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명 로비스트와 석유공사 CEO의 만행... 유엔도 당했다

김선 2023. 12. 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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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건강리포트] 석유 냄새 진동한 유엔기후총회, '화석연료 퇴출' 합의 실패의 배경

[김선 기자]

 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끝난 후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과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 등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장면.
ⓒ AP/연합뉴스
 
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렸던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8)가 막을 내렸다. 최종 합의문은 '화석연료 퇴출' 대신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이라는 모호한 문구를 택했다. 기후총회 역사상 처음으로 합의문에 '화석연료'를 언급했다며 자찬했지만, 이로써 인류는, 아니 지구는 '지구온도1.5℃ 상승 억제'라는 목표로부터 또 멀어졌다.

사이먼 스티엘 UNFCCC 사무총장은 이번 총회 합의문을 "화석연료 시대의 페이지는 넘기지 못했지만, 그 종말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실존적 위협'을 겪고 있는 군소도서국 입장에서는 한가한 소리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종 합의문은 군소도서국 대표단이 회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문 초안이 늦게 회람된 바람에 '군소도서국 연합(AOSIS)' 39개 회원국 의견을 조율해 입장을 정리한 뒤 회의장에 들어섰더니, 이미 채택을 축하하는 기립 박수를 치고 있더라는 황당한 소식이다. 사모아 출신 기후활동가 브리아나 프루안은 "군소도서국이 총회 과정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합의문 채택 후 폐막 발언 차례에서 앤 라스무센 AOSIS 수석 협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의장님께서는 합의문 채택을 선언하신 것 같고, 군소도서개발국은 회의장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없는 상태에서 이 합의문이 채택되기 전에 저희가 발언하고자 했던 내용을 지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이번 총회를 시작할 때 군소도서국 연합의 목표는 1.5℃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과 장관들은 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는 실패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섬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예견된 실패
 
 사모아의 활동가 브리아나 프루안이 지난 6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화석연료 퇴출을 둘러싼 격론이 예상되었던 만큼, 이번 총회에서 화석연료 기업의 입김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노골적이었다. 전 세계 450개 이상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오염자 퇴출 연합(KBPO)' 분석에 따르면, 최소 2456명의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총회에 참석해 작년 27차 총회에 비해 4배 많고 기후총회 역사상 가장 많은 참석을 기록했다.

이는 개최국인 아랍에미리트(4409명)와 내후년 30차 총회를 개최할 브라질(3081명)을 제외한 모든 국가 대표단보다 많은 수였다. 통가(79명), 솔로몬 제도(56명) 등 군소도서국을 포함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10개국 대표단 수를 합한 것(1509명)보다도 많은 수의 로비스트가 총회장에서 화석연료 옹호 활동을 벌였다.

석유기업 CEO가 총회 의장을 맡은 사실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다. 올해 1월 의장 지명이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 시민사회는 즉각 반대에 나섰고, 5월에는 미국 의원과 유럽의회 의원 133인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사이먼 스티엘 UNFCCC 사무총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의장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성과는 없었다.

화석연료 로비스트로 가득한 총회장에서, 석유기업 CEO인 의장이 이끄는 기후변화 대응 협의가 '화석연료 퇴출' 합의에 실패한 것은 예견된 결과다. 기후위기를 야기한 주범이, 신속하고 충분한 기후위기 대응을 막고 있는 주범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구조다.

명백한 이해상충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
ⓒ AFP/연합뉴스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의 임명을 옹호한 이들은 그가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한 전문가이고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알 자베르 의장 본인 역시 "공공기관·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까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포괄적 논의를 진행하겠다"라며 민간 부문이 기후위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 자신의 비즈니스 관계가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그 스스로가 이해관계를 가진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알 자베르 의장은 위키피디아 사용자를 고용해 자신과 회사 관련 정보에 '그린워싱'을 한 일에서부터, COP28 사무국이 이메일 서버를 자신의 석유회사와 공유함으로써 회사가 사무국 이메일을 읽을 수 있게 한 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해상충을 드러내며 내내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기후총회를 열흘 앞둔 11월 21일에는 화석연료 퇴출을 통해 지구온도상승 1.5℃ (억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기후변화 부정론'에 가깝다는 비판이 커지자 급히 기자회견을 열어 "과학을 존중한다"라며 화석연료 퇴출은 불가피하다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명백한 이해상충을 넘어, 좀 더 구조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화석연료 퇴출과 같이 첨예한 의제일수록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나,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이니 민간 부문을 포함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관련 논의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 맥락에서도 새롭지 않다. 여기에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라는 함정이 있다.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 '다중이해관계자주의'라는 함정

<다중이해관계자 거버넌스와 민주주의: 전 지구적 도전>의 저자, 초국경연구소(TNI) 해리스 글렉먼 박사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multistakeholderism)'를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잠재적 이해관계를 가진 전 지구 행위자들을 한데 모아 협력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요청하는, 새롭게 부상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확립된 국제 거버넌스 체계인 '다자주의(multilateralism)'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다자주의는 "정부가 시민을 대표하여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국제기구가 이러한 결정을 이행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국제연합(UN)이라는 다자주의 거버넌스가 여러 이유로 힘을 잃고 약점을 드러내는 동안, 다중이해관계자주의 거버넌스가 대안으로 부상하며 점점 더 일반적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다중이해관계자주의는 말 그대로 '이해관계자'를 중심에 둔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단체를 '동등한' 이해관계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당성과 책무성의 차이, 권력 불균형은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존재이유가 공익 추구라면, 기업의 목표는 해당 기업의 이윤추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정당성과 책무성에 차이가 있다. 초국적 기업의 권력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각국 정부보다도 강력하다.

기업의 권력과 의도를 무시한 채 단순히 '또 하나의 이해관계자'로 취급하는 논의와 의사결정은 결국 기업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자발적 조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규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표면상 공익을 지향하는 이러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석유기업 CEO가 유엔기후총회 의장을 맡고, 화석연료 기업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멀리 두바이까지 출장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배규제로부터 배우라" 전 세계 기후행동 활동가의 외침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지난 12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자회의가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화석 연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담배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고 폐암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의 75% 이상이 석유, 가스, 석탄을 합친 것에서 비롯되며, 이는 지구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인류의 건강에도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섬나라를 구하고 지구의 온전함을 보존하며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의 신속한 퇴출이 필수적입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28차 유엔기후총회 기간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을 지지하는 고위급 행사 발언)
 
지난 1월 알 자베르 의장 임명에 항의하는 전 세계 450개 이상 시민사회단체는 화석연료 기업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장 임명, 나아가 애초에 그의 임명을 가능하게 한 부당한 영향력의 종식을 요구했다. 유엔기후총회 협상과 기후정책 결정 과정 전반에서 화석연료 업계를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예시로 들었다. 담배 업계가 국제협상의 진전을 막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FCTC 당사국 총회는 물론 담배 규제 정책 결정에서 업계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는 담배에 대한 효과적 규제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담배 업계의 정당성을 떨어뜨리는 데도 일조했다.

FCTC 5.3조는 "담배 규제에 관한 공중보건 정책을 수립·시행함에 있어 국내법에 따라 담배 업계의 상업적 및 그 밖의 기존 이익으로부터 이러한 정책을 보호"할 당사국의 의무를 규정한다. FCTC 5.3조 이행을 위한 지침은 다음과 같은 제1원칙으로 시작한다. "담배 업계의 이해관계와 공중보건 정책의 이해관계 사이에는 근본적이고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이 있다."

유엔기후총회라는 다자주의 거버넌스가 사람들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 화석연료 기업의 이해관계를 통제하기는커녕, 충실히 대변하는 다중이해관계자주의 거버넌스로 기울고 있음을 비판하는 기후행동 활동가가 "FCTC로부터 배우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FCTC는 담배 업계가 정치적 영향력, 정보 조작, 거짓 이야기 등 다양한 전술과 전략을 통해 공중보건 정책을 방해해 왔다는 근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화석연료 업계 역시 정확히 동일한 전술·전략을 사용한다. WHO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는 FCTC 모델을 술이나 가공식품 등 다른 건강위해상품을 규제하는데도 참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기후위기가 '이 시대 가장 중대한 공중보건 위협'이라면, 화석연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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