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 들고나온 '나폴레옹',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
[김규종 기자]
▲ 영화 <나폴레옹> 관련 이미지. |
ⓒ 소니픽쳐스 |
잉글랜드 출신의 86살 노거장 리들리 스콧(1937-)이 요란스레 돌아왔다. 1965년 25분짜리 드라마 <소년과 자전거>로 영화에 입문한 스콧은 1992년 < 1492 콜럼버스 > 개봉에 이르기까지 무명으로 일관한다. 1992년 전까지 그는 겨우 6편의 영화를 연출한 과작의 인기 없는 감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 1492 콜럼버스 >가 그의 운명을 바꾼다.
지금까지 9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연출한 그를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몇 편의 영화 때문이다. <델마와 루이스>(1993), <지 아이 제인>(1997), <글래디에이터>(2000), <블랙 호크 다운>(2002), <킹덤 오브 헤븐>(2005), <마션>(2015), <블레이드 러너>(2017), <보스턴 교살자>(2023) 등을 그 본보기로 들 수 있다.
전쟁, 사극, 공상과학, 드라마와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스콧은 다재다능한 역량을 펼쳐 보인다. 나는 <블랙 호크 다운>에서 스콧이 보여준 놀라운 긴박감과 터질 듯한 긴장감 그리고 생명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에 동요된 바 있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한낮의 살육전이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궁금한 까닭이다.
개인과 역사
영웅이 역사를 만드는가, 역사의 필요에 따라 영웅이 만들어지는가, 하는 명제는 매우 흥미롭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장편소설 <지바고 의사>에서 나폴레옹이나 로베스피에르 같은 인물을 역사의 발효소로 규정한다. 그는 역사의 진척을 앞당기는 것으로 시대의 영웅에 맡겨진 역할을 제한한다. 다수가 인도하는 역사에 방점을 둔 파스테르나크!
그런 점에서 스콧의 신작 <나폴레옹>은 절반 정도의 설득력이 있다. 역사적 연대기를 따라 물 흐르듯 나아가는 영화에서 관객은 나폴레옹의 날로 커가는 욕망을 추적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항대립(二項對立)이 너무 허망하기에 스콧은 유럽 특히 프랑스 관객에게 욕을 먹고 있다. 나이 든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우울하다.
<나폴레옹>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요틴 아래서 생(生)을 마감하는 1793년 10월 16일 시작하여 세인트헬레나에서 글을 쓰다가 나폴레옹이 스러지는 1821년 5월 5일 끝난다. 두 장면은 아주 다르지만, 같은 면모(面貌)도 있다. 대중의 비웃음과 조롱으로 삶을 마감하는 앙투아네트와 소녀들의 냉소를 받으며 생을 마감하는 나폴레옹은 크게 다르지 않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임박한 시점까지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1786)과 가장무도회에 정신이 홀린 로코코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앙투아네트가 대중의 분노와 광기 속에서 목이 달아나는 장면을 목격하는 나폴레옹. 권력의 무상함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한 인간 나폴레옹의 아주 헛헛한 결말은 관객을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무지와 야만 그리고 격정
<나폴레옹>에서 우리가 깊게 들여다보는 대목은 제정의 창립자가 홀려있는 육체적 열망이다. 혁명의 백미 가운데 하나인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정치군인 나폴레옹의 등장은 조제핀 보아르네로 인해 스치듯 그려진다. 여기서 스콧은 날개 꺾인 거대담론(巨大談論)과 깊이 없는 미시담론(微視談論)으로 빠져들면서 계속 허우적댄다.
정치적 야망에 불타는 미천한 집안 출신의 마마보이 나폴레옹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매혹적인 여인 조제핀의 충실한 노예 보나파르트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나폴레옹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여섯 살 연상녀 조제핀과 결혼하는 장면에서 스콧은 두 사람의 나이 차를 1살로 줄인다. 이것은 사실(史實) 왜곡을 통한 나폴레옹의 자발적 선택을 강조한다.
이집트 원정군 사령관 나폴레옹이 조제핀의 외도를 청취하는 장면과 영국 대사를 불러 대륙 봉쇄령을 선언하는 장면은 하나같이 그의 거친 야만성을 드러낸다. 포크와 나이프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코르시카의 야만인 나폴레옹과 강성한 프랑스를 재건하려는 탈레랑처럼 세련된 인물의 보위를 받아야 하는 나폴레옹의 무지한 면모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새로이 등장한 권력자이자 최고 통수권자 나폴레옹의 웅혼하고 원대한 기획은 사라지고, 아내의 행실을 초조하게 추적하는 의심 많은 남편 나폴레옹의 허약한 면모가 강화된다. 그래서 영국 대사의 짧은 말이 사태의 핵심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이다.
"저렇게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저토록 야만스럽다니!"
▲ 영화 <나폴레옹> 관련 이미지. |
ⓒ 소니픽쳐스 |
기다란 식탁을 마주하고 앉은 조제핀과 나폴레옹. 하얀 식탁보 위에 아침 식사가 정갈하게 준비돼 있다. 양쪽에 시종장이 뒷짐을 진 자세로 서 있고, 한껏 애정을 표현한 나폴레옹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공화정,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만들어진 통령 정부, 그리고 마침내 새로이 창건된 제정의 우두머리 나폴레옹!
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조제핀의 몸에서 후계자 아들을 얻는 일이다. 만 8년 넘도록 숱한 관계를 맺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아들이 없다. 그런 아내이자 황후의 몸을 아침 식탁에서 노골적으로 탐하는 야수적인 인간 나폴레옹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스콧!
<나폴레옹>에서 특히 충격적이고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은 프랑스 황제 때문에 죽어야 했던 사망자들의 숫자를 헤아리는 대목이다. 300만에 이르는 프랑스와 유럽인들이 나폴레옹이 진두지휘한 전쟁으로 죽어야 했다는 기록이 우리를 경악시킨다. 한 사람의 절대권력을 위해 숱한 사람이 자동인형처럼 죽어야 했다고 강조하는 스콧의 저의는 무엇일까?!
90세를 바라보는 원숙한 경지의 스콧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나폴레옹은 권력의 참칭자(僭稱者)이자 사랑의 향락자(享樂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나폴레옹이 남긴 <세인트헬레나 회상록>(1823)은 정녕 무의미한 휴지였단 말인가!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가 오래 숙고한 나폴레옹의 사유는 거짓이었는가?!
"나폴레옹은 유럽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마지막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국기 아래 유럽 전체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기를 나폴레옹은 진정 원했던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승리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서 '저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크게 감탄한 적이 있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스콧의 놀라운 연출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미군 19명에 소말리아 반군 1800명이 죽어 나가는 흑백영화에 넋을 뺏긴 것이다. 나의 내부 깊은 곳에 자리한 '오리엔탈리즘'을 확인하면서 몸서리쳐야 했던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스콧은 숨 쉴 겨를없이 휘몰아치는, 긴박감 넘치는 전쟁 장면 묘사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다. <나폴레옹>에서 그것은 1805년 12월 2일 펼쳐진 '아우스테를리츠(Austerlitz) 전투'에서 구현된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그리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가 어우러진 격전. 세상은 이것을 '삼제회전(三帝會戰)'이라 부른다.
눈 덮인 설원과 언덕에서 대포가 불을 뿜고 보병과 기병이 일사분란(一絲紛亂)하게 적진을 돌파하는 나폴레옹의 기막힌 전술과 전략을 아름답게 재연하는 삼제회전! 그런 놀라운 장면을 기막히게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의 리들리 스콧! 그래서 영화는 1812년 보로디노 전투 이후 모스크바 입성과 워털루에서 치러진 최후의 대전(大戰)을 우울하게 재연한다.
스콧은 <나폴레옹>에서 '브렉시트'를 감행한 영국과 그 배후의 미국을 대변하면서, 유럽연합의 두 기수 프랑스와 도이칠란트를 비웃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날로 깊어 가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웅변하는 '트럼프주의'를 앞장서서 홍보하는 노장 감독의 '사랑과 전쟁영화'를 보면서 세계주의 이데올로기의 탈색과 후퇴를 안타깝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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