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은 금물"…정의선, '리스크 관리' 고삐 죈 임원인사
'노무‧안전 리스크 관리' 이동석 현대차 사장
'공급망 리스크 관리'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
'재무 리스크 관리'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배형근 현대차증권 사장
‘잘 나갈 때일수록 방심하지 말고 위협 요인을 제거하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2023년 하반기 임원인사에서는 이런 의미가 읽힌다. 역대 최대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 도취되지 않고 리스크 관리의 고삐를 죄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위협 요인에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일 ‘2023년 하반기 정기 임원인사’에서 브라이언 라토프(Brian Latouf) 현대차‧기아 글로벌 최고 안전 및 품질책임자(GCSQO, Global Chief Safety & Quality Officer)와 이동석 현대차 국내생산담당 겸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또, 그룹의 소프트웨어(SW) 부문을 담당하는 현대오토에버 대표이사로 김윤구 현대차그룹 감사실장, 금융 계열사 현대차증권 대표이사에는 배형근 현대모비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켜 배치했다. 전병구 현대카드·현대커머셜 경영관리부문 대표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차 HR본부장으로는 영국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 출신의 김혜인 부사장을 영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리스크 관리’에 특화됐다는 점이다. 품질, 노무‧안전, 재무, 공급망 등 그룹 계열사들이 직면할 수 있는 각종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데 특화된 인물들이 요직에 배치됐다.
현대차 GCSQO를 맡게 된 브라이언 라토프 사장은 품질 리스크 관리에 특화된 인물이다. 2019년 현대차 북미법인에 합류하기 전까지 27년간 제너럴모터스(GM)에서 근무했으며, 당시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은 GM의 내부 안전 체계를 재편했던 글로벌 차량 안전 전문가다.
2022년 현대차에 합류한 이후 글로벌 최고안전책임자를 맡아, 엔지니어링 전문성과 고객 중심 품질철학을 기반으로 신속한 시장조치를 실시하면서 현대차의 브랜드 신뢰도를 높여왔다.
현대차‧기아는 그동안 최고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면서도 대규모 품질 비용 발생으로 영업이익을 깎아먹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품질 리스크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브라이언 라토프 사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최적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앞으로 현대차·기아의 차량 개발부터 생산, 판매 이후까지 모든 단계에서의 품질 관리 정책을 총괄하며, 내부 프로세스, KPI 등의 혁신을 통해 고객 지향성을 대폭 강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권한도 대폭 강화된다. 새로운 품질 철학이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을 담당 조직인 GSQO(Global Safety & Quality Office) 산하로 두는 조직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동석 사장은 그동안 현대차 국내생산 및 안전보건 분야를 담당해 왔다. 그의 사장 승진은 5년 연속 무분규 교섭 타결과 최대 생산 실적 견인에 따른 포상 차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노무‧안전 관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힘을 실어준 측면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파업 없이 교섭을 타결하긴 했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노조 리스크가 큰 사업장으로 꼽힌다. 나아가 전동화 전환에 따른 인력 재배치 등의 문제로 노무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관리의 중요성도 커졌다. ‘집안살림’을 챙기며 안정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이동석 사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핵심 계열사 현대차의 인사 담당자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파격 인사도 이뤄졌다. 영국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 출신의 김혜인 부사장을 현대차 HR본부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김 부사장은 IBM, PWC 등 컨설팅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BAT코리아 인사관리 파트너로 합류했으며, BAT재팬 인사총괄, BAT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인사총괄을 거쳐 2019년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에 및 경영이사회 멤버에 오른 글로벌 인사관리 전문가다.
감사실장 출신 인사를 계열사 대표인사로 내려 보낸 것도 이례적이다. 현대오토에버 대표로 내정된 김윤구 사장은 현대차그룹 인사실장과 감사실장 등 경영지원 중요 분야를 책임지며 그룹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췄다.
조직 체계·업무 프로세스의 취약점 진단 및 개선 경험이 풍부해 현대오토에버‧현대오트론‧현대엠앤소프트 합병으로 덩치가 커진 조직을 정비하고 시너지를 강화하는 역할에 적임자로 평가된다.
금융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위기관리에 초점을 둔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된 배형근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 재무전문가로 꼽힌다. 현대모비스 CFO로 재임하며 미래 투자 강화를 위한 유동성 확보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그는, 앞으로 현대차증권을 이끌며 업황 하락 국면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정의선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부회장이 이끄는 현대카드‧현대커머셜에서도 재무건전성 강화와 리스크 관리를 담당해온 전병구 경영관리부문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했다.
전 사장은 1991년 입사 이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22년 팬데믹 등 다양한 자금시장 위기를 직접 대응·돌파해온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작년부터 이어진 미국발 금리 급등기에도 가계부채 및 조달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며 올해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의 영업이익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앞서 현대카드는 3분기 공시에서 국내 카드사 중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했었다.
전병구 사장은 향후 전망되는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최적 의사결정을 통해 중장기 지속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지난달 투 포인트 인사를 통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의 대표이사로 ‘구매 전문가’인 이규석 사장과, ‘재무통’인 서강현 사장을 각각 임명한 것도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둔 인사 기조와 맥이 닿아있다는 평가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 시절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차량용 반도체 등 주요 부품 수급이 어려웠던 때 중요 전략 자재를 확보해 차량 및 부품 생산 운영을 최적화하는 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 최대 화두로 공급망 리스크가 떠오르는 상황에서 그룹 내 최고 구매 전문가로 꼽히는 이규석 사장에게 핵심 부품계열사를 이끌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현대차 CFO 재임 기간 매출·영업이익 등에서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괄목할 경영 성과를 거뒀고, 2021년부터는 현대차의 기획 부문도 겸임하며 중장기 방향 수립 등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글로벌 환경 규제로 인해 사업 리스크가 커진 현대제철의 안정적 재무관리와 함께 중장기 사업 전략 설정을 해나갈 적임자로 서 사장이 선택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이번 임원인사에 대해 “이전까지 그룹의 세대교체와 함께 미래전략을 이끌어갈 분야별 전문가들을 중용했다면, 올해 인사에서는 계열사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호실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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