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 아내, 서동요 주인공 '선화공주' 아니다?
[이민선 기자]
▲ 익산 왕궁리 유적지, 석탑 |
ⓒ 이민선 |
고대 국가 왕궁이라면 분명 임금이 신하들과 국가 대소사를 논하는 중요한 장소였을 터. 그렇다면 익산에 있는 왕궁리 유적지(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631-30)가 정말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 시대 백제의 도읍이었다는 말인가?
이런 궁금증을 안고 왕궁리 유적지에 지난 8일 발을 들였다. 그러나 그곳이 1400여 년 전 백제의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울옷으로 갈아입은 잔디와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석탑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몇 걸음 옮기자 유적지에서 출토된 기왓장이 보였다. 수로와 화장실 터도 나타났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백제의 왕궁, 더군다나 도읍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왕궁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면 으레 있는 게 기와나 수로, 화장실 아니던가.
이곳이 왕궁터였다는 것은 유적지 한편에 있는 백제왕궁박물관과 인근에 있는 국립익산박물관(익산시 미륵사지로 362)을 돌아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친절한 문화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져 이해가 빨랐다.
▲ 익산 왕궁리 유적지 유물 |
ⓒ 이민선 |
▲ 국립익산박물관 입구 |
ⓒ 이민선 |
왕궁리 유적지는 지난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됐다. 30년이 넘는 발굴·조사를 통해 금·유리 제품, 토기 등 5000여 점 이상의 유물을 찾아냈다.
그 중 왕이 있는 곳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부(首部)' 도장이 찍힌 기와가 나와 이곳이 왕궁터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수부가 나온 것은 왕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는 게 문화 해설사 설명이다.
또한 발굴 과정에서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담장인 궁장과 건물이 들어설 평탄면을 확보하기 위한 석축, 화장실 유적 등이 나왔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이다. 한국 최초로 발견된 고대 화장실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3기의 화장실터 가운데 가장 큰 곳은 길이 10.8m, 폭 1.8m에 이른다.
화장실 유적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과 함께 화장실 뒤처리용 막대기인 '뒷나무'라는 독특한 유물이 발견됐다. 길이가 25~30cm 정도이며, 끝부분이 둥글고 매끄럽게 처리돼 있다. 고대 백제인들은 화장실에서 종이 대신 이 뒷나무로 뒤처리를 했다는 것인데,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도 뒤처리를 하는 모습은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화장실은 내부의 오물이 일정 높이까지 차오르면 인근의 동서 석축 배수로로 흘러가게 돼 있는 과학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다.
이와 함께, 백제시대의 정원 유적이 비교적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해 물을 아래쪽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었고, 주변을 온갖 정원석으로 꾸며 자연경관을 축소한 형태로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과 집수시설 등이 있었고, 정자 같은 쉼터를 짓기 위한 터도 확인됐다.
▲ 익산 왕궁리 유적지, 화장실 복원 |
ⓒ 이민선 |
▲ 익산 왕궁리 유적지에서 발견한 화장실 유물, 뒷처리 막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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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지는 현재 백제의 궁궐터로 결론이 난 상태다. 하지만 백제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인 '도읍'이었다는 설에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아 '도읍'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근에 무왕의 흔적이 있는 미륵사지가 있고, 무왕의 뼛조각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된 쌍릉이 있어, 무왕의 왕궁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중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한 금제 사리봉영기 등 9점의 유물로 구성된, 사리장엄구를 특히 주목해 볼 만 하다. 금제 시리봉영기에 639년(백제 무왕 40년)이라는 연대가 기록돼 있어, 왕궁리 유적지가 무왕 시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어서다.
동시에 왕비가 서동요 주인공 선화공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논란을 낳았다. 사리장엄구에 새겨진 百濟王后佐平沙乇積德女(백제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글귀 때문인데, 이로 인해 무왕의 아내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화해설사는 이와 관련해 "사택적덕의 딸은 무왕의 여러 왕비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가 무왕의 아내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곳은 절터이기도 하다. 왕궁이 사라지고 절이 들어섰는지, 원래 왕궁 안에 절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왕궁은 먼저 기능을 잃었고 절은 백제 멸망 이후 통일신라, 고려까지 한동안 존속했지만 절 역시 세월이 흐르며 사라졌다. 그 뒤에는 사찰 시절의 석탑 (국보 제 289호 왕궁리 오층석탑)만이 홀로 남았다.
이처럼 왕궁리 유적지에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떠도는 이유는 아직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는 게 문화 해설사 설명이다. 또한 패자의 역사라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그래서 더 왕궁리 유적지를 둘러싼 서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전북 익산의 왕릉 유적지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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