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케이드 너머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산다

윤용정 2023. 12. 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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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혼자 떠나는 여행... 뮤지컬 <레미제라블> 관람 후기

[윤용정 기자]

지난 일 년간 나는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나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년에 가수 박효신의 팬이 되면서 시작된 뮤지컬 관람을 하기 위해 외출을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가려고 애썼다. 뮤지컬은 보통 2시간 30분~3시간 정도로 공연시간이 꽤 길고, 티켓값도 영화나 연극에 비해 많이 비싸다. 꾸준히 함께 갈 만한 사람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몇 개월 전부터는 보고 싶은 공연이 생기면 평일 낮시간에 회사에 휴가를 내고 혼자 간다.

공연 티켓을 예매해 놓고 설레면서 기다리다가 공연장을 가는 기분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지난주에 나는 1800년대의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이태원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레미제라블>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줬다.
 
▲ 블루스퀘어 이태원 한강진역과 연결된 공연장 블루스퀘어
ⓒ 윤용정
 
<레미제라블>은 몇 년 전 휴잭맨, 앤해서웨이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나서 뮤지컬로 꼭 보고 싶었던 공연이다. 빵을 훔치고 19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나중에 코제트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사는 장발장 이야기를 초등학교 때 읽었다. 그때 읽은 책은 장발장과 코제트 중심으로 요약된 어린이 도서였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에 대해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레미제라블>에는 장발장과 코제트 외에도 가석방 기간 중 사라진 장발장을 쫓다가 신념을 잃고 자살하는 경감 자베르, 공장에서 쫓겨나고 혼자 아이를 돌보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했던 판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바리케이드 위에 선 청년들과 어린 소년, 남들을 속이고 도둑질로 살아가는 떼나르디에 부부와 그들의 딸 에포닌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기에 공감되지 않는 인물이 없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에포닌이다. 에포닌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짝사랑한다. 그녀는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만날 수 있게 도와주고, 마리우스가 바리케이드에서 투쟁하다 죽기를 각오했을 때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마리우스에게 향한 총구를 자신의 몸으로 돌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는 그녀가 왜 죽는지조차 제대로 모르지만, 그의 품에 안긴 것으로 행복해하며 죽는 인물이다. 

영화 속 에포닌이 빗속에서 부르는 애절한 노래 '나 홀로(On my own)'를 듣고 느꼈던 감동을 이번 공연에서도 느끼고 싶었다. 공연 티켓을 예매할 때 장발장 역할 다음으로 에포닌 역할을 누가 맡는지가 내겐 중요했다.

장발장 역할을 맡은 최재림 배우는 그간 여러 공연을 통해 입증된 실력인 만큼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에포닌 역할의 김수하 배우는 다른 공연 영상을 보고 반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역할도 너무나 훌륭하게 잘 소화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 레미제라블 출연진 레미제라블 출연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 윤용정
 
1부 공연 마지막에 내일을 향한 모두의 마음을 담은 노래 '내일로(One day more)'가 나온다. 내일 시작될 혁명을 다짐하는 바리케이드 위의 청년들, 내일 새로운 곳을 떠날 준비를 하는 장발장, 내일이면 헤어지는 코제트와 마리우스, 내일 마리우스를 따라 바리케이드로 들어가려는 에포닌 등 모두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2부는 바리케이드 위에서의 전투로 시작된다. 기대와 달리 시민들은 문을 닫아걸었고, 청년들은 진압군의 총을 맞고 죽는다.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살리고자 혁명에 참여한 장발장은 죽어가는 마리우스를 코제트 곁으로 데려다주고, 마지막에 죽음을 맞는다. 
 
▲ 바리케이드 로비에 준비된 포토존, 뮤지컬 속 바리케이드의 모습이다
ⓒ 윤용정
 
극의 마지막에 죽은 사람들과 산 사람들이 모두 모여 '너는 듣고 있는가(Do you here the people sing)'를 부른다. 이 노래는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로 시작해서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로 끝이 난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단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이 바리케이드 위이고 그 너머에 내일의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2시 30분에 시작된 공연이 다섯 시가 넘어서 끝났다. 퇴근시간 지하철이 붐비기 전에 재빨리 지하철을 타고 다시 내 삶 속으로 치열하게 뛰어들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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