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로 또 성장”…민우혁의 나침반이 된 뮤지컬 [D:인터뷰]
“한 번도 뭔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실패와 포기를 반복했죠. 뮤지컬도 포기할 줄 알았고요. 그런데 ‘레미제라블’을 만나고 ‘어쩌면 이제 포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로이킴 역으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배우 민우혁의 삶은 실패와 포기의 연속이었다. 야구 명문 군산상고에서 투수로 활약한 그는 2003년 LG트윈스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은퇴해야 했다. 이후 도전한 가수 생활도 10년의 무명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런 그가 뮤지컬 배우의 길에 들어선 건, 그의 아내이자 그룹 LPG 출신 쇼호스트인 이세미의 권유 덕이었다.
사실 뮤지컬 배우도 포기할 위기까지 갔었다. 2013년 뮤지컬 ‘젊음의 행진’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대학로 소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데스노트’에 도전했지만, 또 실패했다. 다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문정 음악감독이 그에게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권했고 앙졸라 역으로 발탁됐다. 이후엔 탄탄대로다. ‘지킬 앤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영웅’ 등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으로 꾸준히 관객을 만났다. 현재는 그의 꿈의 역할이기도 했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제 인생을 바꾼 작품이에요. 8년 전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제안받고, 떨어지면 미련 없이 떠나려고 했어요. 실제로 몇 달간 연락이 없어서 마음을 접고 체육 교사를 준비했고, 한 스포츠 회사와 입사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합격했다는 거예요. 처음으로 저에게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생겼다고 생각했죠.”
“죽기 전 마지막 역할이 장발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그는 총 8개월에 걸친 오디션에 임했고, 합격의 기쁨도 잠시 커져버린 부담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담을 이겨낼 방법은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사실 같은 작품을 다시 하게 되면 익숙함에 빠지기 쉬워요. 연습때부터 후배, 동료 배우들에게 ‘한순간도 집중과 열정이 부족해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쉽진 않지만 저 역시도 어제보다 오늘 더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아요. 여전히 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고, 그 벽을 깨부수고 넘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여러 뮤지컬 배역 중 유독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로 꼽힌다. 민우혁도 “남자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내야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특히 ‘브링 미 홈’에 대해서는 “필라테스처럼 속 근육을 써야 하는 곡”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8년 전 앙졸아 역을 맡았을 당시 성대 결절이 왔던 터라, 이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레슨을 통해 자신을 단련했다.
“200회 가까운 회차를 더블 캐스팅으로 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 컸어요. 두려움이 앞선 것도 사실이고요. 실용음악과 성악 각각 남녀 선생님을 뒀어요. 총 네 명의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 거죠. 이 작품은 때로는 야수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아낄 수가 없는 작품이거든요. 다양하게 코칭을 받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도 꾸준히 레슨을 받고 있고요. 얼마나 꿈꾸던 역할인데, 성대결절도 불사해야죠. 하하.”
작가 알랭 부브릴과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버그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 출소 이후 만난 주교의 자비에 감동해 평생 약자 편에서 실천하는 삶을 사는 이야기다. 민우혁은 ‘레미제라블’의 가장 큰 메시지를 ‘사랑’이라고 봤다.
“‘레미제라블’이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식민지,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가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사랑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민우혁은 “장발장을 통해 아빠의 모습을 배운다”고 했다. 여러 차례 방송에서 보여진 것처럼 4대가 모여 사는 민우혁의 가족은 유달리 각별하고 돈독하고 사랑이 넘친다.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꿈의 역할을 거머쥔 민우혁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말한다.
“사실 전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진 못했어요. 그러나 그 누구보다 부자라고 생각하고 자랄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죠. 여러 차례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의 믿음 때문이고요. 절 믿어주는 가족,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정말 크고, 더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1분1초를 마음을 담고 있어요. 그 과정들이 절 성장하게 하는 것 같고요.”
“가족이 제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뮤지컬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이라 주변 환경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맡았던 작품의 캐릭터들이 제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로 불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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