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대표팀 사령탑, 왜 올드보이들의 귀환 무대가 됐나
[이준목 기자]
이번에도 농구대표팀의 선택은 '올드보이'의 귀환이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지난 12월 19일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코치 후보군에 대한 면접을 진행한 결과, 안준호 감독-서동철 코치를 단독 후보로 협회에 추천했다. 이들은 내년 1월 23일 협회 이사회 최종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사실상 특별한 결격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될 것이 유력하다.
안준호 감독과 서동철 코치는 모두 프로농구 감독 출신이다. 두 사람은 남자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감독과 코치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안 감독은 프로농구 역사에 손꼽히는 명장 중 한 명이다. 여자 실업농구 코오롱(1995~1996), 남자프로농구 청주 SK 나이츠(현 서울 SK 1996~1999) 감독을 역임했으며,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삼성의 감독을 맡아 2005-06시즌 챔피언전 우승, 구단 역사상 최장기간인 8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지금까지 삼성의 마지막 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안 감독이 농구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무려 12년 만의 현장 복귀다.
서동철 코치는 상무와 여자농구 청주KB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역임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부산-수원 KT 소닉붐을 맡아 2023시즌까지 5년간 지휘봉을 잡아왔다. 남녀농구를 오가며 다양한 코치와 감독 경험이 풍부하고 최근까지도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는 점에서, 공백기가 길었던 안 감독의 약점을 보완해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농구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현재 세계농구의 흐름에 동떨어진 한국 농구계의 변화와 개혁이 절실한 상황에서, 10여 년 넘게 현장과 동떨어져 있었고 나이도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의 감독이 다시 등장한 데 우려하는 반응이 더 크다.
대한민국 농구는 최근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추일승 감독이 이끌었던 남자농구 대표팀은 대회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7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선민 감독이 이끌었던 여자농구 대표팀은 그나마 동메달로 체면을 세웠으나 세계적인 팀으로 올라선 일본-중국과 벌어진 격차를 확인했다. 2024 파리올림픽은 남녀농구 모두 최종예선 티켓마저 얻지 못하며 체면을 구겼다.
안 감독은 한창 현역 지도자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었다. 일단 장점은 전술적 플랜을 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안준호 감독은 삼성 시절 서장훈, 이규섭, 이상민, 강혁, 이승준, 올루미데 오예데지, 테렌스 레더 등 쟁쟁한 선수들을 지도하여 선수구성에 맞춰 전혀 다른 색깔의 팀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 감독(전 울산현대모비스)에 유일하게 두 번이나 플레이오프 업셋을 이뤄낸 '천적'으로도 유명하다.
반면 단점은 큰 판을 짜는 데는 능하지만 경기 중 유연한 상황대처나 임기응변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10여 년 전과 비교하여 현대농구의 흐름은 크게 변화했다. 안 감독은 2011년 삼성 감독직 사임 이후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지도자로서 현장 경험이 아예 단절된 상태로 사실상 농구계를 떠나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또한 덕장이라는 평가도 뒤집어보면 선수 장악력이 약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좋은 성적과는 별개로, 안준호 감독 시절의 삼성은 선수관리와 팀 내 기강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유난히 많았다. 스타 선수였던 이규섭, 이상민, 서장훈 등은 안준호 감독에게 항명-반말-무시-태업 등을 했다는 이유로 모두 논란에 휩싸인 전력이 있다. 심지어 레더와 이승준은 감독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신경전과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나같이 KBL에서 안준호 감독 시절의 삼성 외에는 다른 감독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이는 안준호 감독이 지도자로서 보여준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저평가를 당하거나 이미지가 다소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되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안준호 감독의 전임자였던 추일승 감독은 대표팀에서 젊은 스타 선수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농구 대표팀에서 탈락한 최준용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표팀이 부진하자 추일승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SNS 게시물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보다 감독의 권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던 10여 년 전에도 스타 선수들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안 감독이 과연 요즘 자기 목소리가 더욱 강해진 젊은 선수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으로 또다시 사실상 '올드보이' 밖에 선택지가 없는 한국농구의 현실에 대하여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준호 감독-서동철 코치와 함께 농구대표팀 감독직에 지원한 또다른 후보들인 강을준 전 오리온 감독-이상윤 스포티비 해설위원 등도 올드보이라는 범주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최근까지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현 고양 소노) 사령탑을 역임한 강을준 감독이 공백기가 가장 적은 편이지만, 나이나 지도철학, 농구스타일, 감독로서의 성과 등에서 안 감독보다 뚜렷하게 나을 것이 없었다. 반면 40대 이하 참신한 지도자들 중에서는 대표팀 감독 자리에 지원한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한국농구의 마지막 황금기로 꼽히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농구대표팀을 거쳐간 사령탑은 김동광-허재-김상식-조상현-추일승 감독 순이다. 이 중 유일하게 감독 경력이 없었던 조상현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표팀을 맡을 당시에 프로팀에서 밀려나 야인 생활을 하면서 지도자 커리어가 내리막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조상현(창원 LG)과 김상식(안양 정관장) 감독은 이후 프로 지도자로서 성공적으로 재기했지만, 김동광-허재-추일승 감독은 대표팀을 끝으로 지도자 커리어가 사실상 끊기며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말았다.
농구대표팀 감독이라는 명예로운 자리가 어쩌다 올드보이들만의 잔치가 되었을까. 이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대표팀 감독직이 생각만큼 매력적이기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구대표팀은 최근 10년 가까이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협회의 부실한 대우와 지원으로도 악명이 높다. 프로팀과 선수차출문제를 놓고 기싸움과 갈등을 빚는 일도 다반사다.
이렇게 성과는 내기 힘들고 부담만 큰 자리이다보니 설사 재능있고 비전을 가진 젊은 지도자가 있다고 해도 굳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자발적으로 대표팀에 지원해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이 없는 한, 누가 대표팀 감독이 된다고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표팀은 결국 한물간 노장들의 재취업 무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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