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장면만 100분, 신파 거두고 진짜 담으려던 메시지
[장혜령 기자]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얼마 전 순천과 여수를 여행하며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떠올려봤다. 여수 중앙동 이순신 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거북선 모형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다만, 왜가 조선을 또다시 넘볼 수 없도록 고군분투했던 나라 걱정이 무색하게, 동상 앞 '모찌'가게의 길게 늘어선 줄이 아이러니했다.
물론 가게의 잘못은 아니지만 동상을 바라보면 뚜렷한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논란이 커지자 떡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유명 상표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을 거다. 7년 전쟁을 완전한 항복으로 끝내려는 이순신의 의도,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반복되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었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김윤석)의 최후 전투를 그렸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이순신의 마지막 활약을 관전하는 영화다. 실제 노량 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거북선을 등장시켜 재미를 더했다. 김한민 감독은 "기록에는 없지만 거북선 참전 소망과, 조선 수군의 사기 진작에 영향을 미치게 한 상징적인 의미"라며 역사의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을 투영했다고 말했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노량 해전은 조선뿐만 아닌 명, 왜의 군사도 많이 죽었던 난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쯤 되면 이순신의 전사 장면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관권인 셈. 감독은 최대한 신파를 덜어내는데 주력했다. 조선군의 사기는 높이고 왜군은 지치게 할 '북소리'로 죽음을 감추었다. 전장에서 울리는 고매한 북소리는 영화가 끝나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성웅 이순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고 답하는 것 같다.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는 슬프면서도 비장하게 바다를 호령한다.
노년이면서도 7년 전쟁의 막바지인 때라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함께했던 전우가 하나둘씩 사라졌으며, 전장에서 어머니와 아들을 잃었고, 언제든지 다시 치고 올 듯한 왜의 기세도 신경 써야 한다. 동맹 맺은 명나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본국으로 도망치려는 왜군을 붙잡아 완벽한 종전을 원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언제든지 조선 침략을 노리는 왜를 간파한 미래 대처였을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반복되어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기를 겪게 된다. 다시 한번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사람을 위한 숭고한 마음이 배가된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 |
ⓒ 롯데엔터테인먼트 |
김한민 감독은 10년 전 <명량>을 통해 이순신을 영화로 소환한 데 이어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로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3부작이 마무리되면 드라마 [7년 전쟁](가제)로 영화에서 못다 한 이순신 이야기를 풀어내겠다고 했다. 이는 광해(이제훈)가 등장하는 쿠키 영상과 이어진다. 정치, 외교적인 임진왜란을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며, 일본 항쟁 3부작 프로젝트인 봉오동 전투, 권기옥, 청산리 전투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순신 역할은 누구라도 부담스러웠다. 김윤석마저도 '이순신은 잘 해봤자 본전'이란 1대 이순신 최민식의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최민식의 기개(용기), 박해일의 두뇌(지혜), 김윤석은 속내를 잘 알 수 없어 한층 더 외로워진 이순신을 완성했다. 모두가 적당히 하고 끝내자고 할 때 집념을 버리지 못했던 고독함과 현명함이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다만 이순신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만큼 신파, 감동 요소를 예상했다면 예상보다 담담한 톤에 놀랄 수 있겠다. 3국이 치열하게 싸운 아비규환 속에서 이순신의 내외적 고뇌를 온전히 보여준다. 올바른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이순신의 신념이 김윤석의 대사, 표정, 몸짓으로 표현된다.
전작부터 물 한 방울 없이 VFX로 완성된 해전의 최종 업그레이드판이 압도적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 사용된 강릉 아이스링크에서 10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완성된 전투씬은 웅장함과 생생함의 전율이 전해진다. 명-조선-왜 그리고 이순신으로 이어지는 선상 백병전 원테이크가 영화의 백미이자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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