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이 아로새긴 이순신의 10년... 두 전작과 비교해보니
[이선필 기자]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한 인물의 입지전적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이순신 장군의 영화에 약 2500만 명의 관객이 응답했고, 20일 그 대미를 장식할 <노량: 죽음의 바다>(아래 '노량')가 개봉했다. 개봉 당일 오전 7시 기준 사전 예매량이 32만 명이니, 우선 흥행의 불씨는 지핀 모양새다. 이대로 <노량>이 두 전작과 마찬가지로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면, 대중을 대상으로 한 대형 기획영화의 좋은 선례로 남을 듯하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감독 3부작은 개별로 놓고 보면 같은 인물을 각 전투에 등장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주제를 설파하는 일종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으로 볼 수도 있다. <명량>(2014)은 임진왜란 발발 6년째인 1597년을 배경으로, 왜군에 대한 두려움이 정점에 올랐을 조선 병사들을 이순신이 독려하며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과정을 그린다. 김한민 감독은 이를 용기라는 단어로 설명한 바 있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프로덕션 스틸.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명량> 속 이순신은 전쟁을 초래하고도 책임이란 걸 가질 줄 모르고 정쟁만 일삼던 당시 조선 지도층을 하나의 갈등 요소로 삼고 있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정쟁에 휩싸여 파면된 이순신이 복귀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도탄에 빠져있던 백성들도 희망이란 걸 품게 된다. 영화 개봉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약 100일 지난 시점이었다. 영화가 묘사한 권력자들의 행태가 현실 속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분노했고, 이순신과 그를 따랐던 숱한 병사들의 모습에 크게 호응한 결과였다.
<한산: 용의 출현> 개봉을 앞두고 열렸던 언론시사회에서 김한민 감독은 "<명량> 속 민초들 모습이 상처받은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된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함의를 영화에 담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 배웠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바 있다.
시기적으로 <명량>보다 앞서 발생했던 한산도대첩을 다룬 영화 <한산: 용의 출현>(아래 '한산')은 임진왜란의 본질을 다루려 했다. 1592년 4월, 전쟁 발발 보름 만에 수도 한양을 왜적에게 빼앗긴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이순신의 지략과 덕을 통해 어떻게 전쟁의 양상을 바꿔나가는지에 집중했다. 치열한 해전을 스펙타클하게 보이기보다는 묵직하게 전쟁을 준비해 결국 승기를 잡아나가는 자긍심 어린 메시지를 강조한 결과다.
여기에 더해 포로로 잡혀왔다가 항왜로 거듭나는 일본인 준사를 주요 인물로 배치했고 웅치와 이치 전투, 즉 육지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들을 병치해 당시 임진왜란이 의와 불의의 대결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판옥선을 바다에 띄우고, 대부분의 촬영을 실사화했던 <명량>과 달리 <한산>은 평창올림픽 때 사용된 스케이트장 부지를 특수 촬영 세트장으로 활용하며 CG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이런 방식은 제작비를 크게 절약하면서 동시에 감독 입장에선 보다 자유롭게 해상 전투 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이런 흐름은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이어졌다. <노량>을 완성하기 위해 CG 작업에 25개 업체, 약 800명의 스태프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대형 대중영화의 기술적 완성도와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표본인 셈이다.
<노량>은 말 그대로 대미의 장식이다. 153분이라는 러닝타임에서 전쟁 장면만 100분 가까이 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앞선 두 작품이 주요 전투를 묘사하면서 이야기의 배경과 주변 인물 간 관계성을 두루 담아내려 했다면 <노량>에선 순간순간 1인칭 시점을 가미해 전쟁 그 자체의 비극성 또한 전하려고 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여러 전쟁 관련 영화에서도 많이 봐왔던 장면들이다.
왜군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급사와 맞물려 혼돈 양상에 빠진 당시 일본 열도 상황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본국으로 재빠르게 돌아가려는 왜군과 이를 치열하게 막으며 전쟁 그 자체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이순신의 의지가 배치하는 양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알 만한 이순신의 최후 또한 <노량>에서 다룬다.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후반부에 장례식 장면과 조선과 연합을 맺은 명나라 장수를 통해 미루어 보려는 구성이다. 세 작품 중 가장 전쟁 자체에 집중한 영화가 됐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프로덕션 스틸. |
ⓒ 롯데엔터테인먼트 |
10년이란 시간에 이 세 작품은 이처럼 한국 대중영화의 기술적 변화와 더불어 기획영화의 변모 양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명량>은 CJ ENM이 메인 투자로 참여했고, <한산>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노량>은 신생 투자배급사 에이스메이커가 가세해 롯데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공의 모양새를 취했다.
특히 <한산>은 개봉 이후 약 4주의 홀드백(Hold Back) 시간을 보낸 뒤 쿠팡플레이에서 독점 개봉하는 선택을 했다. 당시 쿠팡이 15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제작비 대비 절반 이상을 보전하게 됐다. <노량>은 에이스메이커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각각 절반가량 제작비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한산>과 <노량>은 민간 투자 플랫폼을 통해 개인투자자도 모집했다. 영화 제작 환경이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어려워지면서 메인 투자사가 출자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다양한 투자 주체를 모집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배급양상 또한 흥미롭다. <명량>과 <한산> <노량> 모두 약 200억 원에서 300억 원이 투입된 이른바 텐트폴 영화다. 세 작품 모두 영화계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여름 방학 및 겨울 연말 시즌에 개봉했는데 앞선 두 작품이 다른 투자배급사 작품들과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 텀을 두고 개봉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길을 택했다면, <노량>은 경쟁작들과 약 4주의 기간을 두고 개봉했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이 현재 누적 관객 920만 명을 기록 중이다. 연말 개봉할 것으로 보였던 <외계+인> 2부는 해를 넘겨 2024년 1월 10일을 개봉일로 잡았다. 큰 파이를 나눠 먹는다는 업계의 오랜 배급 전략이 바뀐 것이다. 이 역시 극장을 찾는 절대 관객이 크게 줄면서 한두 개의 영화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현상이 이어지자, 업계에서 나름 머리를 맞댄 고육지책인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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