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새해를 부채 디레버리징의 원년으로
새해를 열흘 정도 앞두고 있다. 되돌아보면 올해 초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이 났지만 내내 고금리 여파가 경제를 짓눌렀고 금융시장 불안도 지속됐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 현상이 벌어지자, 정부는 일단 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 순위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 미분양 적체 문제 등 때문에 올해 1월 '특례보금자리론 공급', 3월 '부동산 대출규제 정상화' 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떠받쳐야 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경기회복도 예상만큼 되지 않았다. 중국의 코로나 봉쇄 종료에 따른 우리 경제로의 긍정적 효과는 별로 없었고, 반도체 경기는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았다. 소비도 그다지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는 코로나에 타격 받았던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출에 대해 3년 만기연장(2025년 9월까지) 등 연착륙 지원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는 당장 불끄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급격한 금리인상, 고금리 지속에도 불구하고 부채 디레버리징(축소)이 전혀 되지 않은 것이다.
일단 미봉책으로 급한 불을 끈 상황에서 제대로 된 부채 구조조정을 실행할 때가 됐다. 지금과 같은 미봉책을 또 1년 더 연장할 수는 없다. 부채는 계속 더 쌓여가고 그만큼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업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2일 “사업성이 미비한 사업장 또는 재무적 영속성에 문제가 있는 건설사, 금융사 등과 관련해서는 시장 원칙에 따라 적절한 조정과 정리를 하겠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올해 8월말 기준 'PF 대주단 협약'이 적용되는 187개 중 152개에 정상화, 연착륙이 진행되고 있다고 9월 발표했다. 당시 23건은 부결됐고 12건은 검토가 진행 중이었다. 고금리가 장기화되고,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을 반영해 더욱 정밀한 평가를 해야 한다. 일부 증권사들이 손실을 현실화시키도록 해야 하고, 건설사가 부실해진다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을 통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와 함께 냉정한 현실인식에 따른 신용평가가 필요하다. 지난해 9월 또 만기연장 등 대책을 발표했을 때 논리 중 하나는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현재 상태에서 이들의 신용을 평가하면 상당수가 대출해 줄 수 없는 정도일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매출이 정상화돼야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문 닫게 하는 것보다는 정상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난 지 1년이 다 돼간다. 매출이 정상화된 곳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을 것이다. 무작정 2025년까지 만기연장해 줄 게 아니라 채무재조정 등 현실적인 출구전략을 세워줘야 한다.
가계부채는 더 이상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 여전히 주택 시장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금씩 집값이 더 오르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2022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7개월 연속 감소했으나, 2023년 4월부터 8개월 연속 증가세다. 다시 지난해 말, 올해 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국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인하한다고 하지만 연간 세차례 총 0.75%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기껏 낮아져봐야 현재 5.25%에서 내년 연말 4.5%다. 한국은행은 솔직히 물가상승률만 본다면 금리를 더 높여야 했지만 경제 부담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지 않았다. 올해 1월 3.5%로 0.25%포인트 인상한 이후 11월까지 내내 동결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폭은 미국보다 작을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4%대, 3%대의 높은 기준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금리가 유지되면, 지나친 부채는 소비와 투자 여력을 제한해 저성장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행히 내년 성장률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2% 수준)을 다소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기가 크게 고꾸라지지 않는 상황이니까 단기적인 경기에 휘둘리지 말고 내실 있는 디레버리징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 좀 힘들더라도 부채 디레버리징을 해놔야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다. 새해는 디레버리징의 원년이 돼야 한다.
정재형 경제금융 부장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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