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낯선 구육성회직원, 학교의 산증인입니다.
[신재용 기자]
'학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의자에 앉아 선생님이 있는 칠판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학교가 바뀌고 있다. 한 반에 50~60명 넘는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고, 학교 종이 울리면 하교하던 시절은 옛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갈 곳 없는 아이는 학교에 남아 담임 선생님이 아닌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고, 상담, 진로 탐색, 치유 등 공부 외의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기능이 커지면서 교육이나 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수많은 직종이 생겨났다. 학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교원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을 우리는 '교육공무직'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들의 인건비가 학교회계에서 지출된다는 이유로 '학교회계직'으로 불렸고, 그전에는 '일용잡급직'으로 불렸다.
일용잡급직, 학교회계직 시절을 거치면서 학교의 '산증인'으로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구육성회직원이다. 정확히는 '(구)육성회 직원'으로 읽어야 직종명이 이해가 될 것이다. 학교마다 있었던 육성회 일을 담당하다가, 육성회가 없어지면서 학교 행정실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구육성회직원으로 있거나 행정실무사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 신행화 선생님이 근무하는 모습 |
ⓒ 신재용 |
제주여상에서만 30년 일한 산증인
-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신행화라고 합니다. 올해 마흔아홉이고요. 이 학교에서만 근무한 지 만 30년이 됐습니다. 한 번도 인사이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스무 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즈음부터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저보다 더 오래 근무하신 분들도 많아요. 36년 근무하신 분도 있어요."
- 직종 명칭이 다소 낯선데요. 구육성회직원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등 직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되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직종이에요. 명칭이 생긴 건 1970년대로 알고 있어요. 그때 초, 중, 고등학교에 육성회비를 내고 학교에 다녔죠. 저도 중, 고등학교 때 냈고요. 그 육성회비를 재원으로 해서 '잡급직원'이라는 이름으로 임용됐어요. 1989년도에 고용직 공무원이 기능직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발맞춰서 기능직 공무원 보수규정, 복무를 같이 준용 받았어요. 사실 1970년대 전부터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긴 했죠. 저의 부모님이 학교 다니던 시절일텐데, 그때는 학교에 '급사'라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 급사분들이 최초의 공무직이 아닐까 싶어요. 급사라고 했다가 잡급직원이 됐다가. 명칭이 차츰 변경됐죠. 그리고 2000년대에는 육성회 직원이었다가, 2007년도가 돼서 구육성회직원이 됐습니다. 지금은 육성회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직종명 앞에 옛날을 의미하는 '구'자를 붙여서 구육성회직원이 된 거죠."
- 주로 학교 어느 곳에서 근무하시며,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학교 행정실에서 일해요. 민원 업무, 문서 접수부터 문서고 관리, 문서 폐기도 하고요. 학교 물품 관리도 하는데, 물건을 사죠. 학교에서 뭔가를 사면 시스템으로 넘어와요. 시스템으로 넘어오는 것 중에 물품대장에 넣어야 할 것과 소모품으로 처리해야 할 것 등을 분류합니다. 학교 전체 물품을 관리하는 거라, 물품을 새로 살 때 다시 등재해야 하고, 고장 난 것들은 폐기해야 하고. 쓸 것은 매각해야 하고요. 이게 포괄적으로 많이 하는 업무고요. 민원 증명서 발급이나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들의 증명서, 방과후강사 등의 활동 확인서 발급도 많은 편이죠(기자 주 : 주로 행정실에서 일하는 구육성회직원이 많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교무실에서 전입과 전출 등을 담당하는 학적계, 교사들의 수업시수를 맞추는 수업계 등을 담당하는 구육성회직원도 있다).
급여 업무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급여 업무를 많이 해보진 않았어요. 급여에 초과근무수당이 있는데, 이건 제가 관리하고 있죠. 공무원들은 초과근무수당을 10시간분을 무조건 받는데, 공무직은 이를 받지 않는 대신 근로기준법 기준으로 하는데요. 공무원과 공무직 선생님들이 초과근무를 했는지, 안 했는지 등을 시스템에 올리고, 월별로 집계하고 교육청에 보고도 하고요. 이게 급여의 한 축에 들어가긴 합니다. 맞춤형복지비 업무도 하고 있죠. 빨리 쓰라고 독려를 합니다."
- 이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업무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사람 대하는 게 힘들잖아요. 초과근무를 가지고 뭔가 조금만 잘못해도 뭐라고 하는 사례들이 있죠. 30분 정도 잘못 입력했다던가, 입력할 시기가 지났다든가 해서 (뭔가 잘못되면) 바로 선생님들이 왜 빨리 안 해주냐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업무는 물품 관리 업무예요. 비품으로 등재해야 할 때는 경우가 나뉘는데요. 조달청에서 구입했을 때는 식별번호라는 게 당연히 따라오면서 시스템에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고 시중에서 산 물건들은 사진 찍어서 규격을 찾고, '조달청 목록정보시스템'이라는 곳이 있어요. 여기에 '품목 등록 목록화 요청'을 해야 해요. 한 번에 통과되면 좋은데, 10일 이상 소요되면서 그 이후 보완요청이 떨어질 때가 많기도 하거든요. 여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죠. 어느 업체에 물건인지 전화해야 하고, 찾아봐야 하고. 이게 까다롭다고 해야 할까요? 이 업무를 빼고 싶긴 해요.(웃음)
▲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전경 |
ⓒ 신재용 |
당사자 없는 사이 학교장 결재받고 강제 업무분장한 사례도
- 업무분장으로 학교 현장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업무분장이 잘 이뤄지고 있나요? 민주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나요?
"민주적, 체계적으로 잘 이뤄졌다고 하면 앞서 이야기한 것을 말하지 않았겠죠. 인사이동이 되면 업무분장 논의를 하긴 해요. 했던 업무를 뺄 수 있는지, 다른 업무를 하고 싶다고 건의할 수는 있으나 다 되는 건 아니죠.
다른 학교의 예를 들어보면요. 어떤 업무를 담당하던 지방공무원이 인사이동을 해서 행정실장님이 새롭게 업무분장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공무직 선생님한테 지방공무원이 담당하던 업무를 하라고 했는데 그분이 수긍하지 않으신 거예요. 몇 번을 권유했는데도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공무직 선생님이 휴가를 써서 자리에 없을 때 교장 선생님께까지 결재받고, 공람문서로 확인까지 해버린 거죠. 공람문서로 확인한다는 건 그 업무를 하라고 못박아버리는 의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업무를 뺄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해봤지만, 하던 사람이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업무분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업무라는 게 무 자르듯 명확하게 범위를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일하다 보면 겹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위계구조가 있는 조직에서는 힘들거나 귀찮은 업무일수록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교육공무직이 보는 학교가 그렇다. 민주적이고 동등한 분위기가 있는 학교도 있겠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업무분장에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은 '누군가 하겠지'라는 분위기 속에서 교사도, 공무원도 아닌 공무직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
구육성회직원들은 직종이 생긴 지 오래된 만큼, 교육공무직과는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지역마다 다르고, 학교마다 다르고, 통일된 기준이 없다. 여기서 오는 불합리함이 있고, 특히 제주도에서 일하는 구육성회직원은 다른 지역 구육성회직원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 어떤 상황이고, 왜 그렇게 됐는지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세계>에도 기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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