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전개와 감정선… ‘서울의 봄’·‘고려 거란 전쟁’의 성공방정식 [줌인]
이세빈 2023. 12. 20. 06:05
기존의 역사물과 다르다. 흥행 속도 뿐 아니라 극의 전개까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과 KBS2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기존의 역사물과 다른 신선함으로 MZ 세대를 끌어들이며 최근 연일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군사반란을 소재로 했고 ‘고려 거란 전쟁’은 고려가 거란을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뒀던 여요전쟁이 배경이다. ‘서울의 봄’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기준 개봉 27일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고려 거란 전쟁’은 10일 방송한 10회가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10%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으며, 17일 방송된 12회도 9.6%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뜨겁다.
흔히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결과가 정해져 있는 데다 전개과정 역시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봄’과 ‘고려 거란 전쟁’이 MZ세대의 흥미를 돋운 비결에 관심이 쏠린다.
‘고려 거란 전쟁’의 연출을 맡은 전우성 PD는 철저한 고증을 위해 고려사에 정통한 학자들에게 의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 경험이 풍부한 조경란 박사와 호흡을 맞추며 전장의 디테일과 구성을 충실히 담았다. 여기에 의복, 전쟁 무기, 전투 전략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재현해내며 고려사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고려 거란 전쟁’은 실감나는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전투 장면만이 아닌 병사들의 절박한 감정선을 담아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방송 초기 한 고양이가 절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꽤 오래 소개됐는데, 고양이 관련 밈이 쏟아지는 SNS 공간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동물 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위로를 받는 MZ 세대의 니즈를 잘 겨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의 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12.12 군사반란을 다루면서도 그 사건 속에 있던 인물들의 감정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전두광(황정민)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 것도, 이태신(정우성)을 보고 눈물이 나는 것도 모두 영화가 캐릭터를 충실히 그려낸 덕이라는 평가다.
◇빠른 전개와 강력한 대립 구조
방대한 역사를 담는 대하 사극은 50~100회가 기본이며 KBS1 ‘태조 왕건’은 200회가 방송됐다. 반면 ‘고려 거란 전쟁’은 32부작으로 제작한다. 스케일은 키우고 전개는 빠르게 진행해 대하 사극도 유연하게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5회 만에 왕이 죽고 새 왕이 즉위하면서 전쟁도 발발하는 등 속도감 있는 전개는 생동감을 더했다.
또한 ‘고려 거란 전쟁’은 여요전쟁이 발발하게 된 배경을 비롯해 인물들의 대립 관계를 짜임새 있게 그려냈다. 하루아침에 왕위에 올라 재상들에게 무시당하는 현종(김동준)은 자신을 허수아비 황제로 전락시키려는 강조(이원종)와 정치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여기에 거란과의 전쟁을 둘러싼 강감찬(최수종)과 강조의 일촉즉발 신경전도 이목을 사로잡았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 9시간을 약 140분의 러닝타임에 압축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긴박하게 보여주면서도 인물들의 개성, 관계성은 놓치지 않으며 “긴 러닝타임을 순삭한다”는 평을 받았다.
‘서울의 봄’은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정권을 탈취하려는 신군부 세력과 서울을 지키려는 진압군의 팽팽한 대립을 그렸다. 특히 권력을 탐하며 이태신을 견제하는 전두광과 서울에 먼저 부대를 진입시키기 위한 양 측의 분초를 다투는 전략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배우들의 호연
‘고려 거란 전쟁’은 최수종의 10년만 사극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왕 전문 배우’로 사랑받아온 최수종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승리에 미친 광기를 가진 강감찬 역을 맡아 사극 대가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점차 현명한 황제로 거듭나는 현종 역의 김동준, 단순한 반역자라고 보기 어려운 강조 역의 이원종, 냉혹한 전쟁터에 던져진 장군 양규 역의 지승현 등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의 봄’은 반란군을 이끄는 전두광 역의 황정민, 진압군의 중심에 서 있는 이태신 역의 정우성을 비롯해 조연들의 호연이 관객의 과몰입을 유발하고 있다. “이마 주름까지 짜증난다”는 평을 받은 황정민의 호연에 화를 참지 못한 관객이 극장에 설치된 전두광 포스터에 주먹을 날려 구멍이 뚫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무대인사를 도는 중 반란군을 연기한 배우들이 관객에게 감사 인사와 사과를 동시에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두 작품 모두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며 “‘고려 거란 전쟁’ 속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전쟁은 공격을 버텨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게 삶의 비전을 성장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 우리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재미있게 보여준 게 인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의 봄’ 역시 마찬가지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루지만, 그 순간 많은 인물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긴박하게 그려낸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이 10년,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내포한 메시지가 통한 부분이 있다. 그걸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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