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배 높은 사망률... 이 죽음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12월 4일, 47개 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2023 홈리스 추모행동’을 선포하였습니다. 전체 인구집단보다 4배 이상 높은 홈리스의 사망률, 최근 8년간 10배 넘게 증가한 거리노숙 경험자의 사망률은 홈리스를 추모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리킵니다.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추모행동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주거’, ‘추모’, ‘공존’을 키워드로 우리 사회, 정책이 바뀌어야 할 점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함께 게시됩니다. <기자말>
[황성철]
홈리스의 죽음에 이름을 붙이자면 가난과 차별로 인한 죽음일 것입니다. 2023 홈리스 추모팀은 '이름 없는 삶과 죽음은 없다. 홈리스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기조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홈리스 사망자 기억 모으기'는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로 기억되는 고인에 대해 생의 일부를 공유했던 동료, 이웃 등 '연고자'의 이야기를 듣고 모으는 활동입니다. 이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이 사회의 가난과 차별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과 차별로 인한 죽음을 멈추기 위해
"그렇게 뭐 친하고 얘기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영정을 보니까 그분이야. 그래서 돌아가셨구나 알았지. 화장하고 재가 나올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라고. 어떻게 사람한테 이 정도로 쇳조각이 나오는지. 이 정도로... 얼마나 아팠으면 술을 마셨을까. 그런데 처음엔 길 가다가 아 저거 또 술 먹는구나! 술 먹고 와서 또 그러네. 술 먹는다고 욕했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아픈 고통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 역시도 그랬고, 그 고통이 말도 못 했을 거예요." (기억모으기 참여자 A)
기억 모으기를 하면서 만났던 분이 동네 주민이었던 고인을 오해해서 미안했던 기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고인을 '매일 공원에서 술 마시는 주정뱅이'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생애 끝자락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주었던 뼈에 붙은 쇳조각이 떨어지며 그에 대한 기억은 '술로 허리 고통을 참아냈을 이OO'로 바뀌고, 고인의 삶이 조금은 더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아래 두 기억도 비슷합니다.
"그 사람 습관이 뭐냐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게로 나가 막걸리 한 병, 소주 한 병 딱 받아와. (그런데) 안주가 없어요. 그걸 물 좀 타가지고서 갖다가 아침에 두 잔을 먹고 닫아놔. 그래놓고 1시간도 안 돼 가지고 또 따라 또 그러면 또 먹고 그래가지고 하루에 막걸리 한 두세 개, 소주도 한 두세 개 하루에 없애는 게 (그정도야) […] 그 사람은 자기 동생 때문에 동생이 천안이거든. 그게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갔었는데 한 번 갔다 오면은 한 일주일은 내리 술이야. 그리고 천안에 있는 동생도 지적장애. 근데 혼자 살아요. 지금 나이가 이제 거진 60 다 됐겠다. 동생 지금 어떻게 사는지 나도 모르지 뭐." (기억모으기 참여자 B)
"박OO과는 주민센터 자활 일자리 동료였어. 7년간 같이 일했고 박OO이가 반장이었어. 처음엔 서로 대화가 없다가 어느 날 술자리에 불러서 땅문서 작은 게 있는데 조카 줄까 고민을 털어놓더라고. 그래서 '주지 말아라. 주면 조카 안 온다'라고 했어. 나중에 조카가 하도 애원해서 줬다고 그러더라고. 그 이후에 술을 계속 마신 탓에 복수가 차서 한번 빼기도 했는데 희망이 없었나 봐. 병원에서 술 못 먹는다 하니까 방에 있더라도 술은 먹어야겠다 하고 계속 마시더라고. 땅문서 주고 허탈하지 않았나 싶어. […]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이제 거기에서는 땅문서만 딱 갖고 가고 하는 바람에 그런 건지, 사촌 조카가 한 번이라도 왔으면 좀 희망적으로 마음을 가졌을 텐데. 병원에도 우리도 찾아가고 했는데도 그 사람을 살릴 방법이 없고 그게 참 안타깝더라고. 나이도 한참 적은데..." (기억모으기 참여자 C)
기억모으기 활동만으로 고인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고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과 구체적인 과정은 동료와 지인의 기억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정부는 홈리스 사망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년 동짓날을 기점으로 홈리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어디에서, 누가, 어떤 사유로 사망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의 <노숙인 의료지원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 전체 인구의 연령별 사망률보다 홈리스(노숙인1종 의료급여 유경험자)의 사망률은 4.1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중 2013년~2021년 사망한 이는 451명으로 관찰 기간 누적 사망률이 15.7%에 이르며, 연간 사망률은 매년 상승해 2013년 1천명 당 3.1명이던 사망률이 2021년 38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이용자와 시설 이용자 일부만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홈리스의 심각한 사망실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12월 4일, '2023 홈리스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서울역 광장 두 번째 계단에서 400여 개의 장미꽃과 고인에 대한 메모로 ‘기억의 계단’을 설치 중이다. |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
"'뭐 하러 그렇게 맨날 (동네주민) 돌아가실 때마다 (장례에) 가냐? 빠지지 않고, 그거 (건강에) 안 좋아.' 주변에서 자주 듣는 소리예요. 나도 몸이 아프고 화장된 후 재(유골)를 보고나면 갈 때 좀 우울해요. 근데 또 그게, 하고 나면 보람이 있잖아요. […] 다 마지막 생명을 거두고 돌아가신 분한테 우리가 진짜 따뜻한 마음으로 관 들어주고, 뼈 뿌려주고, 또 가서 같이 슬퍼해 주고, 그래도 주위에 그렇게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다는 게 그 사람으로도 행복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몇 명이라도 와서 이렇게 슬퍼해주고 나를 보내주는구나 할 거예요." (기억모으기 참여자 D)
동네에 장례가 있다고 하면, 모르는 주민이라도 꼭 참여하는 분의 장례에 대한 생각입니다. 장례는 망인에 대한 마지막 예를 갖추는 의식으로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보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행복하고, 앞으로 갈 사람도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 절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부고(訃告)라 생각합니다. 고인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그 시작이니 말입니다. 이를 제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며 각 지자체의 공영장례 조례입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부고를 게시하는 곳은 서울과 부산, 단 두 곳뿐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부고 게시는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별자들이 고인을 위한 공영장례에 참여해 조문할 수 있고, 부고를 미처 듣지 못했다고 해도, 게시된 부고를 통해 사후에 사망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별자는 가족뿐 아니라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공영장례 부고' 게시를 전국적으로 통합 운영해야 합니다. 개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공영장례 부고' 게시는 검색에 한계가 있고, 접근성도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제주도에 주소를 두고 있는 분이 서울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면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가 됩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경우 사망한 지역에서 '무연고 사망자' 행정조치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개별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전국적으로 부고 게시가 통합 운영되어 접근성을 높일 때 사별자들의 애도할 권리 또한 제대로 보장될 수 있습니다.
'공영장례 조례'는 광역 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합니다. 현재까지 제정된 공영장례 조례에는 '고인'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만,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난 5월,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 일부 내용이 개정·공포되면서 '사별자'의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명시했습니다. 사별자의 공영장례 참여는 누군가의 '배려' 또는 '혜택'이 아니라 권리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전국의 지자체에도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야만 합니다.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 보장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의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가 보장되려면 제대로 된 봉안시설 마련이 필요합니다. 서울시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봉안시설인 '무연고 추모의 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유골의 '봉안'이 아닌 '보관'에 치중된 시설입니다. 그럴 것이 약 2400위(位)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지만, 공간 효율을 우선시한 도서관 서가 형태의 시설이다보니 쉽게 고인의 유골을 찾을 수도 없어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춘 봉안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20년, 봉안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한 것은 무연고 사망자의 지인이나 유골을 모실 수 없는 연고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정이라 다시 10년으로 원상복구가 필요합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장제급여 현실화, 공설장례식장 확대 설치, 시설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는 시설장이 연고자로 되어 무연고 사망자로 포함되지 않는 장사법의 문제 등, 무연고 사망을 애도할 권리, 애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들은 아직도 여럿 존재합니다.
▲ 2023홈리스추모제 포스터. 12월 22일 동짓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다. |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황성철씨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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