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에 대한 고뇌, 죽음의 바다서 묵직하게 울리는 '왜군 섬멸 결기'[영화 '노량']
이순신 장군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조명
“今日固決死 願天必殲此賊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임진왜란 발발 7년 후인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왜군은 조선에서 황급히 퇴각하려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적들을 한 사람도 돌려보낼 수 없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전장인 남해현 노량해협으로 나선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는 절대 왜군을 돌려보낼 수 없는 이순신의 단호함과 퇴각이 시급한 왜군, 그리고 왜군의 뇌물에 넘어간 명나라 함대가 얽힌 전쟁 후반부 삼국 간 첨예한 갈등과 한 인간의 신념에 따른 분투를 지난하고도 지독하게 조명한다.
왜군 퇴각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한 이순신(김윤석)은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정재영)과 '조명연합함대'를 꾸려 퇴각로를 막고, 적들을 섬멸할 계획을 세운다. 임진왜란 후 강화협상, 휴전이 있었음에도 1597년 다시 칠전량을 통해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원균에게 통제사직을 인수인계하고 서울로 압송됐던 상황. 조선 수군이 칠전량에서 대패하면서 발발한 정유재란은 다시금 조선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았기에 이순신이 죽음을 각오하며 적을 섬멸하려 한 것은 오직 조선의 미래, 그 안위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왜군의 뇌물 공세에 마음이 사로잡힌 진린은 그들의 퇴로를 열어주려 하고, 이에 분노한 이순신은 '조명연합' 해체까지 언급하며 왜군을 막기 위해 나선다. 이때 왜군의 퇴각 지원을 위해 일본연합함대의 총사령관 격인 살마군 수장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가 500여 척 왜선을 이끌고 노량으로 향한다. 200여 척에 불과한 조명연합의 배로 원수를 상대하는 이순신의 조선은 그렇게 한발 물러선 명과 함께 노량에서 왜군과 맞선다.
이순신이 마지막 전장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은 힘겹고 고독하다.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에서 홀로 완전한 승리, 적의 섬멸을 고집하는 그의 결기는 진린을 넘어 관객에게까지 피로감을 선사한다.
“왜 저렇게 싸우고자 하는 것인가. 죽고 싶거나, 아니면…”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수많은 전투에서의 승리, 완전히 기울었던 전세를 역전하며 난세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이순신이었지만,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에 대한 자책감은 내내 그를 사로잡는다. 이순신의 삼남 이면(여진구)은 정유재란 당시 고향 아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이순신의 신념이 사적 복수에 있다고 판단한 진린은 그의 아들을 죽인 왜군을 압송해 그 앞에 데려다 놓지만, 이순신은 외려 이들을 외면한다. 앞서 영화 ‘한산’에서 임진왜란을 두고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 명명했듯 이순신의 신념은 7년간 조선 백성과 강토를 짓밟은 왜군을 섬멸하고 항복을 받아내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것만이 옳은 것이라 판단한다.
분명 명나라까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건만, 퇴각로 확보를 위해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며 “우리는 항복하러 온 것이 아니라 화친하러 온 것”이라 말하는 태도에는 왜 이순신이 이들의 ‘섬멸’을 고수하는지 더욱 명확해진다. 김한민 감독은 당대의 이순신이 그러했듯 영화 속 이순신의 상황 또한 철저하게 고립시키며 마지막 전투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극대화한다.
전투의 당위를 확보하는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 100분은 동북아 최대 해전으로 기록된 노량해전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온 국민이 결말을 아는 이야기지만, ‘명량’, ‘한산’을 거쳐 전장의 몰입도는 더욱 깊어졌다. 저녁 바다, 선상에서 벌어진 전투인데도 횃불과 달빛 아래 오가는 조선 수군과 왜군의 격전이 생생한 군사들의 표정과 비장한 감정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연출이 더해져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두가 영화, 그리고 극장의 위기를 진단하는 시대. “영화의 연속성을 보증하는 것은 보고 듣고 감각하는 경험 형식의 생존 여부”라고 설명한 영화이론가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정의처럼 영화 ‘노량’은 역사적 사실을 통한 관객의 지각, 그리고 한 인간의 집념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극장의 역할과 영화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낸다. 153분의 러닝타임은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으나, 고독과 고통으로 점철된 이순신의 마지막을 함께함에 있어 필요한 과정으로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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