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갈등 해결책이 ‘병역 남녀평등제’?…“성평등 선행돼야”

유민지 2023. 12.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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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최근 정치권에서 성별 갈등 해결책으로 ‘병역 남녀평등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젠더 갈등 해결책으로 여성 군 복무를 내세우는 것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싸늘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의원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 해결책으로 병역 남녀평등제를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금 전 의원은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는 남자, 집에서 가족을 돌보는 여성이라는 성역할 구분이 한국적 가부장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며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병역 성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역 남녀평등제는 남성만 병역 의무를 가지는 걸 인정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어긋난다. 지난 10월 헌법재판소는 남성만 병역의 의무를 가지는 것에 대해 재판관 9명 모두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 내렸다. 헌재는 병역 의무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신체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징병제가 존재하는 70여 개 나라 중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나라는 극히 한정돼 있다”며 병역법에 따라 남성만 병역의 의무를 가지는 것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도 병역 남녀평등제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양성 병역 의무가 성차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고, 오히려 해결을 미루고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조사관은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 조사 이래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국가이자, 경제 규모에 비해 여성 고용률 낮고 관리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희소한 국가”라며 “성불평등한 분야는 차고 넘친다. 어떤 근거로 양성 병역이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양성 징병? 현재 군 인권부터 돌아봐야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게 하려면 폐쇄적인 조직 문화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 내부에서도 나온다. 현직 여군 A씨는 “(군에서 여군을) 같은 동료 시민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여자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요즘 인구문제나 젠더 갈등 등으로 군대 내 여군 증원에 대해 말이 많다. (병역 남녀평등제는) 현재 군대 내 성차별, 성범죄 등부터 해결하고 생각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양성 병역 의무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도 부정적이다. 젠더 갈등의 원인이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아서”라는 논리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폐쇄적인 군 조직 문화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병역 남녀평등 기자회견 게시글에는 “여성이 군대 간다고 성별 갈등이 사라지겠냐”, “고 이예람 중사 사건만 봐도 가해자 두둔하고 은폐하려는 게 군대다. 지금 군대에 있는 여군 인권부터 챙기고 말해라”, “지금 군대 내 성범죄는 잘 해결하고 있냐” 등 댓글이 달렸다. 

실제 군은 성폭력 등 성범죄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에 미흡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안규백 의원실이 지난 10월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 경험이 없는 간부의 90.8%는 “성범죄와 관련된 비밀이 철저히 보장된다”고 응답했지만, 피해를 경험한 간부는 46.2%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피해 경험 응답자의 46.6%만 “그렇다”고 답변했으나,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간부 중 “그렇다”고 답변한 비율은 89.9%에 달했다. 여군 성폭력 피해자 중 절반 이상(59.8%)은 군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고, 자살 시도를 한 적 있다고 답한 여군 피해자도 16.4%에 달한다.

양성 병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선 성평등 사회로 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양성 징병에 앞서 우리 사회가 목표로 하는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허 조사관은 “여성들이 1년 6개월 똑같이 군 복무를 하게 되면 동일임금, 가사분담, 육아분담, 승진 등 성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겠다는 성평등 약속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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