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인터뷰]올해보다 나은 내년 준비하는 문동주 “시속 160㎞ 더 많이 던질게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문동주(20)는 기분 좋은 일로 가득한 한 해를 보냈다. 한국 야구에 '시속 160㎞ 시대'를 열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에이스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땄다. 생애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최우수 신인선수(신인왕) 트로피도 품에 안았다. 최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신인왕 때보다 아시안게임 때 더 축하 인사를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때부터 메시지가 밀리기 시작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문동주는 지난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4월 12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1회 말 1사 후 박찬호 타석에서 3구째 시속 160.1㎞의 강속구를 던졌다. 피치 트래킹 시스템(PTS)을 도입한 2011년 이후 국내 투수가 160㎞를 넘긴 건 문동주가 처음이었다. 그는 "그냥 평소처럼 던졌는데 기록이 나왔다고 하니,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면서도 "앞으로 내 최고 구속을 경신할 때마다 한국 기록도 바뀌는 것 아닌가. 내년에는 진짜 컨디션이 좋다고 느껴지는 날, 마음먹고 더 빠른 구속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동주는 중학교 때까지 내야수였다. 수비가 잘 안 풀려서 고1 때 투수로 전향했다. 처음엔 공이 빠르지도 않았다. 그는 "투수로 나간 첫 연습경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 정도면 시속 130㎞는 넘었겠지' 했는데 128㎞가 나와서 상처받았다"며 웃었다. 그런데 1년 뒤인 고2 때 150㎞를 찍었다. 고3 때는 155㎞를 넘겼다. 키가 12㎝나 쑥쑥 자라면서 구속도 함께 빨라졌다. 문동주는 "대회에 나갈 때마다 구속이 빨라지는 걸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투수를 하는 게 점점 즐거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프로 입단 두 번째 시즌 만에 160㎞의 장벽을 넘었다.
한 차례 고비도 겪었다. 문동주는 5월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22로 부진했다. "한두 경기도 아니고, 네 경기 연속 마음처럼 안되니까 죽겠더라"고 돌이킨 한 달이었다. 기술이 아닌 마음의 변화가 필요했다. 감독, 코치, 선배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인드 콘트롤을 했다. 그는 "한 시즌 내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마운드에 '싸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올라가게 됐다"고 했다. 문동주는 결국 6월 1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반등했다. 3회 1사까지 스트라이크만 연속 15개를 던졌을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을 했다. 위기를 터닝 포인트로 만들었다. 그는 "내년에도 슬럼프는 또 오겠지만, 올해보다 그 기간을 줄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시 일어선 문동주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클라이맥스는 10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었다. 문동주는 가장 강적이었던 대만과의 두 차례 대결에 모두 선발 등판해 금메달의 주역이 됐다. 그는 "예선 첫 경기(4이닝 2실점)가 생각보다 어렵게 풀려서 다음 대결이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승전이 다가오면서 오히려 자신감이 더 생겼다"고 했다. 선수들끼리 끊임없이 서로에게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불어넣은 덕분이다. 그는 "팀의 일원인 나도 그런 분위기 속에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결승전은 반드시 이길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자신감의 결과는 6이닝 무실점 호투였다. 문동주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시즌이 끝난 뒤엔 이변 없이 신인왕으로 선정됐다. 유효표 111표 중 85명(76.6%)의 지지를 얻어 2006년의 류현진 이후 17년 만에 한화 출신 신인왕에 올랐다. 그는 "시상식장에 부모님과 이모·이모부가 오셨다. 어릴 때부터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가족들 앞에서 상을 받게 돼 더 의미가 컸다"고 했다. 또 "부모님이 지인분들께 '아들이 언제 저렇게 잘 컸냐' '문동주 부모라서 좋겠다' 같은 얘기를 들으실 때 나도 기분이 좋다"며 뿌듯해했다.
특히 아버지(문준흠 장흥군청 육상팀 감독)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면서 또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만큼 각별하다. "아버지가 늘 친구처럼 대해주신다. 코드가 잘 맞아서 통화할 땐 서로 상황극도 할 만큼 가깝게 지낸다"면서도 "내가 도가 지나치거나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확실하게 지적해주시는 분"이라고 고마워했다.
문동주는 지금 KBO리그 최고 인기 선수 중 한 명이다. 한화의 연고지 대전에선 일찌감치 '왕자'로 불리며 인기몰이를 해왔지만, 올해는 아예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한화가 출시한 신인왕 기념상품은 예약판매 첫날에만 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총 판매액은 5억원에 달했다. 문동주가 '위아자 나눔 장터(중앙일보·JTBC 주최)'에 기부한 사인 유니폼은 자선 경매에서 무려 130만원에 낙찰됐다.
그는 "확실히 이전보다 (거리에서) 알아보시는 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게 어색하다"며 "당연히 기분은 좋지만, 그만큼의 책임감도 따르는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더 모범을 보이고, 행동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많은 걸 이뤘으면 내년엔 더 원대한 포부를 품을 만도 한데, 그는 또 다시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올해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 것도 "'한 시즌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이뤘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서다. 크고 화려한 목표 대신 매년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세우고 하나씩 이룬 뒤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게 '문동주 스타일'이다. 그 리스트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올해 아쉽게 포기한 완봉승도 그 목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문동주는 "내년엔 로봇심판이 도입되는데, 내 제구는 로봇이 아닌 '사람 제구'다. 그래서 내 구위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올겨울 휴식과 운동을 잘 병행해 내년엔 꼭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다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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