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확정된 유권자 낙선운동, 선거법 개혁의 첫걸음
[참여연대]
2016년 총선, 선거법이 틀어막은 유권자 권리를 되찾기 위해 낙선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적격 후보자를 선정해 낙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선거법을 준용해 이름 없는 현수막과 구멍 뚫린 피켓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던 선관위는 선거 종료 후 이들을 고발했고, 검·경은 무리한 압수수색 후 기자회견 단순 참가자들까지 기소했습니다. 법원에서도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6-3형사부 이의영(재판장), 원종찬, 박원철 판사 2023.11.22. 선고 2022재노70
3심 : 대법원 제2부 민유숙(재판장), 조재연, 이동원, 천대엽(주심) 대법관 2021.11.11. 선고 2018도12324
2심(재심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 김대웅(재판장), 이완희, 위광하 판사 2018.7.18. 선고 2017노3849
1심(원심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7형사부 김진동(재판장), 이필복, 권은석 판사 2017.12.1. 선고 2016고합1016
최종 확정된 낙선운동 무죄
지난 11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은 총선넷 낙선운동을 유죄로 처벌했던 지난 2018년 서울고등법원 판결(2017노3849판결)의 잘못을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무죄로 바로잡는 재심결정을 내렸다. 이번 재심에 의해 파기된 항소심 판결의 원심판결은 2017년 12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내려졌다. 이렇게 시작된 지루한 법정공방이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유권자 낙선운동의 헌법적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에 따라 당사자에 대한 법적 구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모두가 사필귀정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임이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정당한 기본권의 행사를 형사처벌로 대응한 공권력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받은 당사자들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거듭된 헌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서울고법의 재심 결정은 2022년 7월 21일 헌재가 총선넷 낙선운동 유죄판결의 근거가 되었던 공직선거법 제90조 1항과 제93조 1항, 제103조 3항 등에 대하여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2018헌바357 / 2021헌가7)을 내린 데 따라 개시되었다.
2022년 헌재 결정은 공직선거법상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소조항, 즉 선거관련 집회금지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을 결정하면서도 확성장치 사용금지조항은 여전히 합헌성을 인정한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는 이번 재심 결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확성기 사용과 관련한 유죄 부분은 파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양형과 관련하여 해당 형에 대한 집행유예가 결정되어 그 가벌성은 약화되었다. 재심과 관련한 소송법상의 형식적 한계 때문에 완전 무죄의 결정이 선고되지 못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으로 유권자 낙선운동의 합법성과 정당성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은 한국 민주공화제의 발전에 중요한 징표가 될 것이다.
유권자 중심 선거의 헌법적 당위성
한편, 이 정도의 정치적 자유마저 무려 6년에 이르는 사법 과정을 거쳐서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상황은 한국 민주공화제의 수준을 보여준다. 여전히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에 관한 한 주권재민의 기본원칙이 충실히 실현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유권자 선거운동 억압 법제의 근본 원인은 권위주의 시대부터 뿌리내린 독재적 국가관과 정치 기득권 편의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국가권력은 오로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에 의해 창설되는 것이다(헌법 제10조). 그리고 국가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주도하는 선거에 의해 그 수임자인 공직자가 선출되고(보통선거의 원칙),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는 모든 권력의 행사에 있어 주권자인 국민의 공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민주적 책무성의 원칙),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책임정치의 원칙).
공직자가 공론에 대응하는 민주적 책무를 다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평가가 필수적이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와 그 전파를 억압하는 것은 이와 같은 민주공화제의 선거제도와 공직제도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들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권력 수임자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를 형벌로 억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계층 혹은 특정 집단이나 정당에 의한 배타적 권력의 탄생과 그 오남용을 초래하는 독재적 국가관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또한 유권자 낙선운동에서 예상될 수 있는 일부 부작용을 빌미로 국가권력에 의하여 철저히 통제되는 '온실 속 선거', '인기투표식 선거'는 선거를 '그들만의 리그'로 삼으려는 정치 기득권 편의주의의 책략일 뿐이다.
다시 선거법제 개혁의 깃발을 들자
현행 선거법뿐만 아니라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은 독재적 국가관과 정치 기득권 편의주의를 극복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주도하는 민주공화적 국가관에 의해 개혁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선거일로부터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할 국회가 선거일을 불과 4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과제의 시급성과 절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반수 이상의 유권자들이 행사한 투표권이 사실상 죽은 표로 전락하는 현재의 선거제는 유권자의 대표선출권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여전히 유권자와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소조항이 즐비하다. 기회균등과 비용평등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차별적 정치자금법과 선거 규제로 기성정당과 그 후보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공하는 공직선거법상 위헌적 조항도 여전하다.
유권자 낙선운동 재심 무죄 결정은 독재적 국가관의 유산에 터를 잡고 정치 기득권 편의주의를 온존시키고 있는 선거법제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국민운동이 필요함을 확인시킨 첫걸음이다. 낙선운동 유죄, 선거법 독소조항 위헌 등 지난 6년의 굴곡진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무죄로 귀결된 이번 재심 판결을 중요한 발판으로 삼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한 선거법제 개혁의 깃발을 다시 한번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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