의 민중 또한 전쟁이란 비극의 피해자일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과 그 정체성이 이어지는 일본이라는 국가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자 전쟁범죄의 가해자다. 이를 돌아보지 못한 문화적 결과물이 대중의 선택을 받는 현실은 일본의 오늘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센츄리온> 포스터
ⓒ 파테
 
전쟁을 대하는 또 다른 자세

2010년 영국에서 제작한 전쟁영화 <센츄리온>은 이 시점에 돌아볼 만한 작품이다. 로마제국이 브리튼섬을 침공하는 과정의 이야기로, 원주민인 픽트족이 게릴라 전술로 번번이 로마의 공세를 물리치던 시기의 이야기다. 강대한 제국답게 로마는 20년에 걸쳐 거듭 브리튼섬을 침공해 오고, 로마 최강의 부대로 불리던 제9군단까지 동원하여 총공세를 하기에 이른다.

퀸투스 다리우스(마이클 패스벤더 분)는 픽트족과의 전투 중에 사로잡힌 로마군 장교로, 진군하던 제9단에 의해 구출된다. 그는 이후 제9군단을 이끄는 군단장 비릴루스(도미닉 웨스트 분)에게 발탁돼 그를 곁에서 보좌하게 된다. 비릴루스 곁에는 퀸투스 말고도 말 못하는 픽트족 여성 에테인(올가 쿠릴렌코 분)이 있는데, 그녀는 픽트족의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길잡이 역할을 자원한 상태다.

영화는 제9군단이 픽트족의 기습에 궤멸당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험준한 산세와 들쭉날쭉한 날씨 탓에 20여 년이나 정복하지 못한 곳이었으니 무리한 진군은 사지로 스스로 걸어가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비릴루스 또한 이를 알아서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지 않으려 했으나 상급자인 총독이 강요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나아간 길이었다. 비릴루스는 생포되어 적진으로 끌려가고, 부대에 생존자라곤 손에 꼽을 몇몇이 고작이다.
 
 영화 <센츄리온> 스틸컷
ⓒ 파테
 
브리튼섬 침공한 로마군 이야기

퀸투스는 그 몇 안 되는 생존자 가운데 하나다. 장교인 그가 패잔병들을 수습하니 저를 포함 일곱이 고작이다. 그는 장군이 끌려갔단 사실을 듣고는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을 급습하기로 결정한다. 제게는 오직 명예와 의무가 있을 뿐, 그 두 가치가 모두 끌려간 장군을 구해야 한다고 가리키니 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퀸투스의 계획과는 달리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운 좋게 비릴루스에게 접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가 결박된 탓으로 구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퀸투스와 다른 병사들은 다시 픽트족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로부터 영화는 쫓는 픽트족과 쫓기는 로마군 패잔병의 이야기가 된다. 죽기로 로마인을 뒤쫓는 픽트족 여전사는 로마군의 길잡이를 자청했던 에테인으로, 그녀는 로마군에 의해 부모를 잃고 제 혀까지 잘린 상처를 안고 있다. 20년에 걸친 전쟁이 어디 그녀만을 망쳤을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픽트족과 로마군 병사들의 사연이 은근히 드러나니, 전쟁으로부터 무엇을 얻은 이는 하나도 없고 모두가 얼마쯤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처만 얻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저의 생명이며 제 가족을 잃은 이도 수두룩하고, 상대에 대한 원한 말고는 어떠한 감정도 품지 못하게 된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지속된 전쟁은 픽트족 내부에서도 사람들을 갈라 세우고, 로마의 경우에도 얼마 다르지 않다.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총독은 본국에 브리튼섬에서의 패전소식을 전하지 않기 위해 살아온 병사들을 입막음하려 시도하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전쟁은 애국심도, 명예도, 다른 무엇도 아닌 가진 자들의 욕구를 위해 갖지 못한 자들이 피를 흘리는 부조리한 일이 되고 만다.
 
 영화 <센츄리온> 스틸컷
ⓒ 파테
 
헛된 피 흘리는 전쟁... 수천 년 전일지라도

<센츄리온>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헛된 피'일 테다. 극 중 간신히 로마군 진지로 귀환한 퀸투스가 저들이 흘린 피가 헛되었다 말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참전한 군인들은 저들이 목숨 걸고 싸운 전쟁이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생존자들은 저들이 충성한 로마에 의해 위기에 빠지고, 돌아갈 곳마저 잃은 채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로마제국에 의해 침공당한 브리튼섬은 오늘날 영국의 본토가 되었다. 그 당시 브리튼의 원주민은 오늘의 앵글로색슨족과 민족성을 달리하지만, 오늘의 영국 영화계가 기꺼이 이 이야기를 영화를 제작해 오늘의 관객 앞에 내보였다. 전쟁, 심지어 침략전은 인간성을 해하는 일이라는 걸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나서까지 전쟁을 멈추지 못한 인류 앞에 내보이는 것이 <센츄리온>의 목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센츄리온>이 가리킨 곳엔 반전이 있다. 수천 년 전의 역사일지라도 침공하는 자에겐 정의가 설 자리가 없음을 말한다. 반면 오늘 일본의 중심에 있다 해도 좋을 <그 꽃이 피는 언덕에서, 그대와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세기 일본으로 날아가 자살특공대 대원과 연애하는 여고생의 이야기가 오늘의 관객 앞에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민망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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